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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6.0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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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과 관람 자체가

투쟁이었다

 

 

<소개하는 영화>

장산곶매, <파업전야>, 1990.

 

 

바람┃기관지위원회

 

 

 

‘파업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나서서 상영을 금지하고, 극장에 난입해 필름과 영사기를 압수했던 영화. 상영을 막기 위해 경찰이 헬기와 최루탄까지 동원하자, 학생과 노동자들이 사수대를 꾸려 탄압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비밀리에 상영을 이어가면서 전국적으로 약 30만 명이 관람한 영화. 그렇기에, ‘상영하고 관람하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던 영화.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영화 제작단체 “장산곶매”의 장동홍‧이은‧이재구‧장윤현 감독이 연출한 <파업전야>(1990년)다.

 

<파업전야>는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파업에 나서고 사측에 대항해 투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영화의 줄거리는 특별하다기보다,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현실적인 묘사가 정부와 자본에 두려움을 줬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볼 수 없게 탄압한 것이다.

 

 

 

침묵 속에 밥 먹던 손으로

연장 들고 구사대와

싸우기까지

 

영화는 한 금속가공 공장의 식사 시간 장면으로 시작한다. 배식과 식사가 이어지던 중, 노동자 한 명이 책상 위로 올라가 연설에 나선다. ‘회사는 매일 어렵다면서 임금 인상도 없고, 잔업에 특근에 더 이상은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울부짖음이었다. 하지만 이 노동자는 곧이어 사측 관리자들에게 끌려나간다. 관리자가 지각하는 노동자를 폭행하는 등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이 계속된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끝없는 잔업과 특근에 지친 노동자 ‘원기’는 친한 동료 ‘석구’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하자고 제안한다. 석구도 흔쾌히 동의하면서 이들은 노조 설립 준비에 나선다. 주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정당성을 알리고, 다른 부서 노동자들과도 족구 시합을 통해 친목을 키운다. 하지만 이런 낌새를 눈치챈 사측은 노조 탄압을 준비하고, 관리자는 ‘한수’라는 노동자에게 승진을 약속하면서 주변 동료에 대한 고자질을 종용한다.

 

한편, 동료 노동자들을 모은 원기와 석구는 노동절 집회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임금투쟁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노동자로서의 자기의식을 형성해간다. 그러나 이후 학생 출신 노동자 ‘완익’이 위장 취업했다는 게 발각돼 경찰에 끌려가면서,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빨갱이 말에 속았다’며 혼란스러워한다.

 

여러 노동자들이 불안해했지만, 결국 노조는 설립을 마치고 공장 안에서 보고대회를 연다. 사측은 공장을 폐쇄하고 구사대를 동원해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는 한편, 노조 핵심 인물들을 해고한다. 구사대의 일원이 된 한수는 여태까지 자신과 친했던 동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이런 탄압에도 노조가 굴하지 않자, 사측은 급기야 노조를 조직한 주동자 원기를 제거하려고 교통사고를 낸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원기를 본 노동자들은 분노를 터뜨리며 공장을 점거하지만, 용역을 동원한 폭력 진압 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 나온다. 구사대 노릇을 하던 한수는 결국 더 이상 사측의 만행을 참지 못하고 연장을 들어 올린다. 다른 노동자들도 한수에게 호응하며 각자 연장을 들고 구사대에 달려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오래된,

그러나 변하지 않은 사실

 

이렇듯 영화의 골조는 노동자가 계급의식으로 각성하면서 자본가에 대항해 투쟁에 나서는 내용이다. 메시지 자체는 간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이 바로 그런 메시지에 공명하며 저항하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많은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충분히 겪을 만한 일들을 묘사한다. 자신의 일터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그에 맞서려 하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거나 관리자를 통해 회유‧협박하면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도 영화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1990년에 처음 개봉한 영화지만, ‘옛날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의 모습과도 매우 유사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노동자들이 과거보다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불안정 일자리 양산이 계속되면서, 가뜩이나 상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할 엄두를 내기가 더 힘들다. 이를 방증하듯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3% 어간에 그친다. 설령 노조에 가입하더라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바로 해고당하는 사태에 직면한다. 자본의 극심한 노조 탄압도 현재진행형으로, 어용노조 설립과 교섭 창구 단일화 등 온갖 방법으로 민주노조를 고사시키거나 파괴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이 노동조합 파괴에 혈안인 까닭은 단결한 노동자들의 힘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로 단결해 싸우면서 계급의식을 형성하고 공장을 넘어 정치 투쟁으로 나아갈 때, 자신들이 유지하고 있는 체제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가운데서도 ‘노동자들이 함께 뭉쳐 싸울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파업전야>가 새삼 일깨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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