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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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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지회장

 

 

7년째 포기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머릿수가 적더라도

민주노조는 강하다

 

 

# 싸움이 햇수를 넘기면 맥이 풀릴 법도 한데, 해고자로 만 6년을 꽉 채워 투쟁을 이어오면서도 자신감과 확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지난 7월로 투쟁 7년 차를 맞이한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차헌호 지회장이다. 민주노조 결성 직후 불과 한 달 만에 일터에서 쫓겨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꿋꿋이 자신들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전국 곳곳의 투쟁 사업장에 주저 없이 연대해왔다. 그들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6주년 투쟁 결의대회를 며칠 앞두고 있던 지난 7월, <변혁정치>가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농성장에서 차헌호 지회장을 만났다.

 

 

 

 

Q: 먼저 아사히글라스 사업장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아사히글라스는 LCD나 TV, 핸드폰에 들어가는 유리를 제조하는 회사다. 일본 전범기업으로 유명한 미쓰비시그룹 계열사고, 유리 제조 분야로는 세계 3대 기업 중 하나다. 국내에는 2005년에 들어왔는데, 경북에서 제일 큰 외투기업이었다.

 

우리 조합원들이 하던 일은 다 만든 유리를 세정하고 불량 난 부분을 절단하는 작업이었다. 보통 비정규직 업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 유릿가루 청소하는 일도 주로 맡았다.

 

 

 

 

Q. 올해 7월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를 당한 지 6년이 됐다. 지난 2015년 5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불과 1달 만에 사측은 해고를 단행했다고 하는데.

 

 

처음에 노조를 결성한 건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9년 다닌 사람이나 방금 입사한 사람이나 똑같이 최저임금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려면 장시간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생산물량에 따라 권고사직도 수시로 이뤄졌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였던 거다. 심지어 일하다 뭔가 실수라도 하면 붉은색 조끼를 입혀 모욕감을 주는 인권침해까지 있었다.

 

그렇게 노조를 만들자마자 1달 만에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사히글라스 원청이 우리가 속한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거다. 그러고 3일 뒤에 하청업체 사장이 우리에게 ‘천만 원씩 줄 테니 희망퇴직 써라’라고 하더라. 대신 ‘아사히글라스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동시에 공장 정문에서는 용역깡패 100여 명이 출입을 통제했다. 회사는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노조탄압 수단을 초반에 다 동원했다.

 

당시 우리는 구미공단에서 10년 만에 생긴 노조였고, 공단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였다. 그러다 보니 구미공단 자본가들은 ‘어떻게든 이 노조를 정리시키고 더 이상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인식한 것 같다. 그래서 구미 상공회의소 같은 자본가단체가 모여 대책회의도 했다고 한다. 초장부터 노조를 무너뜨리려 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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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간 아사히글라스 사측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무시하다가 올해에는 6년 만에 입장을 냈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신규채용 형태의 복직과 위로금 지급’ 등을 거론하면서도, 유독 ‘차헌호 지회장 복직만큼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던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로 보인다. 제일 심각한 건 복직 문제를 두고 조합원들을 갈라치기하려 했다는 거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고, 사측 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사측 안은 우리 조합원 21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되, 지회장은 안 된다는 거였다. 대신 지회장에겐 위로금 3억 4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나머지 21명에겐 1인당 9,300만 원씩 위로금을 지급하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발전기금도 내겠다고 하더라. 돈으로 정리하겠다는 건데, 확실히 ‘돈이 많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태껏 회사에 돈 달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이 문제는 우리가 민주노조를 만들면서 시작된 것이고, 관건은 민주노조를 인정하느냐 아니냐다. 복직과 위로금(회사는 ‘위로금’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그간의 피해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은 사측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하면서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고.

 

사측 안에 대해 우리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지난 12월에 회사가 6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자고 연락했을 때 이미 우리는 내부 토론을 거쳤다. 사측이 갈라치기 안을 던질 거라는 점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논의를 통해 일찌감치 원칙을 정했다. 일단 사측과는 많아도 딱 세 번만 만나기로 했다. 왜냐, 교섭이라는 것 자체가 자본에겐 우리를 계속 유혹하고 어르는 수단이 된다. 우리가 매달릴수록 사측은 교섭을 질질 끌면서 그 상황을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어도 세 번만 만나자고 우리 내부적으로 미리 정했다. 둘째, 수용할 수 없는 안은 바로 거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셋째, 해당 안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렇게 조합원들과 사전에 토론하고 의견을 일치시켰다. 그러고 나서 2달 뒤인 올 2월에 사측과 첫 만남이 있었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 얘기했듯 사측은 ‘전원 복직은 어렵다’고 했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위로금 액수까지 제시했다. 우리는 ‘전원 복직이 아니면 더 이상 만날 의미가 없다’고 하고 그만 만나기로 했다. 회사에는 ‘전원 복직 안을 가져올 때 다시 연락하라’고 얘기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집단적 토론을 통해 원칙을 잘 결정해 두면, 교섭 주도력을 어떻게 가져갈지는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조합원들이 함께 결정하고 그에 따라 빠르게 판단하는 방식이 굉장히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지난 6년간 투쟁하면서 그런 방식으로 논의를 해왔다. 어떤 문제든 함께 토론하고 평가했다. 그래서 이번 사측 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혼란 없이 원칙에 따라 결정했다. 회사 안을 거부하고 공개하는 데 대해서도 모든 조합원이 이견 없이 일치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측 회유에 굴하지 않은 힘,

‘함께 논의하고 같이 결정한다’

 

 

 

Q. 한편, 아사히글라스는 일본 자본인 만큼 국제연대도 중요할 것 같다.

 

 

우리가 2015년에 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일본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다. 일본에도 아사히글라스 투쟁 지원 대책위가 생겼다. 저희가 지금까지 일본 본사에 다섯 번 원정 투쟁을 다녀왔는데, 코로나 확산 때문에 작년부터는 가지 못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본사 항의행동을 일본 동지들이 해주고 있다. 물론 이번 달에도 진행된다. 그렇게 지금까지 6년간 꾸준히 일본에서 아사히글라스 본사를 압박하고 있다.

