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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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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18일, 송환법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우산을 쓰고 입법원(국회)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장진영]



홍콩의 운동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홍콩 시위 1주년, 다시 시작된 저항


하남석┃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코로나19도 멈추지 못한 홍콩의 시위


코로나19는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을 멈춰놓았지만, 홍콩의 시위는 계속되었다. 바이러스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각했던 시기에는 잠시 소강상태에 있었지만, 상황이 안정되자 산발적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심지어 홍콩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기간에 오프라인 시위를 할 수 없게 되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인 <동물의 숲>에서 ‘게임 속 시위’를 벌여 중국이 대륙 내에서 게임 판매를 중지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과 홍콩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시위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자 운동의 핵심인사, 특히 노동운동을 이끌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다. 지난 2월 28일에도 ‘불법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주요 민주 인사들에 대한 체포가 있었고, 4월 18일에는 좌파정당인 “사회민주연선”의 핵심 리더이자 ‘장발 아저씨’로 유명한 룅궉훙(梁國雄)과 홍콩 노동운동‧시민운동의 대부인 리척얀(李卓人) 등 14명의 민주파 인사가 연행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고 확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자, 얼마 전인 5월 10일에는 홍콩 각지의 대형 쇼핑몰 등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플래시몹이나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이 다시 폭력적으로 진압에 나서면서 100명 넘는 시민들이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5월 21일에는 중국 당국이 (우리로 치면 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직접 홍콩의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무엇을 노리는가?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입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에는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홍콩 시민들은 50만 명이 넘는 대규모 가두시위로 이를 막아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홍콩 정부와 입법회가 아니라, 아예 중국 대륙에서 법을 제정해 홍콩에 적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과는 달리 홍콩 시민들이 직접 막아낼 방도가 없기에, 절망과 강한 분노가 일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중국 정부가 제정하겠다는 홍콩 국가보안법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법률 초안에는 “홍콩 내의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활동, 해외 및 외부 세력이 홍콩 문제에 간섭하는 활동을 금지하고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중국 당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이 지속적으로 홍콩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다.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범죄인 송환법”은 범죄인 인도를 핑계로 홍콩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나 민주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컸기 때문에 홍콩 역사상 가장 큰 시위를 이끌어냈고, 결국 폐기되었다. 이번 국가보안법은 그보다 더 포괄적인 억압과 통제를 가능케 하는 법안이기에, 작년 못지않은 대규모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홍콩과 마주하고 있는 광동 지역(중국 남부 해안 지역)에서 지난 몇 년간 벌어진 노동NGO들에 대한 대규모 탄압을 떠올리면, 이 법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2015년 12월 중국 공안 당국은 판위(番禺) 노동자 센터의 책임자 쩡페이양(曾飛洋)과 상근자 주샤오메이(朱小梅), 포샨 난페이옌(南飛雁)의 사회복지서비스 센터 책임자 허샤오보(何曉波), 그리고 노동인권활동가 펑자용(彭家勇), 멍한(孟晗), 탕젠(湯建) 등 25명의 활동가를 연행하고 4개의 노동운동 단체를 침탈했다. 이들을 잡아간 이유가 바로 ‘해외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각종 파업을 유도하고 국내 안전에 커다란 해를 끼치고 사회불안을 조장했다’는 것이었다. 2018년 (비록 소규모였지만) 중국에서의 노동자-학생 연대를 새롭게 형성했던 제이식(Jasic Technology, 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 투쟁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 이유로 자행되었다. 특히 해외로부터의 지원이나 간섭을 계속해서 문제 삼는 것은 어떠한 국제 연대 활동도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륙에서의 이러한 일련의 탄압을 고려한다면, 홍콩의 국가보안법은 친미 세력뿐만 아니라 좌파 활동가들도 겨눌 수 있다는 게 분명해진다.



광동 지역의 운동과 홍콩의 운동은 만날 수 있을까?


