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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난

한‧미 정상회담

 

 

장혜경┃집행위원장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이하 ‘회담’)이 열렸다. 주 관심사는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과 함께 ‘미국의 중국 압박 전략에 대한 한국의 동참 여부’였다. 바이든 정부 들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강해지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북‧미/남북관계 교착상태가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

전향적 정책은 없었다

 

회담 이후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성명”(이하 ‘성명’)은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필수적임’을 재확인했다. 기존 합의를 뒤엎지 않긴 했지만, 이밖에는 전향적인 내용이 전혀 없다.

 

우선 “대북 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혀, 미국이 한국의 대북정책을 계속 제어할 권리를 부여했다.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내용을 담아, 일본의 개입력도 인정했다. “[한‧미]동맹의 억제 태세 강화를 약속하고, 합동 군사 준비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공유하며,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로써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실질적 조치인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시기’가 아닌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재확인함으로써, ‘조건 확보’를 명분으로 한국의 군비 확대를 지속할 근거를 부여했다.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해, 대북제재 유지도 다시금 천명했다.

 

이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외교적 접근’과 ‘단호한 억제’를 내세운 바이든 정부 대북정책에서 한 발도 진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환영”한다고 밝힘으로써, 북‧미관계는 물론이고 남북관계 역시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힘들게 됐다. 결국, 회담은 북‧미/남북관계를 개선할 가시적 조치를 전혀 내놓지 못했다.

 

 

 

미‧중 패권경쟁에

동원될 가능성 커진 한국

 

회담은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한국이 휩쓸려갈 여지도 키웠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계승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협의체)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공동성명은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또,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문구를 담아 ‘쿼드’에 대한 한국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미‧중이 충돌하는 남중국해에 대해서도 미국 입장인 “항행의 자유”를 명시했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는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최초로 대만 문제를 성명에 포함시켰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대만 문제는 내정”이라며 반발했다. 언론은 그간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와 중량을 제한하던 ‘한‧미 미사일 지침’을 폐기한 게 성과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한국이 대(對)중국 군사동맹에 참여한다면 이는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을 개발하는 셈이어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칼날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성명은 미국 중심의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한국이 동참하는 내용을 담았다. 바이든 정부 경제정책은 GVC(글로벌 가치사슬)로 급속히 성장해온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GVC를 ‘동맹국 블록’인 RVC(지역 가치사슬)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대용량 배터리‧의약품(코로나 치료제‧백신)‧전략물자(희토류) 등 핵심품목에서 미국 중심의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고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한 기술동맹**을 구축하며,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켜 미국의 산업‧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려 한다. 성명은 이 구상에 맞춰 “반도체, 친환경 EV[전기차]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의약품 등과 같은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하여, 우리의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미국은 삼성‧현대‧SK‧LG 등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약 44조 원 규모의 미국 내 신규 투자도 따냈다. 이 밖에도 양국은 해외 원전 협력을 발전시켜나가기로 해, 반(反)생태산업인 원전 수출에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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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와대]

 

 

 

‘국격이 뿜뿜’??

 

한 여당 인사는 회담 결과 “국격이 ‘뿜뿜’ 느껴”진다고 했다. 웬 말인가. 판문점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계승한다는 ‘문구’ 외에 한국이 얻은 건 없다. 오히려 지난 3월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13.9%나 인상해 1조 1,833억 원을 미국에 퍼주기로 했다. 사드 역시 임시 배치를 넘어 정식 배치를 착착 진행 중이다(4월부터 회담 직전인 5월 20일에도 대량의 공사 장비와 물자를 추가 반입하며 이에 반발하는 성주 주민들을 폭력으로 짓눌렀다). 회담 전부터 한국 기업은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한국 정부는 회담에서 미‧중 갈등의 첨예한 지점에 대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제국주의 미국과 이를 추종하는 한국 정부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 5월 1일,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끝냈다’며 발표한 기조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도, 트럼프의 ‘정상 간 일괄타결’도 아닌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과 ‘단호한 억제’였다. 이는 ‘압박과 봉쇄 속 외교적 타결’이라는 모순적 내용을 담고 있어,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태도와 접점을 만들기 힘든 입장이다.

 

 

** 가령, 중국(화웨이)을 배제한 이른바 ‘민주주의 10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한국, 인도, 호주)의 5G 기술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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