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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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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7.19 14:01

[번역]

 

 

아마존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

 

 

* 편집자: 지난 6월, 한국에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변혁정치>는 128호(6월 15일 자) 기획쿠팡 물류센터, 노조 깃발 뜨다”에서 다단계 단기 계약직 구조 등 쿠팡의 노무관리와 통제방식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쿠팡의 이런 행태는 ‘글로벌 업계 최강자’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것처럼 거의 흡사하다. 아마존은 오랫동안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를 대거 활용하면서 세밀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한편 노골적인 반(反)노조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에 맞서 아마존 노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파업과 노조 조직화 등 지난한 저항을 이어왔다. 이제 막 쿠팡에서 노동조합을 만든 우리에게, 아마존 노동자들이 겪어온 일들은 중요한 참고가 될 만하다. 이 글은 독일 로자룩셈부르크 재단이 펴낸 <The Long Struggle of the Amazon Employees> 개정증보판(2019년)의 앞부분 가운데 주요 내용을 뽑아 압축하고 번역한 것이다.

 

 

- 번역‧편집: 기관지위원회

 

 

 

지난 2013년 4월, 독일 중부의 작은 마을 바트 헤어스펠트(Bad Hersfeld)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노동자 1,100여 명이 아마존 20년 역사상 최초로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세계 최대 물류기업에 맞선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6년이 지나도록 아마존은 단체교섭을 시작하는 것조차 완고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아마존 물류센터는 여러 악조건과 심각한 노조파괴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곳보다 노조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근거지가 되고 있다. 아마존의 사업장별 파업위원회들은 쟁의 전략을 논의하고 실행하며, 여러 사업장에서 모인 노동자들은 상호 접촉하면서 해외의 아마존 노동자들과도 연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적 차원은 물론이고 몇몇 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연대 조직이 이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을 기울여도 노동조합의 대중적 동원은 쉽지 않다. 고용구조가 이질적으로 분절된 데다 사측의 반(反)노조 압력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특히 아마존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물류센터를 짓는 전략을 오랫동안 추구했는데, 이런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다른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신규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계약직 비중이 매우 크다. 또한, 아마존은 파업이 벌어진 물류센터에서 물량을 빼내 다른 곳으로 돌리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물류센터

: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공장’

 

아마존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여타 인터넷 기업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점은 바로 수만 명의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이다. 아마존 물류센터는 집품‧포장‧배송 작업이 이뤄지는 곳으로, 축구장 몇 개를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의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아마존은 작업장 조직의 복잡한 시스템을 도입해 노동자들을 착취에 체계적으로 종속시키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주요한 세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적 수단과 권위주의적 관리 기법을 통해 노동자를 감시하며 인간 노동력을 작업에 최적화한다. 아마존은 분업을 극도로 밀어붙여 작업단계를 쪼개고 표준화할 뿐만 아니라, 각 작업에 드는 시간까지 배정한다. 게다가 노동자를 감시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노동자의 모든 동작을 디지털 장치로 체크하면서 작업속도를 측정하고 비교하는데, 심지어 화장실에 가거나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기록된다. 이는 이른바 ‘피드백 토크’, 곧 일종의 근무평가로 이어진다.

 

이를 토대로 사측은 노동자들끼리 서로 경쟁시켜 상대적으로 작업속도가 떨어지는 노동자에게 ‘저성과자’ 낙인을 찍는다. 이런 기술적 감시와 함께 관리자들의 감시가 동반하는데, 작업속도가 빠르지 않은 노동자는 관리자에게 호출되어 ‘피드백 토크’의 대상이 된다. 특히 아마존의 수많은 계약직 노동자들은 근무평가가 낮으면 재계약에서 탈락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런 감시‧관리 시스템의 부담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둘째, 아마존은 ‘팀’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면서도 실제로는 노동자들을 파편화하는 동시에 노동조합 활동을 체계적으로 방해한다. “열심히 일하자, 재미를 느끼자, 역사를 만들자”는 아마존의 가장 유명한 모토일 것이다. 이는 전세계 아마존 노동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최고의 업무능력을 갖추며” “어제보다 더 빠르게” 일하도록 부추기기 위함이다. 그와 동시에 아마존은 사업장과 부서, 궁극적으로는 개별 노동자를 서로 경쟁시킨다. 아마존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장 관리자들은 작업장에서 동료들과 대화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한편 노동자들 사이에 친교나 상호부조의 싹을 자르기 위해 뛰어다닌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의심받는데, 작업장 곳곳에는 금속탐지기와 보안검색대가 설치돼 있다. 이런 실정이니 아마존에서 노동조합 활동이나 단체행동의 권리는 더욱 제약된다.

