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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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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법상 정당이 아니’라고

벌금 맞아야 하는 나라

 

 

이종회┃대표

 

 

 

18~19세기, 영국 산업혁명과 프랑스 정치혁명이라는 ‘이중 혁명’을 거치며 부르주아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적으로 ‘경제발전에 따라 지배할 능력과 사명을 가진 소수집단’으로서의 지배계급이었다. ‘이런 이유로 지배받는 다수는 소수의 편에 서서 변혁에 가담하거나, 조용히 그 변혁을 따랐다.’ 그리고, 비록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1848년 프랑스에서 다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 벌어졌다. 한편, 영국 차티스트운동처럼 보통선거에 기반한 노동자 참정권을 요구하는 투쟁이 지속했고 결국 관철됐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좌파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1848년 혁명이 실패했다고 해도, 유럽은 ‘혁명적으로’ 전환하지 않았을 뿐 전환은 진행됐다고 했다.

 

영국 차티스트운동에서 노동자들이 제기한 <인민헌장>은 △성인 남성의 선거권 △비밀투표 △평등한 선거구 △의원 세비 지급 △후보자 재산 자격 폐지 등 일련의 의회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엥겔스는 <칼 맑스의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독일 노동자들은 보통선거권을 이용하는 방법을 만국의 동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새로운, 가장 날카로운 무기 하나를 제공했다.… 『공산당 선언』은 이미 보통선거권 쟁취, 민주주의 쟁취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언한바 있[다.]… 비스마르크[인용자: 사회주의 운동에 적대적이었던 독일 수상]가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인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유일한 수단으로 부득이 보통선거권을 도입했을 때 우리의 노동자들은 즉시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아우구스트 베벨[인용자: 노동자 출신으로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적 인물]을 최초의 제헌의회로 보냈다.… 선거권 때문에 우리는 선거 선동을 통해 아직은 우리와 유리돼 있던 인민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절호의 수단을 갖게 됐다.”

 

엥겔스는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 기관지 <전진>이 해당 서문에 관해 ‘마치 완고한 평화적 법률 숭배자라도 되는 듯이 취급’하며 편집한 것에 분개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이 글을 ‘엥겔스가 과거 혁명적 활동과의 관계를 청산한 증거’로 간주했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후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하는 등 노동계급을 배반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이 노동계급 투쟁의 성과이자 계급 역관계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미군정 체제를 거치면서 1948년 마련된 제헌헌법에서는 (지금도 정당 관련 법률이나 등록제도가 없는 미국을 따라) 정당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1958년 이승만 정권이 조작한 ‘진보당 사건’에서 드러나듯, 정당‧사회단체의 등록 및 감사 사무를 담당하는 공보실(公報室)이 진보당 정당 등록을 취소하는 배경이기도 했다. 4.19혁명을 거친 제2공화국에서 처음 정당 조항을 신설했고, 5.16쿠데타로 들어선 제3공화국에서부터 사회‧노동 억압적 분단 체제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유지‧보장하는 권력의 도구화가 시작됐다. 쿠데타 이후 구성된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노동조합법 12조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신설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러다 1996~97년 총파업 이후 재개정된 노동법에 따라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삭제됐고,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렇지만 교사‧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 맞선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19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태우-김영삼 정부 들어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정당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리고 2004년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가 구성되면서 현행 정당법의 골격이 완성됐다. 그러나 정당 등록을 정당의 ‘성립요건’으로 하여 등록요건이나 등록취소 사유를 법적으로 규정하면서, 정치활동과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이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2% 이상 득표하지 못할 경우 정당등록을 취소’하도록 규정한 정당법 44조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이 조항 때문에 정당등록이 취소된 진보신당‧녹색당‧청년당의 헌법소원으로 폐지됐다. 총선 지지율이나 의석 확보만을 기준으로 정당등록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정당으로 등록하려면 각 1천인 이상의 당원이 있는 5개 이상 시‧도당을 보유하라’고 요구하는 조항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이 등록요건도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 논의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이 나라에서 정치사상의 자유는 정부의 행정처분(1958년 진보당 해산)이나 ‘위헌 정당 해산 제도’(통합진보당)로 간단히 꺾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분단 체제는 여전히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가로막고 있으며, 정당법은 그 실질적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변혁당은 ‘정당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지난 2020년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정당법상 등록된 정당이 아니니 정당으로 표현된 일체 표현물을 삭제하고 앞으로도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했는데(<변혁정치> 104호(2020년 4월 15일 자) 기사 “‘사회변혁노동자당 깃발을 거두라’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한다” 참고), 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자 국가가 벌금을 구형한 것이다. 우리는 굴종하지 않고 싸울 것이다. 그렇게 이 완강한 걸림돌을 넘어서면서, 사회주의 대중화의 깃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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