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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6.01 18:53

이슈┃모두에게 공공주택을!

 

 

집 걱정 없는 세상으로,

누구나 공공주택으로

 

 

고근형┃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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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월 3일은 서른 번째 ‘무주택자의 날’이다. 그런데 바로 일주일 전인 5월 27일, 민주당은 부동산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공급‧금융‧세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다음 달에는 공청회를 열어 양도소득세(부동산 매매 시 발생하는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줄여주는 방안을 논의해 결정한다고 한다. ‘무주택자의 날’을 앞두고 정작 무주택자는 안중에도 없이 자산소유자들에 대한 구애에 여념이 없다.

 

 

 

위험천만한 규제 완화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부동산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4년간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이 모조리 실패한 데다 LH 투기 사태까지 덮쳤고(최근에는 공직자들의 세종시 아파트 ‘특별 공급’을 둘러싼 불법‧부정 사태도 터졌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완패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이 틈을 타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이 거세게 나온다. 선거 전부터 고개를 든 ‘종합부동산세 등 재산세 완화론’이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민주당은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을 현행 공시가격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재보궐선거 이후에는 대출 규제 완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담보로 잡힌 주택가격 대비 대출한도)와 DTI(총부채상환비율: 소득 대비 부채 비율)를 90%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했는데, 그만큼 대출 가능 액수를 크게 늘림으로써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이다.

 

딴에는 그간 부동산 정책을 반성하며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모양새지만, 이번에도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먼저 ‘세제 완화론’부터 보자. ‘여태껏 문재인 정부가 고가주택과 다주택자 세금 부담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강화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5월 21일 발표한 보고서 <주요국의 부동산 관련 세부담 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는 모두 OECD 주요국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민간 소유 부동산 자산 대비 보유세)은 0.16%로, OECD 주요국 평균인 0.54%의 1/3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후 보유세가 조금 올랐다고 하지만, 2019년에도 실효세율은 0.17%로 겨우 0.01%p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임대사업자에게 대규모 세제 특혜를 제공했다. 이를테면 등록임대주택을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다주택자가 세금을 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했다. 다주택 소유를 규제하기는커녕, 임대소득 같은 불로소득을 법적으로 보호해준 꼴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도 임대사업자 특혜를 ‘집값 상승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할 지경이다. 따라서 ‘보유세-재산세가 너무 높아 문제’라는 식의 논거는 다주택자의 엄살에 맞장구치는 것일 뿐이다.

 

다음으로 ‘대출 규제 완화론’을 살펴보자. ‘무주택자의 생애 최초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풀어주자’는 주장인데, 이 역시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이렇게 발생하는 ‘수요’가 다시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둘째, 이미 집값이 너무 높기 때문에 가계부채를 더욱 키우게 된다. 무엇보다 이 주장의 기저에는 ‘주택은 반드시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는 상품’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진정 무주택자의 주택 마련을 돕고 싶다면, 원하는 기간만큼 거주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정부가 직접 제공하면 된다. 경제적 부담 없고 쾌적한 공공주택을 무주택자 누구에게나 제공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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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택자의 날' 일주일 전인 5월 27일, 민주당 부동산특위는 부동산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5월 12일 민주당 부동산특위 1차 회의. [사진: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LH 사태,

‘역시 공공은 안 된다’?

 

여기에 한 가지 걸림돌이 생겼다. LH 사태 이후 ‘공공 주도 주택 공급’ 자체를 반대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주택 개발과 공급을 아예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그야말로 아전인수의 전형이 따로 없다. LH 사태는 명색이 ‘공공기관’인 토지주택공사(LH)가 오히려 공공의 역할을 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공공기관으로서 LH는 마땅히 ‘모든 무주택자에게 저렴하고 쾌적한, 계속 거주 가능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그간 LH는 토지소유주와 건설사의 이익을 보장하는 한편, 공공주택의 ‘공공성’을 떨어뜨렸다.

 

가령, 가장 최근 발표된 ‘공공 개발’인 ‘2.4 대책’을 보자. 정부는 ‘개발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토지소유주에게 민간 재개발사업 대비 10~30%의 초과 이익을 보장하고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을 면제했으며, 용적률과 기부채납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개발 참여 건설사에 일정 비율 이상의 수익을 보장함은 물론이고,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는 공공이 대신 짊어진다. 나랏돈으로 토지주‧건물주‧건설사의 뒷배를 봐주는 게 ‘공공’의 역할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LH 사태 역시 LH가 토지소유주의 이익을 보장해준 것에서 발생했다. 다름 아닌 LH 직원이 그 보상 토지의 소유주였다는 게 더해졌을 뿐.