 

사실 한국 아사히글라스 사장은 월급쟁이 사장이라 큰 권한이 없다. 핵심 결정권을 쥔 건 일본 본사다. 그만큼 일본 본사를 압박하는 투쟁이 굉장히 의미가 크다. 다행히 일본 동지들이 있어 큰 힘이 된다.

 

아쉽게도 일본 아사히글라스에는 노사협조적 노조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투쟁에 함께하는 일본 동지들이 본사에만 가는 게 아니고, 가끔은 아사히글라스 생산공장에도 찾아가서 노동자들에게 선전물을 돌리고 항의집회를 진행한다. 노조에 연락해서 면담을 신청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노조는 문 닫고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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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책 <들꽃, 공단에 피다>를 보면,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할 때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거다’라고 말씀했다던데.

 

 

제가 했던 말은 아니고, 우리 조합원 동지 얘기다. 자신은 여태껏 살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이니, 본인도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그런데 노조에 함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걸 봤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고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봤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신은 원래 노조를 안 좋게 생각했는데, 완전히 새롭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우리가 노동조합이라는 창문으로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점이 지금까지 투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공부 못해서, 우리가 못나서 비정규직이 됐다’며 굉장히 자존감 떨어지는 삶을 살았는데, 노조를 통해 사회 구조를 알게 되고 누구든 인간으로서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스스로 당당해졌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거다. 그 자체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 것 아닌가 싶다.

 

 

 

 

Q. 이른바 ‘공정성’을 앞세워 비정규직 투쟁을 꺾으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이런 흐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일단 민주노총에 속한 정규직 노조조차 공정성을 얘기하며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우리 운동이 살아 있지 못하니까 이런 반동적인 목소리가 훨씬 커지는 것 아닌가 한다. 그런 만큼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잘 세워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스스로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해달라는 게 아니다’라고 얘기할 때다.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받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당당하게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고 누릴 자격이 충분한데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차별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 아닌가. ‘공정성’ 담론은 우리 운동이 힘 있게 나아가지 못해서 더 커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의자놀이로 노동자를 몰아넣는 구조적인 문제다. 사람은 10명인데 의자 3개 갖다 놓고 이기는 사람만 앉으라는 거다. ‘공정성’을 얘기할 게 아니라, 의자를 10개 갖다 놓으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훨씬 더 당당하게 투쟁하는 게 필요하다.

 

 

 

 

연대,

우리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Q. 지난 몇 년간 전국 곳곳의 투쟁 현장에서 차헌호 동지의 얼굴이 보였다. 여러 투쟁에 활발하게 연대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우리 투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기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다고 승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가 승리하려면 투쟁 당사자들이 훨씬 더 강화돼야 한다. 자본에 맞서 싸울 체력과 정신력, 자본가들보다 훨씬 강한 전투성과 계급성이 필요한데, 자기 투쟁만 주구장창 보고 있으면 그걸 갖추기 어려운 것 같다. 수많은 사업장에 연대하는 걸 통해 사회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갖고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다른 사업장 투쟁이 ‘저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가 될 정도로 꾸준히 함께하다 보면, 우리 투쟁은 굉장히 쉬운 것처럼 느끼게 된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단결만 깨지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지금 벌어지는 수많은 투쟁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꾸준하게 연대하다 보면 우리 조합원 동지들도 자기 투쟁처럼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게 되더라. 그리고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데, 계속 연대하다 보면 ‘더 높은 연대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고민하게 된다. 투쟁 현장에 하루 방문하는 방식을 넘어 ‘저 동지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정말 의미 있는 연대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이런 문제에 관해 우리 조합원 동지들과 수련회에 가서 토론도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지만, 가령 저희는 연대투쟁을 가면 기본적으로 해당 사업장 동지들과 간담회를 반드시 진행한다. 우리 조합원들이 투쟁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대는 꾸준히 그 투쟁에 함께하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조합원들이 실제로 그 투쟁에 온전히 몰입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예를 들어 지금도 성주 소성리는 사드 배치로 계속 경찰병력이 들어온다. 우리 조합원들이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은 소성리에 연대하러 가는데, 이곳 구미에서 가려면 새벽 5시엔 출발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래도 모두가 계속 간다. 그렇게 2017년부터 4년 동안 소성리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연대는 우리 스스로를 이전과 다르게 변화시켜주는 굉장히 큰 힘이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희가 아사히글라스에서 7년째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데, 오래 싸우면서도 버티면서 사측의 회유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 봤다. 저는 민주노조가 소수라고 해서 약한 게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가 얼마나 단호하고 원칙적으로 민주노조를 지켜낼 것이냐가 관건이다. 소수더라도 노조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떻게 투쟁하고 어떻게 조합원 전체를 민주노조답게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조의 힘은 굉장히 크다. 소수지만 대자본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다. 싸우려는 의지, 그리고 민주노조를 지키려는 원칙의 문제다. 그렇기에 자본은 소수라도 민주노조를 두려워한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민주노조의 힘을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우리는 소수지만, 바로 그 민주노조의 칼을 온전히 사용하려고 한다. 투쟁하는 동지들 모두 자신감을 갖고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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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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