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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공동결정제 입법 청원…

 

양보교섭과 그린워싱이

대안일 수는 없다

 

 

기관지위원회

 

 

 

지난 6월 25일, 금속노조가 ‘공동결정법 제정’ 입법 청원을 시작했다. 전기차‧자율주행차와 탄소 배출 감축 등 산업 전환과 그에 따른 일자리 위기에 대응한다며 노사정으로 구성하는 위원회를 전국은 물론이고 지역‧산업‧업종별로 꾸리고, 각 사업장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노사 공동결정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올 초 금속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이 사업계획을 확정했을 때 <변혁정치>는 공동결정제가 노사 협조주의를 부추김으로써 자본과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구조조정에 맞설 수도 없고 오히려 노동계급을 생산성 강화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비판한 바 있다(<변혁정치> 124호(4월 1일 자) 이슈 “공동결정제: 또다시 노사협조주의 덫에 빠질 것인가” 참고). 이후 민주노총 집행부 역시 해당 사업이 사회적 합의기구로 귀결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입법 청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금속노조는 청원 운동을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공동결정법 입법 청원 진척 상황을 보면, 마감 기한인 7월 말까지 요건(10만 동의)을 충족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10만 청원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노사정 합의체제는 당면한 산업구조조정에서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고 노조운동을 순치하기 위해 다른 누구보다 정부가 앞장서 추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입법 청원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산업전환과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령, 지난 5월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지역 노사정 협력 선언을 추진하려다 활동가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는데, 금속노조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게 된다.

 

 

 

양보교섭과 그린워싱

 

“지금 구조조정 문제는 교섭 형식이나 틀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결국 산업전환의 핵심 열쇠를 쥔 건 완성차 재벌이다. 금속노조에서 그간 10년 넘도록 산별교섭을 진행해왔지만, 완성차 자본은 그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 그들과 제대로 투쟁하지도, 그럴 힘을 노조가 조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투쟁을 만들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데, 싸움은 피하면서 계속 교섭 형식에 매달리고 있다.”

 

자동차 부품사 사업장인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 조남덕 지회장은 공동결정제 입법 청원을 비판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자본은 지금도 산별교섭을 거부하고 있는데, 노사정으로 구성된 별도 테이블을 꾸린다고 이들이 갑자기 교섭에 나오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뭔가를 양보하면 교섭에 나가보겠다’고 고압적 태도로 버틸 가능성이 크다(그 가운데 정부 역시 ‘중재’라는 명목으로 노동조합에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시작부터 양보교섭을 강요받으며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판이다.

 

금속노조가 노사정 합의와 공동결정을 앞세워 자본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속노조 김한주 교육부장은 “금속노조가 제시하는 산업전환 노사정 협약은 ‘동반성장 상생구조 마련’이나 ‘산업경쟁력 강화’ 등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산업전환기에 사실상 투쟁 기조를 내려놓는 것과 다름없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노사 상생’이라는 미명하에 결국 위기는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십상인데, 가령 작년에도 울산에서 ‘노사정 상생협약’이 체결되고 불과 15일 뒤 울산중앙병원에서 청소노동자 집단해고가 벌어졌다고 한다. 김한주 부장은 “울산시는 이미지를, 자본은 이윤을 챙겼고, 노동자만 잃었다”고 지적하며 “자본과 정부에게 산업전환기 노사정 협약은 또 다른 ‘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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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동자(변백선)]

 

 

부품사 노동자 짓밟힐 동안…

 

한편, 산업전환 이슈가 두드러지는 자동차산업의 경우 완성차 자본이 흐름을 주도하지만 가장 먼저 위기에 맞닥뜨리는 건 취약한 부품사 노동자, 특히 내연기관 관련 품목을 만드는 노동자들이다. 금속노조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공동결정제와 노사정 협약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삼고 있다. 닥쳐오는 산업구조조정에서 완성차-부품사 노동자들이 공동의 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태껏 그런 단결된 투쟁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교섭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

 

“지난 10여 년간 부품사 노조파괴가 곳곳에서 벌어졌는데, 완성차 노조가 그에 맞선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당장 작년에는 내연기관 부품사이자 현대차 1차 협력사인 한국게이츠가 흑자폐업을 강행하며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는데도 원하청 공동투쟁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게 아니라 노사정 교섭이나 공동결정제 얘기를 꺼내는 건 부품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먼 산 보듯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자동차 엔진 부품 사업장이자 현대차 지시로 10년간 가혹한 노조파괴를 겪었던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 김성민 전 지회장의 문제제기다.

 

이번 공동결정제 10만 청원이 숫자를 채우지 못해 무위로 돌아가더라도, 기후위기와 산업재편이 가속하는 가운데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노조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운동단체들까지 끌어들이며 더욱 강화될 것이다. 노조운동이 속수무책으로 양보교섭과 고통전가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현재 금속노조의 구조조정 대응이 내포한 노사정 합의와 노사협조의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안 투쟁을 위한 준비와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물론, 여태껏 완성차-부품사 노동자 공동투쟁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현실에서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현장 활동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상황 진단과 함께 완성차 재벌을 상대로 어떤 요구를 제기하며 싸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침묵이 답이 될 수 없는 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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