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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계급 자본주의
96호 | 2019.11.18

표지이야기

교육 계급 자본주의

교육의 계급을 넘어, 자본주의 너머로 수능이 끝났다. 문득 내가 치렀던 수능 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시험 중간 점심시간에 친구들 몇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는데, 아마 살면서 가장 즐겁지 않았던 최악의 점심으로 손에 꼽을 것이다. 오전 시험에서는 옆자리 학생이 시간을 넘겨 부들부들 손을 떨며 시험지를 붙들고 있다가 기어이 감독관에게 빼앗기고 퇴실당하는 걸 목도하기도 했다. 학업은 그저 여러 ‘특성’ 혹은 ‘특기’ 중 하나일 뿐이다. 벽돌 같은 책을 펼쳐 들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학업은 분명 주특기다. 반면, 다른 데서 재미나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설령 별다른 ‘특기’가 없다고 해도 뭐 어떤가. 이 거대한 사회가 움직이려면 그만큼 수많은 역할이 필요하고, 한 사람이 평생토록 하나의 역할에만 갇혀 있을 필요도 없다. 사회는 그 다양한 역할의 기회를 각자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가능하려면, 어떤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사회적 지위와 대우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혁신’과 ‘4차 산업혁명’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일각에서는 ‘규제 때문에 인재가 자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과 서열 경쟁 아래서 수많은 꿈과 인재가 죽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수능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험생의 비극이 들려온다. 누가 그를 밀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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