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언제까지 생존의 권리를 유보해야 하는가?
- “지금 당장”을 외친 2017년 최저임금운동은 왜 무너졌는가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결정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 꼭 들어맞는 인상률(16.4%)이다. 2020년이 아닌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자는 요구는 일부조차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협상에서 큰 액수를 우선 내놓고 보자고 제시한 안이 아니다. 이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 존엄할 권리를 제기하는 과정이었다. 노동운동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를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그래서 최저임금1만원 운동은 공단을, 그리고 불안정 노동청년을 향했다. 2017년 최저임금1만원 운동은 ‘노동’과 ‘경제’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였다. 즉, 노동의 존재 목적은 자본의 이윤축적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존이며, 그 권리는 훗날로 유보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을 뛰어넘지 못했고, 노동자의 요구는 다시 공익위원 9명의 손에 놓였다. 공익위원들이 내정한 답을 관철하기 위해 숫자 압박을 가하는 동안 정작 최저임금 책정의 기준과 그에 따른 적정액은 토론의 도마에도 제대로 오르지 않았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재벌과 국가의 역할은 거론되지 않았고, 영세자영업자와 노동자의 대결 구도만이 반복했다. 2017년 최저임금 운동은 예년과 다르고자 했고, 또 달라야 했지만 극적 타결을 향해가는 회의실 안에서의 연극적 투쟁을 넘어서지 못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세 차례나 수정안을 내며 ‘지금 당장’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했다. 2017년 최저임금운동은 유보될 수 없는 생존의 권리를 전면에 걸고 싸우겠다고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향해 선포했지만, 이는 결국 협상 카드 한 장으로 전락했다. 물론 2017년 최저임금 1만원이 쉽지 않은 과제임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정안 제출은 예년과 다른 방향타를 세우고자 했던 2017년 최저임금운동의 목적과 정신 자체를 포기하는 행위였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도, 경총과 공익위원이 감추거나 신경 쓰지 않는 의제를 부각하며 요구를 고수하지도 못했다. 노동운동이 “지금 당장”이라는 구호로 유보할 수 없는 생존의 권리를 요구했다면, 그 기조에 걸맞는 과감한 협상중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다시 최저임금위원회의 좁은 회의실 안에 갇혔다.
2017년 최저임금운동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며, 노동자는 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의식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최저임금위원회 제도개선을 쟁취하기는커녕 그 약속도 분명하게 듣지 못한 채 복귀한 결과가 참혹하게 드러나고 있다. 공은 문재인의 은덕이요, 민주노총은 어설프게 발목을 잡다 실패하는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개혁은 광장항쟁의 여진으로 가능할 뿐임에도, 노동운동은 대안과 전망을 내놓는 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하반기에 있을 노동법 제·개정 투쟁마저 이 같은 흐름을 따라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만족하라’는 정부의 경계선을 넘어, 진정한 삶의 변화를 추동하자. “지금 당장”이라는 요구로 외쳤듯, 우리 삶은 훗날로 유보할 수 없다.
2017년 7월 18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