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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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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이병락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대의원

 

 

“불법파견 판정도 무시하더니

밥값까지 차별하더라”

 

고공에 오른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 지난 3월 22일, 현대중공업의 불법파견과 하청노동자 복지후퇴 문제를 제기하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전영수 사무장과 이병락 대의원이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맞은편에 있는 “호텔현대 바이 라한” 건물 11층 옥상에 올랐다. <변혁정치>가 이곳을 찾아간 건 고공농성 19일 차, 예상치 못한 굵은 비로 고공의 천막을 모두가 걱정하던 날이었다.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점심선전전을 마치고 텐트에 모였다. 비 오는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서진이앤지” 소속 이병락 대의원의 목소리를 전화로나마 들어볼 수 있었다.

 

 

 

 

Q: 작년 11월 말 저희 <변혁정치>에서 이병락 동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벌써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지난 12월에는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지금 두 동지가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은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이번 투쟁을 결의하게 된 계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작년에 인터뷰한 이후 노동부가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내렸죠. 이례적으로 4개월 만에 빠르게 시정명령을 내릴 정도로 노동부에서도 명백한 불법파견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요구할 때마다 ‘노동부 판정을 기다려 보자’던 현대건설기계(현대중공업에서 분할된 계열사로, 건설장비 사업 담당. “서진이앤지”는 현대건설기계 하청업체다) 원청은 불법파견 판정 이후에도 아무런 답이 없었습니다. 시정명령에 대한 계획이라도 있는지 물어보려고 본관 점거 농성을 진행했지만, ‘우리는 권한이 없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윗선’을 찾아갔죠. 현대중공업 권오갑 회장이 있는 서울 계동 현대빌딩 본관, 현대건설기계 공기영 대표가 있는 분당 현대건설기계 본사, 3세 총수 정기선이 실질적 대표인 부산 해운대 현대글로벌서비스(현대중공업 계열사로, A/S 등 선박 관련 서비스 사업 담당), 현대중공업 한영석 사장이 있는 이곳 울산조선소 정문까지, 이렇게 4팀으로 나눠서 ‘진짜 사장’을 만나려고 2주 이상 한겨울에 노숙투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빌딩 본관은 들어갈 수조차 없게 사설경비대를 세워놓았고, 현대건설기계 본사에서는 총무팀장에게 공문만 전달할 수 있었죠. 현대중공업 한영석 사장 또한 우리가 공문을 전달하려고 하니 ‘정상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라’면서 아예 받지를 않더라고요. 소위 ‘정상적’ 통로로는 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노숙농성을 진행한 건데…. 어디에서도 답을 듣지 못했고, 여전히 진짜 사장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 19일에는 현대중공업 기숙사 옥상에 서진이앤지 4명의 동지가 최소한의 물품만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날이 정주영 창업주 제삿날이더라고요. 20주기 추모 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측이 빨리 고공농성을 정리해버리고 싶었는지, 폭력 경비대와 경찰, 소방관까지 달려들어서 옥상 철문을 뜯어버렸어요. 그렇게 최소한의 농성물품조차 다 뺏겨버린 채로 12시간 정도 버텼는데, 바람도 너무 세차게 불고 도저히 밤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죠.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경비대의 모습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뭔가 해낸 것처럼 웃으면서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게 너무 분노스러웠죠. 우리 요구가 이렇게 묵살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전영수 동지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지체하지 말고 고공농성을 진행하자고 결의했고, 이렇게 현대중공업 정문 앞 빌딩 옥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Q. 이번 고공농성은 서진이엔지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겪는 차별 문제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들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차별을 겪습니다. 첫째는 노동강도와 노동환경입니다. 현장 숙지조차 제대로 시키지 않은 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현장에 그냥 투입합니다. 업체 사장들은 ‘노동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해서 산재사고가 벌어진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본질을 왜곡하는 얘기거든요. 심지어 현대중공업 한영석 사장도 ‘정형화되지 않은 작업이 많다’고 인정했어요. 그 말처럼 현장에는 변칙 작업이 많고, 그걸 수행하려면 기술숙련도와 노하우를 축적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현장을 파악하고 익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요.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거죠.

 

그렇게 일하는데도 하청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 정도입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도급계약 과정에서 일단 일부터 시켜놓고 돈을 주기 때문에 기성금이 매번 부족할 수밖에 없고, 임금체불이 상시적으로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4대 보험조차 들지 않는 하청업체가 많습니다. 최저임금으로 힘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은행 대출이라도 받으려고 하면 4대 보험 미가입자라 1‧2 금융권에서는 돈을 빌릴 수도 없습니다.

 

더 악랄한 차별을 말씀드리면, 이번에 고공농성을 진행하게 된 하나의 계기이기도 한데요. 아침‧저녁 식사를 정규직은 1,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데, 2월 1일부터 하청노동자들에게는 5,500원씩 받고 있어요. 심지어 하청노동자는 작업복도 개인 돈으로 사야 합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니까 사측은 ‘직원들이 입던 작업복을 재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내서 공분을 산 적이 있고요.

