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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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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착취의 현실을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선준┃서울대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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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50대 청소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2019년 8월 9일 서울대 공대에서는 한여름 더위 속에 창문도 에어컨도 없던 열악한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한 명의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한 것이다.

 

고인과 동료 청소노동자들은 올해 6월 1일 새로 부임한 관리자(안전관리팀장) 등 학교 측으로부터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한다. 특히 고인이 근무하던 기숙사는 건물이 크고 학생 수도 많아 일이 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학교당국이 기숙사 식당을 폐쇄하고 학내 식당 영업시간을 축소하면서 배달‧포장음식 소비가 늘었다. 이로 인해 쓰레기양이 크게 증가했고, 고인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서 100리터짜리 대형 쓰레기봉투를 매일 6~7개씩 처리하며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도 직접 날라야 했다.

 

이 가운데 새로 부임한 관리자는 청소노동자들의 ‘기강’을 잡는다며 군대식 업무 지시를 도입했다. 또, 청소노동자들이 볼펜이나 수첩을 가져오지 않으면 평가에서 감점하겠다며 협박했다. 심지어 청소노동자들에게 기숙사 명칭(‘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개관연도를 물어보는 등 업무와 전혀 관계없고 필요도 없는 시험을 강요했다. 시험을 본 후에는 ‘채점’을 해 나눠 주고 각자의 점수를 공개하는 등, 청소노동자들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며 직장 갑질을 자행했다. 특히 6월 21일에는 기숙사 행정실장과 부장‧팀장 등 관리자 3~4명이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군대식 청소 검열을 진행해 모든 청소노동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작업 강도도 폭증했다.

 

 

 

고인과 유족, 노조

갈라치기 하는 서울대

 

불과 2년 만에 다시 발생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서울대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년 전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지자 보여주기식 개선에 그쳤을 뿐이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무거운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동시에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혹한 노동환경과 관리자 갑질 속에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에 유족과 노동조합(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당국에 △산재 공동 조사단 구성을 통한 진상 규명 △직장 갑질 자행한 관리자 파면 △강압적인 군대식 인사관리 개선 △청소‧경비 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의 요구를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대 당국은 노조의 요구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으며 진정성 있는 사과도, 피해자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고인이 근무하던 관악학생생활관 부관장은 ‘노조가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사생들에게 돌렸다. 그들은 노조와 고인, 유족을 의도적으로 분리하며 노조를 음해했다.

 

게다가 대학본부 보직교수인 학생처장은 개인 페이스북에 ‘갑질은 없었다, 노조가 거짓말을 하며 유족의 뜻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적반하장식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학생처장은 고인이 ‘시험에서 1등을 했다’거나 ‘관리자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하는가 하면, 관리자에 대해서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우수 직원으로 학교 표창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갑질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갑질이 없었’음을 전혀 뒷받침할 수 없는 얘기일 뿐이다. 시험에서 1등을 했으면 그 시험은 스트레스가 아닌 것인가? 상급자에게 예의로라도 ‘감사’를 표하면 갑질을 당하지 않은 것인가? 학교가 해당 관리자를 ‘우수 직원’으로 선정한 것과 그의 갑질이 무슨 상관인가? 결국 이 변명은 그저 사측 입장에서 관리자를 감싸는 것이며, 서울대 당국도 갑질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가해자이자 공범임을 보여줄 뿐이다. 유족 역시 관리자 갑질은 분명 존재했다고 반박했고, 고인이 학교 측의 갑질에 적극 동조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모욕이며 오히려 고인은 관리자에게 적극적으로 반발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관리자 한 명의 문제 아냐…

서울대 노동환경

자체가 문제

 

이번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중간관리자 한 명의 문제로 국한해선 안 된다. 서울대 당국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용 절감 대상으로 취급해왔다. 해당 관리자가 팀장으로 임명되는 과정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됐다. 그 팀장은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서비스의 민간투자사업효과: 서울대학교 BTL[임대형 민자 사업] 학생생활관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해당 논문에서 그는 ‘BTL 기숙사의 효율성’을 다루면서 이를 서울대 ‘재정 기숙사’(민간업체를 끌어들이지 않고 학교가 직접 운영하는 기숙사)와 비교했다. 재정 기숙사는 ‘인건비 등 고정지출이 많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업무에 대한 관리감시 소홀이나 체계적인 교육 훈련의 부재”를 ‘비효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가 기숙사 관리자로 부임한 뒤 군대식 청소 검열과 복장 규제를 만들고 청소노동자들에게 엉뚱한 시험을 강요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논문 막바지에서는 “공공의 영역이 민간의 영역보다 비능률적이고 경직되어 있다.… 민간의 운영 방식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공공의 영역에 도입한다면 공공의 영역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서술하는데, 학내 복지에 대한 공적 책임을 방기‧축소하고 민영화하려는 학교의 자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서울대 당국이 그를 팀장으로 임명하고 노동자의 ‘기강’을 잡게 한 것은 학교 또한 갑질 가해자이며 공범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갑질 가해자 1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서울대의 노동구조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2년 사이 두 명의 청소노동자가 사망할 동안, 서울대는 노동자를 비용 절감 대상, ‘기강’을 잡아야 할 대상으로 보면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았다. 열악한 휴게실 문제도 그간 노조의 개선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2019년 사망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보여주기식으로 개선하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이번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학교가 유족과 피해 노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죽음과 갑질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함으로써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진정한 정규직화가 필요하다. 또 다른 비극적 죽음을 막기 위해, 서울대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지지와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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