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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21 변혁당 정치캠프

“내 삶을 바꾸는 시간 사회주의 24시”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 이 기사는 사회변혁노동자당 ‘국가책임 일자리’팀이 이번 정치캠프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자본을 위한 계획경제

 

2020년 8월 <OECD 한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경기부양 재정 지출은 277조 원 이상이다. 이 가운데 200조 원 이상을 ‘금융 지원’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체제 유지를 위해 체제 스스로가 발버둥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본의 위기를 재정으로 진화하고 있을 뿐, 그 막대한 재정 투입에 노동자 민중의 몫은 없다.

 

그러는 사이 불안정노동 체제는 더욱 확대되고, 고(高)실업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2021년 6월 기준 (통계청이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실업자로만 한정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100만 명 이상이고, 비자발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있는 실질 실업인구는 400만 명 이상이다. 불안정노동이 일반화함에 따라, 그나마 눈에 보이는 안정적 일자리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부족한 일자리는 한국 사회 전반을 잠식한 소위 ‘공정성’ 담론의 토대다. 막대한 재정을 자본을 위해 투입하는 지금, 자본을 지탱하기 위함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계획과 대중적 정치운동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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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일자리 보장’

요구와 한계

 

지난 5월 27일,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한 연설에서 ‘완전고용’을 명시적 목표로 언급했다. 이는 ‘권리로서의 일자리’를 요구하는 운동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에서 완전고용 요구를 대표하는 정책은 ‘연방 일자리 보장제도’로, 그 요지는 ‘사회에 필요한 일’과 고용의 연계다. 이 가운데 핵심은 ‘그린뉴딜’과 연계한 일자리 보장이다. “그린뉴딜을 위한 연방 정부 의무를 인식한다”는 제목의 하원 결의안을 제출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그린뉴딜은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만 개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을 주 내용으로 한다.

 

자본주의에서조차 국가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를 보장했던 역사적 사례는 있다. 1920~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 루즈벨트 정부가 추진한 2차 뉴딜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된 ‘시민 자원 보존단’으로, 오늘날 버니 샌더스 역시 이 ‘시민 자원 보존단’ 부활을 내걸고 있다. 시민 자원 보존단은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약 300만 명의 청년을 고용해 35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700개 이상의 국립공원을 만들었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루즈벨트를 참조해 기후변화 대처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시민 기후단’을 만들었다.

 

이렇듯 현재 미국에서 일자리 보장 요구는 그린뉴딜을 구동축으로 ‘고용’과 ‘사회적 필요 충족’을 연계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 먼저, 일자리 보장제와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매입해 화폐 공급을 대폭 늘림으로써 국가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파)은 일정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MMT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해야 한다”며 지지 입장을 밝혔고, 일자리 보장을 내건 샌더스의 경제자문을 맡은 스테파니 켈튼은 MMT를 대표하는 ‘스타’ 경제학자다.

 

하지만 ‘일자리 보장’이라는 요구와 MMT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 MMT에 근거하지 않은 일자리 보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대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 지출’이 곧 MMT 지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폴 크루그먼 같은 케인즈주의자들도 현대화폐이론 측이 내거는 ‘대규모 재정 지출’에 찬성하지만, MMT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또한,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 모두 대폭적 부자 증세를 지지하지만, MMT에 따르면 화폐주권국에 증세는 필요 없다. MMT에서 대형 재정 소요를 충당하는 방법은 국가의 화폐 발행이기에, 증세는 불필요한 일이며 오히려 감세를 주장한다.

 

한편, MMT에 근거해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는 주요 이론가 파블리나 체르네바는 ‘일자리 보장제가 민간부문을 흡수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MMT의 일자리 보장 논의는 체제 자체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도, 자본이 점유해 이윤 창출 수단으로 기능하는 산업‧영역을 공영화하겠다는 구상도 아니다. MMT의 일자리 보장제는 공공부문 확대 구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함은 물론이고, 오히려 경기순환에 대한 ‘보조적 특성’을 강조하며 ‘일자리 보장제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음’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그린뉴딜의 경우에도 ‘산업에 대한 통제’라는 문제의식을 포함하지 않거나 미약하게 반영할 뿐이다. ‘필요에 따른 생산’으로의 전환에 수반되어야 할 에너지 생산 감축 전망 역시 없다. 실제로 그린뉴딜은 ‘경제성장과 자본축적’을 강조하며 논리의 상당 부분을 녹색자본 이윤 축적에 근거한다. 또한 녹색자본의 일자리 창출을 강제하지 않는 데다, ‘수백만 일자리 창출’의 근거 역시 명확하지 않다. 산업통제 투쟁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오카시오-코르테스와 샌더스의 제안 역시 에너지와 생산에 대한 공적 통제가 아니라 녹색자본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기능할 위험이 크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수백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그린뉴딜 참여 기업에 공공융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샌더스는 화석연료 기업과 달리 재생에너지 등 ‘녹색자본’에는 별다른 제재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후 케인즈주의’는 녹색성장론과 다르지 않다. 녹색자본, 녹색금융시장, 녹색상품 등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은 탄소배출권과 탄소세 사례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다.