 

이런 상황에서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은 뒷전이었다. 토지주와 건설사 이익을 챙겨주려면 재원을 조달해야 하니, 결국 공공 소유 토지나 주택을 민간에 매각‧임대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돈이 되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올 초 2.4 대책을 발표한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에는 ‘공공’이라는 단어가 124번이나 등장했지만, 정작 ‘공공임대주택’은 겨우 2번 언급되는 데 그쳤다. 그마저 ‘몇 호를 공급할 수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공공 개발’로 공급한다는 주택 85만 호는 저렴한 공공주택과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부동산 시장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여지도 다분하다.

 

따라서 LH 사태의 교훈은 ‘공공사업 폐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주거공공성 실현’이어야 한다. 이윤이 아니라 모두의 주거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기관이 필요한 것이다. 토지주‧건물주‧건설사의 수익 보장을 위한 개발이 아닌,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주택을 충분하게 제공하는 국가책임사업이 필요하다. 나아가 세입자들이 공공주택 공급 등의 정책 결정을 통제함은 물론, 담당 분야 주요 공직자를 소환‧해임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부정부패와 비리를 제거하고 진정 민주적 통제를 확립해나갈 수 있다.

 

 

 

다주택 소유 금지하고

누구나 공공주택으로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무주택가구는 900만에 육박하지만, 공공주택은 200만이 채 안 된다. 그조차 기업형 임대주택이거나 ‘행복주택’ 등 공공성이 낮고 값비싼 주택, 혹은 일정 기간 이후 비싼 값에 분양하거나 쫓겨나는 ‘분양전환 주택’ 등 제대로 된 공공주택이라고 볼 수 없다. 저렴한 ‘장기 공공임대주택’도 있기는 하지만, 질이 좋지 않아 다수 세입자가 고통받고 있다. 건물이 노후한 데다 냉난방은 물론 통풍과 환기가 잘 되지 않아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들끓거나,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대가족이 10평 안팎의 좁은 집에 사는 등의 경우가 비일비재한지라 ‘공공주택’에 대한 대중적 인식 역시 왜곡되고 있다. 잠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더 큰 집, 화장실 많은 집에 살고 싶어요. 각자 방이 생기고 화장실이 있으면 다투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힘들 때 쉴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제 방이 있는데 동생이 안 들어오는 방이요.”

- 경기 부천시 방 2개짜리 영구임대에서 7명(조모, 외삼촌, 2남 3여) 거주, 김○○

 

“작은 방은 오빠가 혼자 쓰고 할머니랑 저는 부엌에서 자요. 이 방은 더워서 아무도 안 써요. 작은 방은 오빠가 있을 때 들어가면 화내요.”

- 서울 동작구 반지하 방 2개짜리 전세임대에서 3명(조모, 남매) 거주, 최○○*

 

 

 

이렇듯 기존에 공급된 ‘공공주택’ 역시 양질의 주택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무엇보다, 공공주택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고시원‧쪽방‧비닐하우스 등 ‘집 아닌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통계에 잡히는 숫자만 30만이 넘는다. 화장실과 주방이 한 공간에 붙어있는 원룸도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변혁당은 모든 무주택자에게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주택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온전한 공공성을 갖춘 공공주택을 약 800만 호 이상 공급하면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 모두를 새로 짓자는 게 아니다. 국내 주택보급률은 104.8%로, 이미 주택 수가 가구 수보다 더 많다. 그런데도 무주택자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건, 소수가 너무나 많은 주택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다주택 소유를 철폐하지 않는다면 전국민 주거 보장은 불가능하다.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고, 무주택자 누구에게나 저렴한 공공주택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원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 우선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부터 환수해야 한다. 변혁당이 지난 5월 발표한 <2021년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시세차익이나 임대수익을 노린 재벌의 ‘투자부동산’만 약 500조 원에 달한다.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임대사업자 특혜를 폐지하는 건 물론이고, 시세차익과 임대수익 등 부동산 불로소득을 모두 환수해야 한다. 이 재원과 자산을 통해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주택 800만 호 공급의 로드맵을 완성해야 한다. 보유세 완화나 대출규제 완화 따위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강제할 힘이다. 공공주택 공급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에, 오히려 공공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세입자들이 결집해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와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을 통한 모두의 주거권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변혁당은 오는 10월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와 모두를 위한 공공주택 800만 호 공급’을 요구하는 세입자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내년 대선에서 ‘누구에게나 공공주택’을 실현할 사회주의 대통령 후보를 내세울 것이다. 부동산 투기 광풍을 막을 힘, 인간다운 주거권을 보장할 힘을 변혁당과 함께 만들어보자.

 

 

 

* 최은영 외, “저소득 가구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유형통합”,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주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유형통합 토론회> 발제문, 2020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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