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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7.19 17:25

다시 고공에 오른

택시노동자

 

 

전복철┃전북도당 공공운수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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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또 한 명의 택시노동자가 망루를 세우고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이하 ‘택시지부’)가 고공에 오른 것만 이번이 다섯 번째다.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택시노동자의 현실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택시 자본은 악명 높은 사납금제(하루에 승객을 얼마나 태우든 상관없이 택시노동자가 일정 금액을 회사에 입금해야 하는 제도)로 노동자들의 목줄을 죄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9월 ~ 2019년 1월까지 무려 510일간에 걸쳐 당시 택시지부 김재주 지부장이 고공농성을 감행하며 ‘사납금제 폐지, 택시 완전월급제 실시’를 요구했다(<변혁정치> 80호(2019년 2월 1일 자) 기사 “전주 510일 고공농성 투쟁의 성과와 과제” 참고).

 

목숨을 건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투쟁의 힘으로 마침내 2019년 8월, 택시 월급제 관련 법안인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약칭 ‘여객자동차법’)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약칭 ‘택시발전법’)이 통과됐다. 이로써 전근대적 노예제나 다름없던 사납금제는 작년 1월 1일부로 공식 폐지됐고, 사납금 없는 ‘주 40시간‧월 209시간 완전월급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택시 자본은 순순히 사납금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완전월급제를 무력화하면서 택시노동자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초’저임금의 굴레에 묶어두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신설된 택시발전법 “제11조의2(택시운수종사자 소정근로시간 산정 특례)”다. 이 조항은 월급제 시행을 위해 택시노동자의 소정근로시간을 “1주간 40시간 이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문제는 이 신설조항의 ‘시행일’이었다. 서울시에서는 2021년 1월 1일부터 적용하되,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는 해당 조항 공포 이후 “5년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로 시행일을 미룬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대통령령’은 나오지 않았다. 택시 자본은 이 공백을 비집고 들어와 어용노조를 앞세워 사납금제로 회귀하려는 술책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방조 속에

월급제 무력화하는 택시 자본

 

과거 택시 자본은 사납금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초과착취하며 최저임금법을 무력화했다. 그런데 사납금제가 공식 폐지된 지금, 자본가들의 행태는 더 악랄하게 ‘진화’했다. 1일 4교대로 배차시간은 5시간, 소정근로시간은 3.5시간으로 줄이는 수법을 사용해 노동자들을 월 90만 원짜리 ‘아르바이트 월급제’로 내모는 것이다. 이런 편법은 전국적으로 횡행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지적했듯,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주 40시간 소정근로시간’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생활고에 직면한 택시지부 조합원들이 퀵서비스나 대리운전 등 투잡‧쓰리잡까지 뛰면서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하면, 택시 자본은 단체협약에 ‘이중취업 금지조항’을 신설해 조합원 해고를 남발한다. 자본가들이 이런 악행을 벌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민주노조를 탈퇴하고 어용노조에 가입해서 종전의 사납금제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간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택시발전법 제11조의2” 조항이 서울을 제외한 전국 택시 현장에서 시행되지 않는 것은 택시 최저임금을 사실상 지역에 따라 차등화함으로써 자본가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온전한 택시 월급제 전국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을 이용해 지역별‧업종별‧사업 규모별 최저임금 차등화 시도가 택시 현장에서부터 벌어지고 있다.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다. 택시발전법 제11조의2 시행이 지연되자, 정년을 3년여 앞둔 택시지부 조합원들은 30여 년을 뼛속까지 착취당한 것도 모자라 평균임금 90만 원에 퇴직금까지 반 토막 날 지경에 처해 사실상 해고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택시지부 전주 수정택시분회 조합원 6명이 반강제로 해고당했고, 전국의 택시지부 조합원 중 정년을 앞둔 장기근속 조합원들이 모두 같은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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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공공교통을 위해

투쟁하는 택시노동자들

 

이번 6월 6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 고공농성에 돌입한 노동자는 택시지부 부산지회 동원운수분회 명재형 분회장이다. 그는 “대통령과 국토부는 택시발전법 11조의2 즉각 시행하라!”고 외치며 하늘로 올랐다. 조금 전 거론한 택시지부 장기근속 조합원들도 모두 같은 요구를 내걸고 앞장서 싸우고 있다.

 

명재형 분회장이 또다시 목숨을 담보로 고공에 올라 투쟁하는 이유는 완전월급제 즉각 시행만이 이용 시민에게 안전하고 친절한 택시와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노동자가 최저임금은커녕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온갖 부업과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안전하고 친절한 택시 운행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 40시간‧월 209시간의 최저임금 보장, 즉 최소한의 생활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택시발전법 11조의2를 지금 당장 전면 시행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현 상황을 방관하며 택시 월급제 시행을 미루는 데 급급하고, 자본은 그 공백을 이용해 택시노동자를 억압하면서 사납금제 부활을 시도한다. 이에 따라 택시노동자의 생존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그렇기에, 택시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에 맞서 안전한 공공교통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다. 명재형 분회장과 택시지부 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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