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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에 내맡긴

장애인 이동권…

 

 

이동할 권리와 노동할 권리,

공공이 보장하라

- 세종시 특별교통수단 ‘누리콜’ 공영화 투쟁

 

 

유금문┃사회운동위원회

 

 

 

거리에서 장애인 콜택시 차량을 보면 ‘당연히 공공에서 운영하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영화나 다름없는 ‘민간위탁’이 광범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 가운데 300여 일을 이어온 ‘세종시 특별교통수단 누리콜’(장애인 콜택시, 이하 ‘누리콜’) 공영화 투쟁이 얼마 전 일단락됐다. 장애운동 단체들과 공공운수노조 세종시 누리콜지회가 힘을 합쳐 싸운 결과다. 176일간의 천막농성과 더불어 누리콜지회 강태훈 지회장이 15일간 단식을 감행하며 쟁취한 성과지만, 아직 투쟁의 깃발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누리콜’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세종시가 운영하는 특별교통수단이지만, 시 당국은 지난 9년간 ‘세종시 지체장애인협회’에 사업을 위탁했다. 그 결과 누리콜 노동자는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렸고, 누리콜 이용자가 운전원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일까지 있었다. 누리콜 위탁운영자인 세종시 지체장애인협회는 가해자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계속 운전원으로 일하면서, 피해자가 언제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 상황도 벌어졌다. 세종시의 책임 회피 속에 노동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안전한 이동권 모두 위험에 노출됐고, 특정 장애인단체만 이권을 챙겼다.

 

세종시 면적은 서울의 3/4에 달하지만, 특별교통수단은 17대(2021년 기준 서울시는 685대), 차고지는 1곳에 불과하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8개 특별‧광역시 교통복지 수준 종합평가’에서 세종시는 울산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누리콜 이용자들은 모바일 신청앱에서 매달 ‘예약 전쟁’을 치러야 하고, 하나뿐인 차고지에서 차량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마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자정이 넘으면 이용할 수 없다.

 

이렇듯 △즉시콜 도입 회피 △공적 책임 부재 △이윤 추구 우선 △특정 장애인단체에 일감 몰아주기 등 문제가 산적하지만, 많은 지자체가 특별교통수단을 민간위탁에 내맡긴다. 특별‧광역시 가운데 울산과 세종은 장애인협회가, 경기도를 제외한 8개 도(道) 대다수 시‧군에서는 장애인단체가 특별교통수단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지자체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2019년 기준 경기와 경남을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서 특별교통수단은 법정 대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공 운영 첫발 뗐지만

온전한 고용승계 거부한 세종시

 

다시 세종으로 돌아와 보자. 지난 12월, ‘세종시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및 공공성 강화 시민대책위원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특별교통수단 공영화를 비롯해 △차량 추가 배치 △24시간 및 휴일 운영 △즉시콜 시행 △성폭력 사건 해결 △세종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 등 8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세종시청 로비 점거 등 치열한 투쟁 끝에 △누리콜 증차 △바우처 택시(지자체가 장애인 이용요금을 지원하는 택시) 도입 △예산 증액 등 장애인 이동권 요구안을 쟁취했고, 지난 3월에는 세종시 특별교통수단 위탁 공모에 세종도시교통공사가 선정됐다. 도시교통공사가 수탁기관으로 3년간 누리콜을 운영하게 되는데, 비록 온전한 공영화는 아니지만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바로 누리콜 노동자 고용승계다. 세종도시교통공사는 누리콜지회 강태훈 지회장을 포함해 기존 운전원 절반이 응시조차 할 수 없는 채용공고를 발표했다. 전형적인 ‘찍어내기’였다. 이 때문에 강태훈 지회장은 단식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부조차 고용승계 정당성을 인정했지만, 세종시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지회장 단식 14일 차인 지난 6월 2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춘희 세종시장의 집에 찾아가 면담을 요구한 끝에 장애계‧누리콜 노조‧세종시‧도시교통공사 등 4자 면담을 거쳐 기존 누리콜 운전원이 채용에 응시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이 탈락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100% 고용승계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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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활동가들이 세종시 누리콜 노동자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세종시청을 점거한 모습. [사진: 비마이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과 이동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는

따로 있지 않다

 

이처럼 아쉬운 대목이 남아 있지만, 세종시 누리콜 투쟁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우선 노조와 시민사회대책위의 투쟁이 장애계와 연대하며 전국 투쟁으로 발전했고, 300여 일에 걸친 싸움으로 특별교통수단 공영화의 첫발을 뗐다. 2019년 기준 56개 시‧군에서 장애인단체가 특별교통수단을 민간위탁 형태로 운영 중이고, 이외에도 사회복지재단‧협회‧운송사업자 등 기업이나 단체가 맡고 있는 곳도 수두룩하다. 세종시 누리콜 투쟁은 전국적인 특별교통수단 공영화 투쟁의 시작이다.

 

반갑게도, 이번 투쟁을 바탕으로 ‘세종 장애인차별철폐연대’(세종 장차연)가 건설됐다. 투쟁을 이끈 누리콜지회와 누리콜 이용자연대가 주축이 되어 세종 장차연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세종시의 진보적 장애운동을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특별교통수단 문제 외에도, ‘행정수도’라는 세종시는 장애인이 살 수 없는 도시다. 저상버스 도입률은 8%에 불과하고, 평생교육예산 19억 원 가운데 장애인 평생교육예산은 단 한 푼도 없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도 전무해, 2014년 이후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정착한 장애인은 7명에 불과하다.

 

장애인권 불모지 세종시를 바꾸기 위해, 지난 6월 18일 세종 장차연은 또다시 투쟁을 선포했다.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차별버스’의 앞을 막고 도로를 점거한 것이다. 지난 3월 26일 전달했던 ‘세종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7대 정책요구안’을 시 당국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세종시 누리콜의 완전한 공공성과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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