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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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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6.01 17:34

[번역]

 

 

이스라엘 식민 공세와

팔레스타인의 저항 사이에서(1)

 

 

* 번역자: 지난 5월 21일, 이스라엘이 11일간 팔레스타인에 폭격을 퍼부은 뒤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당일은 물론이고 이후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에 맞선 저항 역시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이번 ‘휴전’으로 잠잠해질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없다.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부터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과 학살, 추방과 ‘인종 청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뒤엔 중동에 짙게 드리운 제국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랬듯, 잠깐의 소강상태(그 ‘소강상태’조차 심각한 폭력을 동반하고 있지만) 이후 또다시 억압과 저항이 격렬히 맞부딪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이에 <변혁정치>는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과 팔레스타인의 저항 및 그 배경을 다룬 글을 번역해 싣고자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좌파 매체 <Left Voice> 5월 22일 자로 게시된 Claudia Cinatti의 글 “Between the Israeli Colonial Offensive and the Palestinian Resistance”의 전반부를 축약해 번역한 것이다. 본문 가운데 소괄호()는 원문에 있던 것이고, 대괄호[]와 주석은 번역자가 덧붙인 것이다.

 

 

- 번역: 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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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eft Voice]

 

 

이스라엘 국가가 11일간 줄기차게 폭격한 가자(Gaza) 지구는 300km2 남짓한 면적[한국으로 치면 경기 고양시 정도에 해당]에 팔레스타인 주민 2백만 명이 몰려 살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이번 공습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지난 5월 15일 12층짜리 건물이 연기와 먼지구름만 남긴 채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었다. 이스라엘군이 폭격한 이 건물에는 카타르 방송사 <알자지라>[아랍권 유력매체]뿐만 아니라 다름 아닌 <AP통신>[세계 최대 언론통신사 중 하나로, 본사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해외 언론사가 입주해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민간주택이나 학교, 심지어 병원까지 폭격하면서 매번 ‘해당 건물은 하마스(Hamas)[팔레스타인 무장 정파로, 선거에서 승리하며 현재 가자 지구에서 실질적 지배력 행사] 등 “테러리스트” 조직이 숨어든 위장막’이라며 공습을 정당화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지 기자와 특파원들의 증언은 전혀 다르다. 공습 경고를 받긴 했지만 겨우 옷가지만 챙길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며, 귀중한 자료와 문서를 모두 버려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AP통신> 회장이 명확하게 지적했듯, 이제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상에 알리기가 더 어렵게 됐다.

 

한편, 5월 15일은 대규모 가두시위와 저항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과 여러 아랍 국가에서는 이날을 ‘나크바’(Nakba)[아랍어로 ‘재앙’을 가리킴]라고 부르며 기리는데, 1948년 이맘때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된 이후 [아랍인, 특히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식민화와 군사 점령 등 재앙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런던과 파리, 뉴욕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스라엘의 공습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연대를 보냈다. 심지어 프랑스 같은 곳에서도 정부의 집회 금지와 탄압을 뚫고 시위가 벌어졌는데,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시오니즘 국가[이스라엘]1의 전쟁범죄와 억압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반(反)유대주의’ 혹은 ‘유대인 혐오’라는 혐의를 씌워 탄압해왔다.

 

