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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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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가 항아리를 깨는 법

 

 

<소개하는 책>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서은혜 옮김), 『게 가공선』, 창비, 2012.

 

 

박상헌┃기관지위원회

 

 

 

‘다코베야(タコ部屋)’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직역하면 ‘문어 방’이라는 뜻인데,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닭장’ 정도가 되겠다. 이 말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일본제국 시기 홋카이도1 등지의 악명 높은 강제노동수용소나 육체노동자 합숙소‧작업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문어 방’에 갇힌 ‘문어’는 곧 감금된 채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1 일본열도 동북부의 섬. 원래 일본 본토와 달리 아이누족이 별개 문화권을 형성해 살던 땅이었지만, 19세기 중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본격적인 ‘개척사업’, 곧 식민사업이 진행되며 일본 국가에 편입됐다.

 

 

‘다코베야’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문어잡이에 사용하는 항아리처럼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문어는 그 속에서 자기 몸을 갉아 먹으며 버티기 때문에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라는 설 등등.

 

어쨌든, 항아리에 들어간 ‘문어’들이 “기댈 곳 하나 없이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해를 넘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코 푼 휴지만큼 싼값에 ‘팔아야만 했다’”(15쪽)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문어’들이 향한 곳은 오호츠크해2를 항해하는 선박, 그중에서도 항해선이 아닌 공장선3, 그러나 공장법의 적용은 받지 않은 채 오로지 제국과 도쿄 본사 빌딩에 있는 회사 중역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가공선4, ‘핫코마루’였다.

 

 

2 일본 동북부-러시아 동부에 위치한 해역.

 

 

3 선박 자체가 하나의 공장으로, 바다에서 끌어올린 수산물을 곧바로 가공하는 등의 작업이 이뤄짐.

 

 

 

 

4 바다에서 게를 잡아 끌어올려 선상에서 바로 손질해 가공하는 배.

 

 

문어의 탄생

 

‘내지’5 이곳저곳에서 물밀듯 밀려온 문어들은 일확천금이라는 말에 꿈을 품고 항아리 속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꿈이 깨지고 제 목숨을 깎아 먹으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확천금은 문어들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아직 개척되지 않은 기회의 땅’, 홋카이도 일대에 손을 뻗은 자본가들만 그 돈을 거머쥐었다.

 

5 내지(內地): 식민지와 구별되는 일본 본토를 가리킴. 이 작품에서는 홋카이도가 내지에 착취당하는 식민지 성격을 갖는다. 작가는 부기(附記)에서 이 작품을 “‘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 침략사’의 한 페이지”라고 표현했다.

 

 

배에 오른 문어들은 인당 7, 8엔의 빚을 지는 것으로 현실을 마주한다. 먼저 가불받은 60엔으로 교통비, 숙박비, 소개비 등등을 내고 나니 생긴 빚이다. 빚을 끌어안은 이상, 이들에게 돌아갈 ‘육지’는 더 이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항아리에 들어간 문어는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몸을 뜯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빚을 안고 바다로 나간 문어들은 오호츠크해를 항해하던 고물선 ‘치치부마루’가 침몰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치치부마루’ 승무원 425명이 회사의 보험금(배가 가라앉으면 나올 보험금)에 밀려 SOS 신호조차 묵살당하고 결국 구조되지 못한 채 가라앉는 참극을 눈앞에서 바라보게 된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돌풍과 거센 파도 속에서 문어들의 선택지는 없었다. 혹독한 바다로 내몰려 작업해야 했던 문어들, 핫코마루에서 생을 마감하고 바다에 ‘처분’된 문어들에게 허락된 건 ‘러시아에 맞서 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영웅’이라는 허상뿐이었다.

 

 

 

항아리에 생기는 균열

 

아무리 ‘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영웅’이라고 포장해도 이들은 애당초 ‘문어’의 처지였던 만큼, 분노는 자연스레 쌓여갔다. 그들의 분노는 처음엔 게를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공정에서 미적거리는 정도로 나타났지만, 이 미적거림에도 당황하는 감독의 모습을 보며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깨닫기 시작한다.

 

 

“두 무리가 합쳐지면서 활기가 돌았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뒤처졌던 두세 사람은 눈이 부신 듯이 이쪽을 보고는 멈춰 서 있었다. 모두 제5호 카와사끼선 부근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들을 보더니 처졌던 이들도 중얼중얼하면서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117쪽.

 

 

이윽고 어슴푸레 해가 비치기 시작한 새벽 어느 날, 문어들은 일제히 일손을 멈춘다. 밧줄을 걷어치우고, 갑판에 모여 요구사항을 말하고, 선장실로 기세등등하게 들어간다. 그러나 ‘제국 군함’이 상징하는 국가권력이 자본가들을 지켰다. 결국 첫 파업은 9명의 대표단이 ‘육지’로 끌려가며 막을 내린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첫 파업에서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주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는 교훈을 얻은 문어들이 또다시 파업에 나서는 것으로 이 책의 이야기는 일단 마침표를 찍는다. 물론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지는 않는다. 이후 실린 부기(附記)에는 이들의 파업이 손쉬운 승리로 돌아갔다고 짤막하게 적혀 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들의 승리가 단 몇 글자로, 곧 미완의 상태로 남았음을 생각해보면, 작가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파업의 승리 여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파업에 이르기까지, 즉 문어들이 하나의 인간이 되기까지 경험하고 깨닫는 순간들이다. 쌓여온 분노로 자신의 힘을 깨달았을 때, 생사를 건 싸움에 도전할 용기라도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이 작품이 나온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호명되는 이유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앞날의 승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사느냐, 죽느냐 하는 거니까.”

“그래, 한번 더!”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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