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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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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7.19 17:32

코로나19 전과 후,

달라지지 않은 세상

 

 

이종회┃대표

 

 

 

1.

코로나19로 전세계 2억 명이 감염되고 4백만 명이 사망했다. 시신을 묻을 자리가 없어 냉동 컨테이너에 임시로 보관하거나 강물에 떠내려 보내기도 한다.

 

이탈리아 북부나 미국처럼 의료 민영화가 진척된 곳일수록 코로나19 피해는 더욱 심했다. 미국이나 유럽조차 마스크가 없어 나라 사이에 쟁탈전을 벌여야 했다. 병상은 물론 방호복이 없어 비닐을 덮어써야 했고, 의료용 마스크 같은 기본적 의료기구가 없어 사망자가 넘쳐나면서 미국은 전시에나 가동하는 군수물자법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주로 여성이 떠맡았던 가사‧돌봄노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사람의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항공산업이 주저앉았고, 인터넷으로만 가능한 자본과 금융의 이동은 넘쳐났다.

 

 

 

2.

생산 중단과 소비 제한으로 어느 때보다 깊은 경기침체가 찾아왔다. 감염으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인 실업자들이 봉쇄조치를 뚫고 거리에 나왔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어디서든 일종의 재난지원금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이,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에게 일자리(Job for All)’를 보장하라는 국가책임 일자리가 정치적 쟁점이 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유화 조치도 눈에 띄었다. 의료예산 축소와 영리병원 체계로는 넘쳐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스페인은 모든 민간병원을 일시 국유화했고,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공공의료 복원을 눈앞의 과제로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민영화 이전 국가의료체계를 경험했던 이탈리아와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환자에게 유급휴가와 상병수당을 확대했고, 포르투갈은 외국인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며 무상의료가 강화됐다. 감염 위험은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기에, 이주노동자에게도 동일한 의료지원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의료산업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생산이 중단되면서 국유화 조치가 뒤따랐다. 모자라는 물자, 특히 마스크 같은 필수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배급제를 당연히 여기게 되면서 ‘마스크 사회주의’라는 용어조차 친근했다.

 

한편, 서식지 파괴로 사람과 동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결과적으로 동물과 사람 사이의 전염으로 시작된 코로나19는 생태파괴와 기후위기를 체감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표가 눈에 들어오고, ‘정의로운 전환’ 같은 용어들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일상이 무너진 공포가 짓누르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코로나19 전과 후가 나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붙잡고자 했다.

 

 

3.

경제위기는 역병만큼이나 큰 공포로 다가왔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자본 살리기에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 처방으로 위기는 더 깊어졌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양적완화 카드가 나왔고, 한국은행은 부실기업 채권과 금융채권을 직접 매입했다. 이렇게 위기의 자본을 살리려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서 ‘금융안정 패키지’나 ‘기간산업 안정기금’ 등 이름을 달리하며 200조 원 가까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은 30조 원 정도에 그쳤고, 대선을 앞둔 지금은 자영업자 피해 지원을 포함해 소비 진작용 33조 원 지원을 계획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정부 기조는 ‘손실의 사회화’다.

 

이런 가운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은 양적완화로 대규모 유동성을 풀었고,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산‧부동산시장의 거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국의 주가 상승률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상위권이었고, 부동산 가격은 2배 가까이 뛰었다. 그만큼 소득 양극화는 심해졌다.

 

‘손실의 사회화’는 의료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코로나19 백신은 공적인 기초기술과 공공투자를 근간으로 개발됐지만 영리회사의 소유일 뿐이고, 지적재산권에 잠겨 복제의약품조차 불가능해 가난한 나라들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의사‧간호사 증원과 병상 증설, 주치의 제도 같은 공공의료는 벌써 잊히고, 원격의료‧민간보험 활성화‧개인 의료정보 상업화 같은 영리의료가 ‘유망산업’으로 제시되는 형국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분야가 성장하면서 ‘총알배송’, ‘로켓배송’ 등을 내건 플랫폼산업은 더욱 활성화됐다. 그 속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계속 줄고, 불안정노동은 더욱 확대된다.

 

한편, 코로나19로 세계 공급사슬이 타격을 입고 특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적극적인 리쇼어링(해외 진출 사업을 국내로 다시 유치하는 것) 정책을 펼치면서, 자본과 국가 간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국 봉쇄를 매개로 하는 ‘쿼드 체제’(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 안보동맹체) 구축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의 대결 같은 제국주의적 질서의 재편으로 표현되고 있다.

 

 

 

4.

이렇듯 코로나19 이후 불평등 확대 속에서 지배 질서가 다시 자리 잡는 가운데, 노동자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는 한편 수많은 불안정노동자가 ‘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근로기준법조차 외면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대체공휴일 대상에서도 배제되고, 실질적으로는 노동운동의 조직 대상에서도 비껴나고 있다.

 

차별받고 배제된, 예외일 뿐인 노동자의 삶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더 힘든 ‘이후’를 맞고 있다. 노동자의, 인간의 자유로운 연대사회에 대한 갈증은 더 심해지고 있다. 정치판이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며 자신들끼리의 이전투구를 벌이는 지금, 대중 앞에 사회주의 대안을 내걸고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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