탄압받고 있는 중국 대륙, 특히 광동 지역의 노동운동과 홍콩의 좌파 운동은 이 억압에 맞서 연대할 수 있을까? 일단, 현재 광동 지역 노동운동 단체들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다. 중국 당국은 앞서 언급했듯 2015년 겨울부터 거의 모든 노동NGO의 활동에 큰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당과 정부가 걸었던 죄목은 ‘해외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것이었는데, 그 자금의 원천이 바로 홍콩의 노동운동 지원 단체들이었다. 홍콩의 단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많은 NGO가 문을 닫게 될 정도로 강력한 탄압이 이어졌다. 2018년 제이식 투쟁에서는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단체와 활동가들, 예를 들어 선전(深圳)의 노동운동 지원단체인 춘평(春風)을 이끄는 장즈루(張治儒)까지도 연결시켜 탄압하고 연행했다.


<2011~18년 중국의 파업 발생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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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China Labour Bulletin(중국노동회보). Strike map(파업 지도). 2019. <https://maps.clb.org.hk/en>; Burak Gürel, Mina Kozluca.(2019: 211)에서 재인용.



현재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나 파업은 계속해서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운동 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2015년 하반기에 정점을 찍었다가 그해 12월 노동NGO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이후 많이 줄어들었다. 단체들의 활동과 국제 연대가 이미 위축된 지금의 상황에서 볼 때, 이 침체는 일정 기간 지속할 확률이 높다. 앞서 거론한 노동NGO들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흉년지반>(凶年之畔: We the workers)을 연출했던 황원하이 감독은 활동가들로부터 “중국 노동운동의 영광스럽고 성공적인 시기는 이미 끝났다”는 비관적인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한편, 중국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반(反)정부나 반(反)공산당 정서는 비교적 약하다. 비인간적 처우를 일삼는 개별 기업과 이를 눈감아주는 지방 정부에는 큰 반감을 품고 행동하지만, 베이징의 당 최고 지도부나 당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오히려 중앙에 강력한 권력이 있어야 지방 정부나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에 더해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정서를 여전히 강하게 가지고 있어, 홍콩에서의 시위에 그다지 동조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현재 홍콩의 시위는 노동운동가들이나 좌파 활동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도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나, 현재 국면의 다수 세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도리어 젊은 세대 학생들의 반중(反中) 감정이 시위의 큰 동력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중국 광동의 노동자들과 홍콩의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연대 의식으로 현재 국면에서 함께 어깨를 걸 가능성은 안타깝게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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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4일, 홍콩섬 벨처베이파크에서 송환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플랜카드에는 '제도적 폭력에 맞서 우리는 진정한 선거를 원한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장진영]



절망과 비관을 넘어 연대의 끈을 이어가야


물론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두 지역에서 연대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한다. 1925~26년 당시 막 태동한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광저우와 홍콩의 노동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파업을 벌이고 투쟁했다. 1967년 대륙에서 문화대혁명(문혁)이 한창일 때 홍콩에서 크게 벌어졌던 반(反)영국 시위도 문혁의 자장 속에서 중국 공산당과 홍콩의 노동자들이 연결되어 반제국주의 운동을 벌인 일환이었다. 1989년 천안문 항쟁 당시에도 대륙의 운동에 가장 크게 연대했던 곳이 바로 홍콩이었다. 그리고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중국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회적 투쟁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홍콩과 광동 지역 여러 활동가들의 연대였고, 이를 통해 조금씩이나마 노동운동이 진전했다. 이렇듯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와 처우 개선, 기층에서의 민주주의 회복 등에 중국의 진보적인 미래가 있음은 분명하다.


홍콩에서도 모든 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규모 시위 국면에서, 그리고 국가보안법 입법 전후로 홍콩인들 사이에서 반중 정서는 더욱 강해지겠지만, 작년 시위를 거치며 노동조합의 성장 등도 나타났다. “사회민주연선(社會民主連線: 사회민주연대전선)”이나 “공당(工黨: 노동당)” 등 노동운동 기반의 좌파 성향 정치세력이 작년 11월 치러진 지역 의회 선거에서 유의미한 약진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와 연결된 민주노조인 홍콩직공연맹(香港職工會聯盟)도 계속해서 활발한 가입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주요 국면에서 파업 등의 정치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들의 분투가 더 확대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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