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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6.01 19:09

불안정노동자들의 플랫폼

 

 

이종회┃대표

 

 

 

1.

1979년 수상에 취임한 영국의 대처는 ‘조합주의-완전고용-복지국가’로 상징되는 ‘사회적 합의’ 체제를 의식적으로 깨기 시작했다. 1970년대 지속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처방으로 ‘통화주의’*를 채택하고, 한편으로는 조세삭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보장 축소와 규제완화‧사유화(민영화)를 추진했다. 362일간 계속된 탄광노조 파업을 진압하고 ‘클로즈드 숍’(노조 조합원만 고용하는 제도)을 금지했으며, 지원파업이나 ‘동정파업’(다른 노조를 지원하는 파업)은 불법화했다. 산별교섭이 아닌 기업별교섭을 강제했고, 노동조합개혁법‧고용법 등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를 더욱 제한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높아지고 노동시간은 늘어났으며, 불안정노동은 확대됐다.

 

이후 영국 노동당은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 모두를 지양하는 현대화한 사회민주주의’라며 ‘제3의 길’을 표방했다.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기회를 줘야 하지만, 능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소득불평등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확산하는 ‘공정성’ 논리와 다르지 않다. 결국 국유화-완전고용-복지국가 지향을 담았던 노동당 당헌 4조가 폐기되고, ‘계급정치’가 아니라 ‘국민정치’를 내세운 토니 블레어가 수상이 된다.

 

이런 흐름은 유럽으로 퍼졌고, 1996년 이탈리아에서 ‘올리브 연합’(Olive Tree Coalition)이 집권한 데 이어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사회당 또는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승리했다. 미국 클린턴 정권도 실질적으로 같은 궤도에 있었고, ‘제3의 길’은 결국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다.

 

아울러 1993년 마스트리흐트 조약 체결과 1994년 EU 출범, 1999년 유로 통화 체제 도입, 2007년 기존 ‘유럽헌법’을 대체한 리스본 조약 체결 등 유럽연합 체제가 성립하면서 복지국가 모델은 파괴되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구축됐다. 유럽 전역이 민영화 도가니에 빠졌고, 임금‧고용‧연금 등 사회보장 정책도 EU의 규제 영역에 들어갔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노동자민중 투쟁과 최근 프랑스 노란조끼 투쟁처럼 거의 모든 국민적 저항은 신자유주의 유럽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렇듯 ‘아래로부터 위로의 재분배’**를 거치며 유럽 불안정노동 체제가 구축됐다.

 

 

 

2.

내년 초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 김종인이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을 불러냈다. 압도적 지지율을 등에 업고 대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윤석열에게 ‘국민의힘에 들어가지 말고 독자적으로 나서라’며 예로 든 것이다.

 

사회당 정권에서 장관까지 역임한 마크롱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앙 마르슈’(‘전진’)라는 정치조직을 만들어 당선됐다.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이후 사회당이나 공화당 소속이 아닌 후보로는 60여 년 만에 처음이었고, 이어진 총선에서도 앙 마르슈는 압승했다.

 

프랑스도 불안정노동 체제로 재편된 결과 1990년대 이후 노조 조직률이 10% 전후로 하락했다. 전통적 제조업과 기업노조에 기반한 프랑스 노총들은 불안정노동 증대와 하청‧파견 확대 등 노동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제1노총 CGT에서는 1999년에 공산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위원장이 최초로 당선됐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불안정노동 체제는 ‘사회당은 노조에 뿌리를 둔 계급정당’이라는 등식을 깨고 있다. 이러한 정치지형 변화가 ‘앙 마르슈’와 마크롱의 등장 배경이었다. 지난 대선 결선투표에서 35%가량을 얻은 극우 ‘국민전선’ 후보 르펜이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 공업지역)에서 오히려 50% 이상 득표한 점은 최근 두 차례 미국 대선을 떠올리게 한다.

 

2008년 경제위기 때 스페인 노동자민중 투쟁을 거쳐 탄생한 ‘포데모스’도 같은 흐름에 있다. 2016년 한국 촛불투쟁 당시 ‘광장평의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활동가가 총파업과 가두투쟁, 광장에서의 토론을 통해 좌파 포퓰리즘 형상으로서 포데모스의 경험을 실험하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 좌파당의 멜랑숑은 포데모스를 모델로 한 조직 ‘라 프랑스 앵수미즈’(La France insoumise, FI: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건설을 주도해 이를 토대로 대선에 출마했다. 그는 기존 매체뿐 아니라 SNS‧홀로그램‧카툰 등 대중에 친숙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적극 이용해 반향을 얻었다. 그러나 대안적 정책을 내놓지 못한 채 경직된 조직운영으로 외면당했다. 기존 전략을 고수한 사회당, 반자본주의 신당(NPA)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와 함께, 앞서 언급했듯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념적 지향이 불분명했던 ‘앙 마르슈’는 이후 선거에서 처참한 패배를 계속했고 존재감이 흐려지고 있다.

 

불안정노동 체제라는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대선을 앞두고 마크롱을 소환한 김종인의 감각에 주목해본다. 정치적 기반 없이 작은 토론회나 강연회 등을 거쳐 대선주자로 등장했던 안철수도 비슷한 궤도였다.

 

 

 

3.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약진하고 있는 ‘85년생’ 이준석에 대해 민주당 대권주자 ‘50년생’ 정세균이 ‘장유유서’를 거론했다. 이준석은 “시험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자는 것이 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며 “그게 시험과목에 있으면 젊은 세대를 배제하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공정’이라는 화두에 걸맞은 정책을 탑재한 한국적 ‘앙 마르슈’는 불안정노동 체제에 최적화된 우익의 대선전술로 수용된다.

 

이런 점에서, 좌익적 전망 역시 차별받고 배제된 자들의 탄력적인 정치적‧조직적 플랫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그 속에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가늠해본다.

 

 

 

* 정부의 재정 지출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며, 중앙은행이 화폐(통화)량을 조절해야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주장. 케인즈주의를 반박하며 신자유주의가 내세운 주요 이념.

 

 

** 김수행 외,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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