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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과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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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국마사회는 유족에게 사죄하고, ‘죽음의 경주’를 즉각 멈춰라!

-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11월 29일 고 문중원 기수가 목숨을 끊었다. 그는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죽음의 경주를 멈추라!”며 박경근, 이현준 두 마필관리사가 목숨으로 항거한 지 2년 만에 또다시 한국마사회는 한 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개장 이래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혹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혹한 현실이 이어지는 것은 한국마사회가 경마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경쟁체제와 다단계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마사회는 1993년 이후 ‘선진경마’라는 명분으로 개인마주제로 전환하고 무한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마사회에는 ‘마사회-마주-조교사’로 이어진 다단계 구조가 만들어졌고, 정규직 노동자였던 기수는 개별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로 전락했다. 기수의 기본급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고(기승계약료 250만 원을 조교사와 반씩 나눔), 한번 말에 오를 때마다 10만 원씩 받을 뿐이라 한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는 비경쟁성 상금을 줄이고 경주 결과에 따라 상금으로 배분하는 경쟁성 상금을 확대하였다. 경마공원의 연간 재해율은 13.89%로 전국 평균 재해율 0.52%의 약 27배에 달하지만, 기수는 특수고용노동자여서 산재처리도 제대로 받을 수도 없다.


한국마사회는 온갖 비리의 온상이기도 하다. 문중원 열사의 유서에서 보듯이 조교사들에 의한 승부 조작은 여전하고, 기수는 조교사와 마사회의 눈 밖에 나면 말에 오를 수도 없다. 고 문중원 님의 경우, 조교사 면허를 따고 사비로 유학을 다녀왔어도 조교사가 될 수 없었는데, 빽 없이는 조교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승부 조작을 위한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어기면 다음엔 아예 말을 안 태우거나 위험한 말을 태웠고, 태풍이 불고 안개가 가득한 날에도 몸이 망가져라 말을 타야만 했다. 결국 고 문중원 님의 죽음은 “마사회와 마주, 조교사가 기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부정한 경마라도 거부할 수 없는 구조가 불러온 타살”이다.


그런데도 한국마사회는 유족이 요구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요구’에 아직도 응하지 않고 있다. 12월 21일, 면담을 요구한 유족에게 돌아온 것은 머리채를 잡고 목을 조르는 경찰의 폭력이었다. 경찰 폭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2월 27일 공공운수노조가 정부서울청사 앞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고 운구차가 분향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렉카를 동원해 운구차 견인을 시도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한국마사회는 연간 매출도 7조 8천억 원이나 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이다. 한국마사회가 표방한다는 핵심가치는 ‘포용과 혁신을 통한 신뢰’, ‘건강하고 안전한 삶의 보호’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허구다. 한국마사회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현실의 집약판이다. 공기업이 나서서 노동을 외주화하는 다단계 구조를 만들고, 임금·고용·노동안전 모두에서 반노동적 경영을 지속하면서, 온갖 비리와 갑질 속에 경마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마사회는 계속되는 노동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적 요인에 대해 시정 의지가 전혀 없다. 이러한 한국마사회의 운영과 태도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허울에 불과할 뿐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에 분노한 노동-시민사회단체-정당이 모여 12월 27일,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를 구성하였다. 더 이상의 ‘죽음의 경주’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공기업의 탈을 쓰고 반노동적 경영관행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마사회는 ‘고 문중원 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 공식 사과, 자녀 등 유가족 위로 보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 사람 죽이는 ‘선진경마’를 폐기하고,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를 즉각 개선해야 한다. 고 문중원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사회변혁노동자당도 함께 싸울 것이다.



2019년 12월 28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