 

그 외에도 말하자면 끝이 없죠. 설‧추석 귀향비도 3년 차가 되어야만 5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청노동자도 정규직과 똑같은 배를 만드는데, 노동강도도 더 세고 더 많은 일을 해도 성과금 자체가 없습니다. 대신 ‘성과지원금’이라는 항목으로 지급하긴 하는데, 정규직이 700~1,000만 원 받을 때 하청노동자들에겐 3년 이상 근무한 사람만, 그것도 정규직이 받는 금액의 1/3 정도(200~300만 원)를 줘요. 현대중공업 정규직이 받는 자녀 대학장학금도 하청노동자들에게는 근속년수 5년이 넘어야 50%를 지급합니다. 그런데 말이 좋아 근속년수 5년이지, 하청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계약으로 이 업체 저 업체를 이동하는데, 그러면 근속년수를 인정받지 못하거든요. 이처럼 하청노동자들은 밥값부터 시작해서 온갖 차별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고공에 올라오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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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코로나’ 핑계로 위장폐업-집단해고하더니

원청은 오히려 몸집 더 큰 동종기업 인수해

 

 

 

Q: 작년 8월, 사측은 ‘코로나로 인한 물량 감소’를 이유로 들어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을 집단해고했는데요. 벌써 해고 이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서진이앤지의 경우, 코로나19로 위기가 왔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지방노동위원회에 가서 알게 된 건데요. 사측이 재무제표를 제출했는데, 지노위 위원들이 웃더라고요. ‘이게 힘든 회사 맞냐, 당기순이익이 늘어났는데 어떻게 코로나19 핑계를 댈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사측은 ‘퇴직적립금을 100% 적시하지 않아서 당기순이익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거다’라고 핑계를 대더라고요. 그러자 지노위 위원들이 ‘지금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거냐’면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대건설기계에서 용접을 맡은 하청업체는 서진이앤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측은 ‘물량이 없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기존 물량조차 포기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정규직이나 다른 업체에 넘겨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들다는 업체가 물량을 포기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죠. 무엇보다, 협력업체 대표가 물량을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어렵습니다.

 

제 생각엔 서진이앤지 노동자들이 2019년부터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니까 원청이 물량을 안 주고 압박하는 것 같은데, 저희에게는 그런 게 오히려 투쟁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저희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로서는 최초로 협력업체 대표와 교섭을 아홉 차례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여태껏 사측이 저지른 불법행위들(수당 떼먹기, 취업규칙 강제 서명, 산재 은폐 등)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죠. 원청은 이런 과정이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투쟁이 번질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서진이앤지를 위장폐업시킨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Q. 이렇듯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의 집단해고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와중에 원청 현대중공업 자본은 현대건설기계와 같은 업종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인수전은 3대 세습을 준비하는 정기선이 주도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올 6월에 합병 실질심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산인프라코어는 세계 7위~9위를 왔다 갔다 하는 큰 회사입니다. 현대건설기계는 18위에서 21위 정도이고요. 현대중공업이 조선 부문에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듯이 건설장비 부문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를 합병하는 건데, 21위가 7위를 집어삼킨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죠. 결국 정몽준-정기선으로 이어지는 총수일가 3대 세습을 위해 꽃길을 깔아주려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현대중공업은 몇 년 전에도 3대 세습 과정에서 더 쉽게 총수일가 지분을 늘리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꼼수를 부리기 위해 회사를 쪼개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죠. 그러고 나서는 경영위기에 처한 회사들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분명 수많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를 해고하려 할 겁니다.

 

6월에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가 통합하면 국내 건설장비 부문 점유율에서 60%를 넘습니다. 공정거래법상 점유율이 50%를 넘길 수 없도록 규제하는데, 온갖 불법을 다 저지르는 현대중공업에 문재인 정부가 특혜를 주고 산업은행이 도와주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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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싸워

승리하는 경험 쌓았으면

 

 

 

Q. 작년 8월 해고 이후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투쟁에 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조합원들이 길게는 20년 이상 같이 일한 노동자들입니다. 저도 16년 동안 일을 해왔고, 대부분의 조합원이 10년 이상 함께 일했어요. 식구죠, 식구. 이때까지 회사를 같이 다니면서 쌓아온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믿기 때문에, 내가 흔들리면 옆의 동료가 힘들어질까 염려하면서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아직까지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게 그런 기본적인 신뢰를 지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현재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두 차례 임단협 잠정합의를 부결시키는 등 사측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에서 원하청이 함께 싸운다면 더 큰 힘이 될 수 있을 텐데요.

 

 

현실에서 원하청 공동투쟁이 힘든 건 자본이 그렇게 노동자를 갈라치기 해놓은 구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악질 노무관리로 유명세를 떨쳤고, 1987년부터 노무관리를 유지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들었어요. 시대가 바뀌었지만, 그때의 악독한 노무관리는 그대로인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현대중공업 같은 경우는 점차 원하청 공동투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출퇴근 선전전이나 중식집회를 하면 정규직 조합원들도 여럿 결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적극적인 원하청 공동투쟁이 아직 가시적으로 조직되지는 않고 있는데, 이런 점은 더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하청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가 정규직 조합원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안타까웠던 건, 정규직은 노동조합도 잘 조직돼 있고 하청노동자들보다는 처우도 더 나은 게 사실인데, 이따금 정규직 조합원들과 얘기하다 보면 ‘내 것을 나눠줘야 하지 않느냐’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우리 원하청 노동자가 같이 힘을 합해서 현대중공업 자본을 상대로 더 강하게 요구하면 되는데, 본인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 안타까웠죠. 한편으로 하청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여기 고공에 올라와 공장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온갖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정규직 노조도,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다른 시각으로 사고하게 된다면 충분히 원하청 공동투쟁을 통해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물질적 지원과 협력을 많이 해주고 있지만, 막상 교섭에 들어가면 정규직 현안만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한계적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힘들긴 하겠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로 같이 투쟁을 만들어가면서 승리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금 서진이앤지 동지들이 겉으로는 지치지 않고 투쟁하고 있지만, 속은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힘들 거고, 옆에서 툭 치면 쓰러질 정도로 힘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4월 9일)로 254일 차 정문 앞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서진이앤지 노동자들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사업장은 어디든지 똑같으리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승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수 있도록 많은 동지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주변에 많이 알려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인터뷰 =  허성실조직‧투쟁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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