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구조조정은 없다고?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의

새빨간 거짓말 드러나…

 

EU가 명시한 규정상

합병 승인받으려면

구조조정은 필연

 

 

백종성┃정책위원장

 

 

127_30_수정.jpg

[사진: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공적 자금만 13조 원이 들어간 기간산업이자 국유기업을 재벌 총수일가에게 단 6,500억 원에 팔아넘기는 폭거. 지난 2019년 1월 말,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주주)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지 2년이 지났다.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은 매출액만 10조 원에 육박하던 대우조선해양을 도합 6,500억 원이라는 ‘헐값’에 집어삼키고, 인수합병 과정을 이용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며 정몽준-정기선의 총수일가 3대 세습까지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1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수합병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글로벌 시장지배력을 가진 대기업이라, 두 회사가 통합하려면 주요 경쟁국(유럽연합‧일본‧중국 등)에서 실시하는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길어지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올 상반기에 유럽연합(EU)의 심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자들의 생존이 달린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유럽연합 규정을 확인한 결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이 EU의 승인을 받으려면 구조조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U 기업결합심사 경과

 

먼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에 관한 EU 기업결합심사 경과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9년 3월, 산업은행과 인수합병 본계약을 체결한 현대중공업은 같은 해 11월 EU에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그로부터 약 1달 뒤인 12월 17일, EU는 ‘2단계 심사’를 개시한다(뒤에서 언급하겠지만, ‘2단계’라는 점에 주목하자).

 

그렇게 심사가 진행 중이던 2020년 6월, EU는 현대중공업 측에 ‘이의제기서’(SO: statement of objection)2를 발송했다. 곧이어 7월 14일에는 ‘심사 유예’(stop the clock)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현대중공업이 EU가 요구한 LNG선 독점 가능성 해소방안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3 이렇게 EU의 기업결합심사가 연기되면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절차도 늦춰지게 됐다. 그러다 작년 10월부터 EU가 이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할 가능성이 흘러나왔으며, 올 초에는 상반기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2단계 심사 개시가 뜻하는 것

 

EU 기업결합심사 절차는, 기업결합으로 경쟁이 약화될 수 있다는 ‘심각한 의심’(serious doubt)이 들 때 2단계 심사를 개시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즉, EU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에 관해 2단계 심사를 개시했다는 것 자체가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뜻한다.

 

일단 2단계 심사에 돌입했다면, EU가 해당 기업결합을 조건 없이 승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 30년간 EU가 접수한 기업결합심사 7,311건(자진 철회 196건 포함) 가운데 ‘1단계’(일반심사)에서 승인된 것은 6,785건(조건부 313건 포함)이었다. 1단계에서 심사가 끝날 경우, 조건 없는 기업결합이 실현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2단계 심사로 넘어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2단계로 넘어간 191건을 따져보면, △무조건 승인 29건 △불승인 33건 △조건부 승인 129건으로, 무조건 승인 비율은 15.2%에 불과해 불승인 가능성(17.3%)보다도 낮다. 반면, 조건부 승인 비율은 67.5%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조건부 승인의 ‘조건’은

분할매각

 

2단계 심사 결과는 △무조건 승인 △조건부 승인 △금지 △철회 중 하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조건부 승인’은 다음 순서로 이뤄진다: 이의제기서(SO) 채택 → 반박의견서 제출 → 청문회 → 자문위원회 → 집행위원단 결정.

 

문제는 여기부터다. EU에 따르면, 조건부 승인은 ‘부분 매각’이나 ‘기술 이전’ 등을 동반한다. EU집행위원회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합병은 언제 거부되거나 승인되나?

○ 합병이 EU에서의 경쟁을 크게 제한할 때 거부된다.… 합병 당사자가 주요 경쟁자이거나, 합병으로 지배적인 시장참여자가 만들어지거나 그 참여자를 강화해 시장경쟁을 크게 약화시킬 경우 합병은 금지될 수 있다.

 

 

○ 조건부 승인

○ 합병 당사자들이 경쟁을 왜곡하지 않기 위한 조치를 약속할 때 EU집행위원회는 합병을 조건부 승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결합 사업의 일부를 매각하거나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기술을 이전할 수 있다. 집행위원회가 해당 약정으로 시장경쟁을 유지하거나 회복할 수 있다고 납득한다면, 조건부 합병을 승인하고 합병회사가 약속을 이행하는지 감시한다.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위원회가 개입할 수 있다.

 

 

그런데 EU 측은 조건부 승인을 위한 ‘조건’으로 기술 이전보다는 부분매각, 곧 사업부문 분사-매각을 선호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단적으로 EU 경쟁총국은 ‘시정방안 고시’(Remedy Notice)에 결합 당사자가 제출해야 하는 시정방안을 규정해 놓았는데,4 이에 따르면 EU는 효과가 모호한 가격‧수주량 규제보다 ‘구조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선박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 ‘일정량 이상을 수주하지 않겠다’,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약속은 실현되기도, 그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도 힘드니 분할매각이라는 확실한 방안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EU 기업결합 시정방안 고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분할매각이 지적재산권 면허부여보다 바람직한 시정 조치다. 결합기업이 지적재산권 면허를 부여한다고 해도, 면허를 받은 기업은 시장에서 즉시 경쟁기업으로 역할하지 못할 불확실성이 있고, 이로 인해 결합기업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한바 결합기업이 면허를 받은 기업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한 면허의 범위와 약관에 대한 분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상 구조조정은 필연

