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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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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변화 열망을

부르주아 정치의

자장에 가두는

‘윤석열 현상’

 

 

장혜경┃집행위원장

 

 

 

4월 재보궐선거가 끝난 후, 제도 정치권은 대선 행보에 바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바로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지난 3월 검찰총장 사임 이후 대권 행보를 가시화하는 한편,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사임하며 제시했던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무엇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21일 현재까지 윤석열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고 자신의 국정운영 청사진도 제시하지 않아, 그의 정치적 비전을 온전하게 알 수는 없다[편집자: 현 시점에서 윤석열은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이 그간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를 추론해 볼 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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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석열 페이스북]

 

 

윤석열 버전의

‘정의와 상식이

살아있는 사회’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의 첫 번째 경제‧정책 과외 교사는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다. 정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형성 책임을 자본이 아닌 “대기업 노동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내부 노동시장” 탓으로 돌린다. 즉 “대기업‧정규직 노동자가 지나치게 많은 임금과 복지, 연공급 등을 요구해서 기업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안겨” 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신규 취업을 억제한다’며 비판한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공공일자리 창출에도 반대하면서 “노동수요를 만드는 거시경제적 환경”을 강조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기업 활력 제고를 통한 일자리 창출’ 논리다. 결국 그의 ‘해법’은 불안정노동 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지급여 수급률 확대”와 (노동자 내부 차별과 격차를 더욱 심화하는)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이다. 자본의 해법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은 유현준 홍익대 교수를 만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유 교수의 입장은 ‘공공임대 확대보다, 집에 대한 소유욕을 인정하고 공격적으로 소유자를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욕구로서의 욕망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성취하게 해야 한다”고. ‘공정한 경쟁’ 자체가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은 이 사회에서 경쟁을 강조하면서, 결국 투기와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공급 확대’(더군다나 민간자본이 주도하는)를 주장하는 것이다. 보수야당과 언론, 기업이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론과 동일하다.

 

한편, 윤석열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의 외교‧안보 정책을 자문한 인물이자 2012~13년 보수 정권 하에서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도 만났다. 김 교수는 “견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고, 윤석열도 비슷한 입장임을 공유했다.

 

이렇듯 윤석열이 만난 사람들은 보수‧친(親)자본 성향 일색이다. 게다가 그는 (최근 사퇴하긴 했지만) 대표적 보수신문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동훈을 대변인으로 세우기도 했다. 윤석열이 국민의힘 입당을 저울질하는 것도 그의 정치적 성향을 가늠하게 하는데, 그는 전반적으로 민주당보다도 더 오른쪽에 있다. 따라서 윤석열이 말하는 ‘상식’은 민주당식 내로남불의 반편향에서 멈추는 수준의 상식이고, 그의 ‘정의’는 계급 사회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무시한 채 경쟁을 말하는 ‘공정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윤석열 현상’이 시사하는 바

 

국민의힘 못지않게 우익적인 윤석열이 대선주자 1위로 떠오른 것은 정부여당 ‘덕분’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도 엄정하게 임해 달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정작 윤석열의 칼끝이 정부여당 핵심인사를 향하자 달라졌다. 정부여당은 ‘조국 수호=검찰개혁=윤석열 때리기’라는 프레임으로 윤석열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는 역대 정권에서 권력 핵심과 재벌총수를 구속해온 윤석열의 행보와 대비를 이뤘다. 이렇듯 정부여당은 윤석열이 내세운 ‘정의’와 ‘상식’ 프레임을 이기지 못했고, 그를 유력 대권주자로 만들어 버렸다.

 

‘윤석열 현상’은 희극이기도 하다.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혔던 정부여당은 윤석열과 척을 진 상태고, 윤석열의 검찰총장 임명에 강력히 반대했던 현 국민의힘이 오히려 지금 그를 영입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경계가 그만큼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때 안철수는 (10년 전쯤 그가 처음 정치권에 발을 들였을 때) 양대 기득권 정당(현 민주당-국민의힘)에 실망한 대중의 열망을 상징하는 표상이었다. 최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돌풍이 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중 이재명이 1위를 달리고 있는 것 역시 그가 친문 세력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당내 비주류이자, 민주당 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적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새롭지 않은 ‘새로운 돌풍’이 바로 양당 내에서나 그 언저리에 있는 인물 중심으로 불고 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정치의 바람이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부르주아 정치의 자장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직도 부르주아 정치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체제전환적 정치로 수렴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좌파 세력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윤석열 현상’은 사회주의-좌파 세력에게 ‘인민의 자기 통치’로서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현할 사회주의 정치를 본격화하라는 매서운 채찍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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