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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4.22 20:52

탈시설과 자립생활,

그리고 장애인 사회주의 운동

 

 

박회송┃울산

 

 

 

올해도 어김없이 “4.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장애인 탈시설’ 요구가 뜨겁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설에 갇힌 장애인들이 대거 고립되며 집단감염에도 노출되면서, 탈시설은 장애인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자립생활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탈시설 요구가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시설에 갇혀 기본적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것은 오랜 과제였다. 하지만 장애인을 시설에 묶어두려는 힘은 강력했다. 가령 대표적인 장애인 시설 ‘꽃동네’처럼, 시설은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복지기관’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오랫동안 누려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시설에 수용된 수많은 장애인이 착취당하고, 장애 여성들은 성적 고통 속에 죽음을 맞기도 했으며, 일상적인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가운데 살아서도 죽어서도 시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도 시설에 대한 국가 지원은 더 늘어났다. 지난 2020년 기준 전체 복지예산 82조 원 가운데 장애인 시설 지원 예산은 5,253억 원에 달했다. 엄청난 공적 자금이 시설로 들어가는 것인데, 그 돈을 장애인에게 직접 지급하면 탈시설-자립생활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국가는 장애인 시설을 포기하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직접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몇천억 원의 돈만 시설에 넘겨주면, 어떻게든 그들이 (온갖 폭력과 착취를 동원해서라도) 장애인들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인간다운 삶보다 ‘비용절감’을 우선하는 게 ‘합리적 선택’으로 간주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장애인 자립생활이 발전했다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시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장애인 노동자 착취하는 자본주의

 

진정한 장애인 자립생활을 이루려면, 장애인 역시 사회구성원으로서 노동권을 보장받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아예 일터에서 배제되거나, 일자리를 구해도 훨씬 가혹한 초과 착취에 직면한다.

 

지난 2019년,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끝내 자결한 장애인 노동자 고(故) 설요한의 비극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변혁정치> 104호(2020년 4월 15일 자) 기사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장애인 노동자 투쟁에 나서자” 참고). 고 설요한은 그 자신이 뇌병변 장애인이자 다른 중증장애인들의 취업상담 등을 담당하는 “동료지원가”로 일했다. 정부가 추진한 ‘공공 일자리’였지만,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 데다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수당을 다시 빼앗는 구조였다. 결국, 이런 업무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그는 정신적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했다.

 

이뿐만 아니다. 몇 년 전 ‘염전 노예’라는 충격적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났듯, 많은 지적장애인이 지금도 시골이나 어촌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에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최저임금법 규정은 버젓이 살아 있다. 일하던 직장이 문을 닫아도 장애인 노동자는 휴업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장애인 노동권 쟁취 투쟁은 장애인이 자립생활과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자본주의가 강제한 노동 속도를 거부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서로 다른 장애인의 신체‧정신적 조건에 맞는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함께 싸울 때, 우리는 사회변혁적 장애운동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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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마이너(허현덕)]

 

 

 

장애해방,

자본주의 넘어서야

 

장애인 자립생활은 ‘장애인이 각자 알아서 먹고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시설에서 해방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물질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 물질적 조건을 갖추는 데 결정적 장벽이 된다. 가령,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려면 안정적 주거는 필수다. 하지만 가뜩이나 집값이 고공행진하는 지금,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주택 공급을 늘리고 재개발을 풀어주겠다고 나서는 가운데 가난한 장애인 민중이 집을 구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렇게 주택이 계속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남는 한, 탈시설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더욱 급진적인 요구와 운동이 필요하다. 먼저 장애인 시설을 지원하는 데 들어가던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으로 이 시설들을 폐쇄하는 한편, 그곳에 갇혀 있던 이들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 민중에게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대안적 주택과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서 주택은 사고팔 수 있는 개인 재산이 아니라, 국가 소유를 바탕으로 원하는 만큼 장기 거주를 보장함으로써 가난한 장애인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일자리 역시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시킨 현행 규정을 폐지하고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양질의 국가책임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각 장애인의 필요에 맞게 활동지원서비스를 공적으로 담당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활동지원사 노동자 역시 생활임금을 보장받아야 하며,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지원사들이 이 제도를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이 모든 게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비효율적’인 것이 장애인 민중에겐 생존의 문제다. 그렇기에 장애인 자립생활을 비롯해 장애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에 맞서는 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기성 정치세력 그 누구도 장애인 민중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없는 지금, 사회주의 세력이 장애인 민중의 투쟁에 적극 참여하면서 장애해방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주의야말로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온전히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갈 물질적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려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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