지난 금요일[5월 21일], 230명 이상의 죽음을 뒤로한 채 휴전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휴전 당일에도 이스라엘군은 알아크사 모스크[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사원이자 성지]에서 예배를 보던 수천 명의 군중을 향해 또다시 섬광탄과 고무 코팅 총알[흔히 ‘고무탄’이라고도 하지만, 탄환 겉면을 고무로 덮었을 뿐 충분히 살상력을 갖고 있음]을 발포했다.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 정부는 [휴전을] 크게 환영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휴전협상에 나서라고 개인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그와 동시에 백악관은 이집트 같은 동맹국을 통해 하마스 지도부와 접촉하고 있었다(미국 정부는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직접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가자 지구에서 긴장이 고조하는 것을 보면, 지난 2020년 트럼프 정부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며 추진했던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협정에 가장 먼저 서명한 건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었다. 중동의 이러한 지정학적 재편성은 이란을 적대하는 아랍-이스라엘 동맹을 형성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민중을 완전히 고립시켰다[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학살‧추방‧탄압이 이어지면서 아랍 국가들은 명목상으로라도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스라엘에 맞서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에 힘을 싣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미국-이스라엘과 사실상 같은 편에서 이란을 견제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 2020년에는 이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기존의 형식적 적대 관계조차 폐기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 특히 가자 지구에 있던 미국 언론[AP통신]에 대한 군사공격은 바이든을 곤혹스럽게 했다. 국내적으로 보면, 민주당 일각에서 이스라엘 극우세력과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바이든의 무조건적 편들기에 반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이 이스라엘 국가와 미국의 전략적 동맹에 근본적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다. 한편, 대외적 측면에서 바이든 정부는 중동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려 한다. 바이든이 이란과의 핵 협정 복귀를 시도하면서[오바마 정부 때 체결했으나, 트럼프 정부가 이를 일방 파기하며 이스라엘과 함께 노골적인 이란 적대에 나섰음]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려는 것도 이런 목적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공습으로 미국은 원치 않게 중동에 주의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도발과 식민지 점령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군사 작전을 펼칠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네타냐후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경내로 발사한 로켓포를 거론하며 하마스의 “테러 공격”에 맞선 ‘자위권’을 들먹였다. 이 시오니즘 국가의 무조건적 동맹인 바이든과 여러 제국주의 국가 역시 이런 주장을 즐겨 되풀이한다.

 

유대인 학자 노먼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은 이런 자기봉사적(self-serving) 선전을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여태껏 가자 지구를 잔혹하고 불법적으로 봉쇄하면서 살인적인 ‘군사작전’을 주기적으로 펼쳤던 게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때문이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계산과 결정에 따른 것이었으며, 하마스의 군사행동은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심지어 제국주의적 주류 매체조차 이번 군사적 긴장을 야기한 게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東)예루살렘의 아랍인 거주지역에서 시오니즘 국가 기관과 극우 성향 유대인 정착민 집단2이 끊임없이 도발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가령 이들은 라마단[이슬람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1달의 기간] 때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성지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으며,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최루가스와 고무 코팅 총알을 쏘아댔고, 지속적인 탄압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 명을 폭행하거나 체포했다. 이들은 이른바 ‘예루살렘의 날’이라고 불리는 5월 10일에도 도발을 감행했는데, 1967년 6일 전쟁[1967년 6월 5~10일까지 단 6일간 이스라엘이 전격적인 선제공격으로 주변 아랍 국가들을 압도하며 인접 영토를 대거 차지한 전쟁. 1948년과 1956년에 이어 ‘제3차 중동전쟁’이라고도 부름]으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극우 유대교 정통파 분자들이 ‘기념’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 상징성으로 볼 때 무엇보다 심각한 도발은 유대인 정착민 집단의 소송 제기를 받아들인 이스라엘 법원이 동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Sheikh Jarrah)라는 동네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주민 6가구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이스라엘 법률은 유대인에겐 1948년 분할 이전3 예루살렘에서 갖고 있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지만,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추방당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추방에서 드러난바, 오늘날 동예루살렘에서의 팔레스타인 주민 축출 정책은 애초 시오니즘 국가가 기반한 “식민지 정착” 혹은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일란 파페(Ilan Pappé)가 규정했던 “인종 청소”와 직결한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응은 그 뿌리가 대단히 깊은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 시오니즘(Zionism)은 19세기 후반 유대인 부르주아지의 소수 분파에서 등장한 정치적 조류로, 당시 유럽을 휩쓸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을 내쫓고 유대인들이 새로 정착함으로써 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근본이념이 바로 이것이다. <Left Voice> 2020년 5월 15일 자 기사 “A Brief History of the Construction of the State of Israel”(이스라엘 국가 건설 약사(略史)) 참고.

 

 

2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지속적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며 아랍계 주민들을 추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점령’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랍인에 대한 ‘인종 청소’라 일컫기도 한다.

 

 

3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과 함께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1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본래 아랍인이 다수를 점했던 팔레스타인 지역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에 넘어갔고,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 신세가 됐다. 예루살렘도 동‧서로 나뉘어 요르단(아랍인)이 동쪽을, 이스라엘은 서쪽을 가져갔다. 그러다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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