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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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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3.16 11:44

솔수염하늘소

 

봄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 마음이 급하다. 숲에서는 재선충병 방제 작업을 봄이 오기 전에 마무리 지으려는 사람들 마음이 바쁘다. 재선충병은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나 곰솔, 잣나무 같은 바늘잎나무가 말라죽는 병이다. 병에 걸린 나무는 백 퍼센트 죽는다는 무서운 병이다. 재선충병은 부산 금정산에서 1988년 처음 시작되어 남부 지방에서 퍼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2005년 특별법을 만들어 한 해 수백 억을 들여 방제해 왔지만, 몇 해 전부터는 북쪽으로까지 번져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재선충병을 제대로 방제하지 못하면, 모든 소나무가 몇 년 안에 다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 했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길이가 1밀리도 채 되지 않은 소나무재선충은 제 힘으로는 바로 옆 나무로 옮겨 가지 못한다. 재선충을 다른 나무로 옮기는 것은 솔수염하늘소이다. 겨울방제는 솔수염하늘소가 봄에 깨어나 옆 나무로 재선충을 못 옮기게 하는 작업이다. 솔수염하늘소는 죽은 소나무 껍질 속에 알을 낳는다. 알을 까고 나온 애벌레는 나무속을 파먹으며 자란다. 애벌레로 겨울을 나고, 봄에 깨어나 번데기로 탈바꿈한다. 이 때 나무속 재선충이 모여들어 번데기 몸속으로 들어간다. 번데기는 보름쯤 뒤 어른벌레로 탈바꿈하고, 어른벌레는 입으로 구멍을 뚫고 나무를 빠져나온다. 어른벌레는 죽은 나무속을 파먹는 애벌레와 달리 살아 있는 소나무에서 돋아난 새순이나 어린 가지를 먹는다. 이때 솔수염하늘소 몸속에 있던 재선충이 나와, 솔수염하늘소가 갉아먹은 상처를 통해 소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재선충은 수가 빠르게 늘어나 물관을 막고, 나무를 말라죽게 한다. 솔수염하늘소는 죽은 나무를 찾아가 알을 낳는다.

소나무재선충과 솔수염하늘소는 하늘소가 재선충을 옮겨 주고, 재선충은 소나무를 죽여서 하늘소가 알을 낳을 곳을 만들어 주는 공생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솔수염하늘소는 재선충병을 옮기는 무서운 해충으로 낙인찍혔다.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히는 소나무, 애국가에까지 나오는 소나무를 사라지게 하는 주범인 솔수염하늘소는 온 나라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금까지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들어간 수천억 원 정부 예산은 대개 소나무재선충 보다는 매개곤충인 솔수염하늘소 박멸에 쓰였다.

재선충병을 없애려면 정말 솔수염하늘소를 박멸해야 하나? 경기도, 강원도 지역에서는 재선충병 매개곤충이 솔수염하늘소에서 북방수염하늘소로 바뀌었다. 북방수염하늘소는 주로 잣나무에 재선충병을 옮긴다. 재선충병이 없는 곳에서는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는 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죽거나 죽어가는 소나무나 잣나무를 분해시켜 흙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해온 곤충들이다. 삼십 년 전, 사람들이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목재를 국내에 들여왔다. 마침 그곳에 살던 솔수염하늘소를 재선충이 매개곤충 삼아 숲으로 옮겨졌는데, 그때만 해도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다. 솔수염하늘소는 날아 봤자 기껏 반경 백 미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태풍 같은 세찬 바람에 날려가도 이삼 킬로미터 반경 안이다. 그러기에 한 해 사이 먼 거리까지 재선충병이 옮겨간 것은 사람들이 감염된 목재를 차로 옮긴 탓이다. 사람들이 넓게 퍼뜨리면서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소나무가 사라지면 더 이상 살 수 없는 솔수염하늘소가 비극의 가장 큰 피해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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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방제만 꼼꼼히 하면 재선충병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재선충병이 없어져도 소나무 숲은 사라져 갈 것이다. 병충해나 사람들이 개발해서가 아니다. ‘천이가 이루어져 소나무 숲에서 참나무 숲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망가진 숲은 그대로 두면 다시 건강한 숲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풀이 자라다, 작은키나무가 들어와 자라고, 소나무 숲이 되었다, 다시 참나무 숲으로 바뀌어 간다. 소나무 숲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자연을 거스르며 많은 돈을 들여가며 소나무 숲을 지키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숲이 바뀌면 사람들 문화도 바뀌어 갈 것이다.

 

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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