 

셋째, 높은 계약직 비중과 불안정 노동자 사용은 아마존 사업 모델의 일환이다. 아마존이 물류센터를 지은 곳들을 살펴보면, 실업률이 평균보다 높고 임금수준은 낮은 지역임이 확인된다. 인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마존은 대규모 저임금 노동이 필요했고, 구조적 대량실업과 불완전 고용은 아마존 사업 모델에 없어서는 안 될 외부적 생산요소인 것이다. 특히 2년 계약직은 이 회사에서 거의 규범처럼 자리 잡았다. 물론, 고용기간을 왜 2년으로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는 없다. 계약직 비율은 특히 신규 물류센터에서 극단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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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아마존 규탄 시위 중 참가자들이 '아마존이 지불하게 하라!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천을 들고 있다. [사진: wikipedia]

 

 

 

노조파괴와 저항

 

노동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감시와 통제는 아마존의 뿌리 깊은 반(反)노조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여태껏 아마존은 어떤 사업장에서도 노동조합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존 물류센터가 자리 잡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지난한 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가령 17개 물류센터에서 2만 명 이상이 일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1998년 아마존이 처음 현지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01년부터 일찌감치 노조 조직화 시도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너무 빠른 작업속도, 그리고 심각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런데 영국 노동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측의 동의나 노동자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했다. 노조 결성 움직임이 일자 처음에 사측은 이 ‘노조 인정’에 관한 대화 테이블에 응했지만, 협상을 질질 끌기만 했다. 그렇게 2달여를 보낸 뒤 아마존은 대대적인 노조파괴에 착수했다. 노조 지도부를 해고하고 모든 노동자를 상대로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는 한편, 관리자들을 동원해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등 광범한 반(反)노조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노조 인정 여부에 대한 직원 투표에서 ‘찬성’은 15%에 머물렀고, 노동조합은 뿌리를 내릴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당시 노조파괴 공작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이후로도 조직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노동자들은 아마존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탈세 행위, 환경파괴 등을 폭로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 여론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 당시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선 대중투쟁과 2018~19년 ‘노란조끼’ 운동의 영향으로 아마존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이 벌어졌다. 특히 아마존은 노란조끼 시위의 주요한 표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아마존은 노조활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여기에서는 어용노조를 지원하며 노동자들을 분열시켰다. 이곳뿐만 아니라 폴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아마존은 복수노조를 활용하거나 교섭을 해태하고 노동조합을 ‘외부세력’으로 비방하는 등 갖가지 반(反)노조 행위를 자행했다. 본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아마존은 공공연하게 노조에 적대적인 언사를 숨기지 않으며 아예 노조파괴 전문 로펌과 계약을 맺고 노조 조직화 조짐이 보이면 직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노조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아마존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곳곳에서 싸우고 있다. 일감이 몰리는 시즌에 파업에 나선다거나, 노조 활동가들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지치지 않고 조직화 사업에 투입된다거나, 물류센터뿐만 아니라 배송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로까지 확장한다거나, 해외 아마존 노동조합과 국제 연대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등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거래‧물류기업으로 떠오른 아마존의 사업방식을 후발주자들이 벤치마킹하는 만큼, 아마존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산업 전체의 노사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싸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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