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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하려는 자본

 

현장과 지역에서

이렇게 싸워보자

 

 

이정호┃충북

 

 

 

지난 1월 26일, 국회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다. 비록 국회와 정부의 난도질로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배제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용을 2년 유예했으며 △발주처의 공기 단축에 대한 처벌 조항이나 공무원 책임자 처벌 조항, 인과관계 추정의 원칙을 삭제*했지만 말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이 대중적으로 벌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법이 제정되었다고 해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시켜온 사회가 갑자기 변할 리 없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다시 과제에 당면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알맹이 없애려는 자본

 

첫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제 적용에서 핵심적인 구체 내용들이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이 법이 시행되는 2022년 1월 27일까지 10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많은 부분이 ‘시행령에서 정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는 △중대산업재해로 인정되는 직업성 질병의 범위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범위 △해당 법이 적용될 공중이용시설의 범위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공표의 내용과 방안 등 대단히 중요한 사항들이 포함된다.

 

노동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을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로, 5월경 정부가 시행령 안을 제출해 7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그런데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자본은 일찌감치 전면 개악을 요구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모호한 규정에 관해 기업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시행령이 만들어진 뒤에 대응하면 늦다. 제대로 된 시행령을 제정하기 위해 다시 대중적 투쟁이 필요하다. 우선 5월 정부안이 발표되기 전에 시행령에서 반드시 관철해야 할 우리의 요구를 확인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공유하며 전면화해야 한다. 5월 시행령(안) 발표에 맞춰 정부안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대중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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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백승호)]

 

 

 

현장-지역의 유기적 연계

 

둘째, 지금 우리 앞의 중대재해들에 관한 공동대응을 현실화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국회와 정부가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면서 이미 여러 우려가 제기된다. 가령,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기업 대표이사는 ‘안전담당 이사’를 방패막이 삼아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이를 극복하려면 중대재해 공동대응을 통해 실제 문제가 되는 증거를 모으고 제기해야 한다.

 

우선 현장의 중대재해를 지역 차원에서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도 중대재해 발생 사실이 지역에 잘 공유되지 않는다. 보상을 넘어 더 이상의 죽음을 막으려면, 현장의 중대재해를 해당 지역에 적극 공유하면서 공동대응을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는 개별사업장 노동조합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한 사고조사‧언론 대응‧대(對)노동부 투쟁‧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지원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현장과 지역의 연결고리로서 투쟁의 구심이 될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구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조직적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은 재해 발생 초기 긴급 대응과 함께 재발 방지‧동종재해 예방대책 등을 마련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은 그에 기반해 정치의제화 및 연대투쟁 조직으로 합력을 모아내야 한다.

 

한편,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의 중대재해 대응도 가능해지도록 투쟁해야 한다. 중대재해 발생을 노동자‧시민이 알 수 있게 공표하고, 노동부의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공동체가 중대재해 발생 원인과 재발방지대책에 실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노동자가 직접 개입해야

 

셋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변화가 예상되는 지금, 이를 자본에 일방적으로 맡겨둬선 안 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도록 사업장별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해 이행방안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어떻게 실현할지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조차 대개 명목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의지만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를 선임하고, 이를 중심으로 실제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또한, 담당자만의 몫으로 미뤄두지 말고 노동조합 차원의 준비와 역량 투여가 필요하다.

 

물론, 단기적으로 이 모든 걸 성취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도록 하고, 이를 통해 사측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현장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게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부터 직접 목소리를 내고 개입함으로써 경영책임자가 노동자‧시민에 대한 생명안전 의무를 지키도록 강제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목숨과 비용’이라는 자본의 저울질에 맞서 싸우며 만든 법이다. 곧, 이 법이 위치할 곳은 법전이 아니라 현장이며, 우리는 법 제정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시민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끊임없이 나올 수 있도록, 대중적으로 계급적으로 투쟁하자!

 

 

 

* ‘발주처 공기 단축’은 무리하게 앞당긴 준공 날짜를 맞추게 함으로써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한편, 불법 인허가나 안전 관련 관리감독 부실 등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을 처벌하라는 것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의 주요 요구였다. 또한, ‘인과관계 추정 원칙’은 산재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거나 재해 증거를 은폐하려 한 경우 해당 사용자 측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을 산재의 원인으로 추정한다는 것인데, 이는 산재 발생 시 피해자 측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이런 요구들은 무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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