 

 

 

기본소득론과 기본자산제의

문제점

 

한편, 기본소득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자동화와 플랫폼 공유경제에 기초한 탈노동사회는 필연이라며 ‘대안은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론은 허구일 뿐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 논의는 유독 한국에서만 인기가 있는데, 이는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이벤트 이후 ‘AI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공포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자’는 자본의 선동에 기인한다. 즉, 4차 산업혁명은 한국의 고질적 고용불안정을 기술발전의 결과로 왜곡하고 규제완화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의 이윤동기가 만들어낸 결과다. 역사적으로 실재한 1‧2차 산업혁명은 생산성과 고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으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생산성 증가 속도는 현저히 하락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론은 ‘고용 없는 사회’에 적응하라는 으름장일 뿐이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1940년대 이후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반복해서 등장했다.

 

기본소득 자체의 설계만 보더라도 대표주자 이재명 주장처럼 ‘월 30만 원’이든 기본소득당 주장처럼 ‘월 60만 원’이든 현 사회보장제도가 제공하는 쥐꼬리만 한 생계보장 기능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게다가 기본소득이 최저생계급여보다 높을 경우, 생계급여를 폐지한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사회보장제도와 기본소득의 세원이 결국 같기에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기본소득론은 불안정노동 확대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불안정노동 체제를 고착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뿐만 아니라 ‘과세를 통한 기본소득 실현’의 대전제는 생산수단과 토지의 사유화-시장화-상품화와 그로부터 나오는 이윤이기에, 시장과 자본의 이윤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대중을 빈곤으로 내모는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이윤의 일부를 분배하고 다시 불안정노동 체제로 향하게 하는 ‘현상유지’론이다. 기후 문제에서도 최근 기본소득당은 ‘탄소세’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환경오염 행동을 금지하지 않고 그에 ‘가격’을 매길 뿐인 체제적응적 대책에 불과하다. 오히려 탄소세 부담은 대부분 상품이나 에너지 가격으로 대중에게 전가되고, 기업은 탄소세 신설을 이유로 세금부담 완화를 요구할 우려가 있다.

 

이외에도 기본소득론은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성’ 등 스스로 내건 이론적 원칙을 충족하지 못해도 ‘기본소득’이라고 간주하는 등, 무엇이 기본소득인지조차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채 개념과 맥락, 좌우를 의도적으로 뒤섞는 포퓰리즘 정치라는 문제가 있다. 기본자산제의 경우 기본소득론과 표면상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양자는 다르지 않다. 평생에 걸쳐 나누어 지급되느냐(기본소득), 한 번에 일시불로 지급되느냐(기본자산)의 차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자산의 기능인 자산취득 보조가 아니라, 생활 필수요소의 상품화-자산화에 대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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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을

제기한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정의당이 ‘일자리 보장제’를 내걸고 있지만, 이는 공공부문 확대와 관련이 없다. 그저 해고된 실업자들의 연명을 돕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수익을 내는 민간부문이 계속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한, 공공부문 고용 확대 역시 무망하다. 공공부문의 불가역적 확대를 요구하지도 않고 자본과 싸우지도 않는다면, 구조적 위기 앞에 고용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변혁당이 제기하는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은 국가책임 사회서비스원 건설 등을 통한 가사‧돌봄노동 사회화,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인력 대폭 확대 등을 통한 의료산업 사회화 등 사회적 필수영역을 대폭 확대하고 필수노동을 국가책임으로 공급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더해 역대 투입 공적자금 명목가치만 251조 원인 기간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총고용을 국가책임으로 보장하는 것은 물론, 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은 ‘생태적 산업 재편’이라는 목표에 기반한 산업통제 투쟁을 확대하고자 한다. 핵‧석탄화력 발전 등 유해산업을 철폐하고, 재벌이 장악한 에너지 산업의 사회화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를 확대하며, 사업 재편 과정에서 모든 노동자의 고용 보장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미 에너지‧물‧보건‧사회서비스‧폐기물처리‧통신‧교통‧교육 등 필수적 공공-사회서비스 부문에서 대중의 필요 충족을 위한 산업 공영화 운동은 분명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를 배경으로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커지고 있고,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 역시 노동시간 대폭 단축을 요구한다. OECD 평균치에 한참 미달하는 한국 공공부문 고용 비율을 그대로 둔다고 해도, 현 40시간 노동제를 30시간제로 단축할 경우 공공부문에서만 86만 명 추가 고용이 가능하다. 300인 이상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330만 명(통계청, <2019년 기준 전국사업체조사 잠정결과>)을 기준으로 하면 약 109만 명을 추가 고용해야 한다. 이미 주4일 근무제 요구가 국경과 산업을 넘어 확대되고 있고, 이는 보다 나은 삶과 총고용 보장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 돌봄의 확대와 가사노동 사회화 측면에서도 제시되고 있다. 즉,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고용 보장뿐 아니라 탄소배출 감축, 임금노동-비임금노동에 대한 위계적 가치평가와 성별 분업체계를 허물어가는 과정이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올 하반기 국가책임 일자리 요구 1만 선언운동을 시작으로 10~11월 국가책임 일자리 대행진을 진행하고자 한다. 이에 각 단위 간담회와 토론회, 좌담회를 진행할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별 국가책임 일자리 요구 1천 선언’ 등 지역‧현장과 영역에서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에 착수하고자 한다. 많은 동지들의 동참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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