 

이렇듯 EU의 기업결합 관련 시정방안 고시의 중심은 중복사업 매각요건이다. 즉, 기업결합을 승인받기 위해 ‘얼마나, 어느 정도로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고시의 핵심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생색내기 수준의 매각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게 드러난다. 우선 △매각 대상 사업부문은 결합회사(합병 당사자)의 지원 없이 운영이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운영필수인력과 자산을 함께 매각해야 한다. 나아가 해당 사업부문 인수 후보자는 △결합회사와 무관해야 하고 △매각 대상 사업을 독자로 운영할 재무능력과 전문성 등을 보유해야 하며 △관련 경쟁당국 등 규제당국으로부터 승인받을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의 ‘중소 조선사에 LNG선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발표는 EU가 요구하는 기업결합 승인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위에서 확인했듯 EU는 지적재산권 이전보다 사업부문 매각을 선호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이 말하는 ‘기술 이전’이 일종의 ‘매각’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중소 조선사(STX, 한진중공업 등) 재무상태는 EU 고시요건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2단계 심사’라는 조건과 EU ‘시정방안 고시’의 주 내용을 종합하면, 중복 사업부문을 분할매각하지 않는 한 기업결합을 승인받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2020년 1월에서 7월까지 EU집행위원회는 총 10건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는데, 10건 중 9건에 ‘중첩 사업부문 매각’이라는 조건을 부과했다. 현대중공업이 끝까지 기업결합을 승인받고자 한다면, 사업부문 분사-매각은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조조정 내용과 강도는

EU가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결정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건부 승인의 ‘조건’을 EU가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결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EU집행위원회 기업결합심사규정’(ECMR)에 따르면, 조건부 승인 결정은 결합 당사자가 제출한 시정방안을 토대로 이뤄진다. 즉, 결합 당사자인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독점 해소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EU는 그저 기업결합을 금지할 수 있을 뿐이다. 결합 당사자가 시정방안을 제출해도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불충분’하다면 마찬가지로 금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결국 조건부 승인의 ‘조건’은 일차적으로 EU가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결정한다. 실상이 이런데도 마치 EU가 조건을 부과한다는 것처럼 호도하거나 ‘구조조정 같은 일은 없다’고 대외에 표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양사 원하청 노동자의 투쟁력과 여론 추이를 살피면서 구조조정 강도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확인했듯 EU 기업결합심사규정이 명시한 결합 승인 조건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분할매각이며, 그중에서도 해외매각이다.

 

이역만리 EU가 아니라 바로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조건부 승인을 위한 ‘조건’, 즉 구조조정의 폭과 강도를 결정한다. 물론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장 주체의 투쟁력이 기업결합심사 승인 여부를 판가름하게 된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노동자 모두 투쟁 준비에 나서야 한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 여태껏 강조했듯 현대중공업 자본이 합병을 끝까지 밀어붙이고자 한다면 양사 모두에서 구조조정은 필연이다.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지금부터 다시 투쟁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또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만의 문제로 국한할 일이 아니라 전체 기간산업 노동자와의 연대와 사회적 여론화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기간산업 특혜매각의 수혜자는 현대중공업 정씨 일가를 포함한 총수일가일 뿐이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본질이 삼성 3대 세습 문제였듯, 문재인 정부의 산업구조조정 역시 총수일가의 산업지배력 강화로 귀결하는 국정농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조선업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쌍용차 역시 자동차 제조업체도 아닌 연매출 200억 원에 지나지 않는 유통업체 ‘HAAH오토모티브’라는 곳에 팔아넘길 형국이다.

 

따라서 현장의 투쟁력을 중심으로 사회적 여론화에 나서고, 문재인 정부의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맞서 기간산업 사회화-사회적 통제를 위한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계기는 존재한다. 민주노총은 올 11월 정치총파업을 내걸고 있으며, 그중 핵심인 ‘사회대전환’의 첫 번째 요구가 ‘고용위기 기간산업 국유화’다. 기간산업 구조조정이 전면화하는 지금, 이런 요구를 실물적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 총수일가를 위한 기간산업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기간산업을 사회화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자.

 

 

 

1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현대중공업 지배구조 개편, 그 과정에서 총수일가가 누리는 이득에 대해서는 <변혁정치> 81호(2019년 3월 1일 자) 기사 “대우조선 매각, 기간산업을 재벌 특혜로 넘기나”, 88호(2019년 6월 15일 자) 기사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 집중 해부” 기사 참조.

 

 

통상 국내언론에서 ‘중간심사보고서’라고 표현하지만, 단어 자체로 보든 그 성격으로 보든 ‘이의제기서’라고 번역해야 옳다. EU집행위원회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이의제기서는 EU 독점금지법 위반혐의자에 대한 공식 조사절차다.… 독점금지 조사 종결의 법적 시한(legal deadlines)은 없다.

 

 

3 경제전문매체 <The Guru> 2021년 3월 11일 자 기사 “EU ‘합병심사 9개월째 중단… 현대중공업 자료 미제출이 원인’” 참고.

 

 

4 이하 ‘시정방안 고시’의 주요 내용은 김문식, 「EU의 기업결합 심사제도와 동향: 한국과 EU 비교 및 국내 기업의 유의 사항」, 『경쟁저널』 2020년 8월호를 참조함.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