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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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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절감 명목으로

교통안전과 노동권 포기하는

구조조정안

 

노동자와 시민에게는

서울‘고통’공사

 

 

정주회┃서울

 

 

 

악몽의 귀환,

답은 정해져 있었다

 

6월 8일, 서울교통공사가 1,539명 구조조정안을 제시했다. 총 정원 16,488명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코로나19로 누적 적자가 1조 6천억 원에 달하게 된 상황을 인력 감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기시감이 든다. 과거 이명박 정권은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각 공공기관 정원을 감축하고 복지정책을 난도질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치하에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현재는 양사 통합으로 ‘서울교통공사’)는 퇴출제, 업무 외주화, 인력 감축을 추진한 전적이 있다.

 

이처럼 서울시 도시철도의 역사는 책임 전가의 역사였다. 건설 채권부터 시작해서 무임승차를 비롯한 운영과 노후시설 보수, 차량 교체 비용 등의 책임은 전적으로 운영기관의 몫이었다. 그러는 동안 서울시는 노동자들이 과도한 복지 혜택을 누린다거나 운영기관이 불필요한 인력을 채용해서 적자가 심화된 것처럼 묘사해왔다. 그런 손쉬운 접근법에 얼마나 익숙했던지,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승객이 감소하는 바람에 큰 폭으로 증가한 재정 적자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억지를 너무 자연스럽게 부리고 있다.

 

 

 

오로지

‘비용 절감’만을 위한 구조조정,

안전과 노동권은 뒷전

 

이번 구조조정안 역시 비용 절감이라는 목표를 위해 안전을 비롯한 가치와 권리를 짓밟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첫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구조조정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업무 효율화를 통한 인원 감축 방안(521명)’이다. 그중 절반 이상이 차량 정비 인력(286명)이다. 2019년부터 신형 전동차를 대거 도입했다 하지만, 검수 인력을 줄이고 정비 주기를 늘려놓으면 그 한계는 언젠가 어디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뿐 아니라 역무, 신호, 보안관 직무에서도 인력 감축을 예고했다. 신호 분야에서의 관리 부실이 2014년 상왕십리역 전동열차 추돌사고로 이어졌듯, 차량‧신호‧시설‧역무 등 어느 한 분야에서 구멍이 난다면 다음번 사고는 바로 그곳에서 발생할 것이다.

 

둘째는 직접 감축 못지않게 심각한 내용으로, 자회사 또는 민간업체 위탁을 통한 인력 감축 방안이다. 위탁 대상 업무는 전동차 운행 중 고장 발생 시 긴급 출동해서 정비하는 업무(차량기동반), 기지 내 차량 입환(철도 차량을 이동‧분리‧연결하는 작업) 업무(구내운전), 시설 보수 업무(궤도시설 보수, 특수차량), 후생 지원 업무 등이다. 박원순 전 시장 재직 시절 정규직으로 전환한 직무도 포함됐다. 이들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구의역 참사는 스크린도어 보수 업무와 관제‧운전 업무 간 협력이 어긋난 순간 발생했다. 철도 안전과 관련한 수많은 업무 중 하나라도 다른 회사가 담당하거나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면 바로 그 취약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운 게 불과 5년 전이다.

 

셋째, 비(非)숙박 도입 등 근무형태 변경, 직렬 통합 등 조직개편, 복지제도 축소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유럽에서는 숙박제도가 거의 없이 철도를 운영하는 사례가 있고, 직장에서 숙박을 안 하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근무형태, 조직, 복지제도는 노동자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령 노동조합의 오랜 요구로 기존 3조 2교대제를 4조 2교대제로 막 대체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비숙박 도입은 현행 4조 2교대제를 사실상 폐기하고 근무형태를 멋대로 재편하겠다는 선언이다. 애당초 비용 절감 관점으로만 접근해선 안 될 제도들을 무대포로 바꿔놓고 조직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노동자들이 근무조건과 복지제도, 조직개편에 관해 요구안을 제시하면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경영자들의 특기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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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궤도협의회]

 

 

공공교통 재정을 둘러싸고

다시 서게 된 선택의 갈림길

 

이전까지 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자의 규율 위반이나 시행업체의 무능 정도로 꼬리를 자르고 넘어갔던 수많은 철도 사고의 진짜 배경으로 위험의 외주화와 인력‧예산 부족을 지목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구의역 참사 같은 수많은 사고를 겪으며 투쟁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비로소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시철도 노동자와 시민은 서울시의 도발로 다시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제까지의 투쟁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을 다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예전처럼 ‘경영 효율화’로 문제를 덮고 넘어가는 데 급급할 것이냐. 후자로 결론이 난다면, 과거에 발생한 사고들을 다시 목격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사실 이전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서울시 구조조정안에 포함된 외주화 방안은 특히나 우려스럽다. 외주화와 민간 위탁이 ‘옳은 선택’이었으며 ‘무리한 정규직 전환에 공공교통 위기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책에 많은 한계가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예 재(再)비정규직화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시작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번 구조조정안이 아니더라도 도시철도 재정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진흙탕 싸움이다. 요금 인상(승객 책임), 무임승차 축소(노인 책임), 구조조정(노동자 책임), 외주화(정규직 전환된 무기계약직 책임) 등 노동자와 시민의 폭탄 돌리기가 된 지 오래다. 공공교통이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으름장만 놓기 바쁘다. 정부의 방관과 서울시의 뻔뻔한 도발 앞에서 양보와 타협을 고민하기 이전에, 이번 도발을 공공교통 운영의 책임 소재를 정확하게 겨누는 역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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