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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4.22 19:38

‘조용한’ 균등분배로는

성과급의 모순 해결 못 한다

 

 

김진┃교사당원분회

 

 

 

아직도 그대로야? 1

 

30년 전쯤 한 비누 광고 카피로 등장해 유행어가 된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말을 최근 너무 자주 쓰게 된다.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탄압으로 해고자가 됐다가 지난해 6년 만에 복직해 학교로 돌아와 보니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정작 바뀌어야 할 것들은 변함없이 버티고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성과급’이다.

 

그런데 성과급은 정작 학교에서 변하지 말았으면 했던 것들을 변화시켰다. 우선, 성과급에 대한 선생님들의 태도가 변했다. 예전에는 교사마다 ‘등급’이 찍히고 돈이 오가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성과급 지급 시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각자 받는 등급이야 맡은 업무나 담임 여부, 수업 시수와 연수 이수 상황 등을 맞춰보면 미리 알 수 있다. 심지어 관리자가 교사에게 업무를 부여할 때 해당 업무의 성과급 반영 여부를 함께 적시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거 시험에 나온다’고 짚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렇듯 ‘성과급에 반영된다’는 이유로 그냥 입 다물고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학공’(문적 동체’의 줄임말. 교사들 간의 학습모임)이다. 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예전에 교직원 회의에서 하던 연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성과급 때문에 필요하다’는 대답이 빠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연수도 닥치는 대로 들어야 한다. 성과급 평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선생님들은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할 시간이 없다.

 

 

 

아직도 그대로야? 2

 

성과급이 공직사회에 도입된 건 1995년이다. 교사의 경우, 1998년에 학교별 교원의 10% 내에서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전체 교원을 대상으로 성과급을 도입한 건 2001년인데, 이는 7차 교육과정(1997년 고시) 이후 학교에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포문을 연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 후 정부는 교원 평가제 도입을 비롯해 다양한 비정규직 직군 신설과 기간제 교원 확대 정책을 이어왔고, 이제는 고교학점제를 계기로 교원 노동유연화의 완성을 꿈꾸고 있다(<변혁정치> 123호(2021년 3월 15일 자) 기사 “신자유주의 교육과정의 완성,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 참고).

 

그런데 정부가 노동유연화 정책을 밀고 오는 동안, 그에 대응하는 전교조의 투쟁 계획 역시 ‘아직도 그대로야?’를 거듭하고 있다. 2001년 전교조는 성과급 전면 도입에 맞서 반납 투쟁을 전개해 이 제도를 무력화할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투쟁의 성과는 정부의 단체협약 불이행으로 뒤집혔고, 결국 2006년 다시 대대적인 성과급 반납 투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압박을 느낀 건 정부가 아니라 선거로 바뀐 차기 전교조 집행부였고, 급기야 성과급을 각자에게 다시 돌려주며 스스로 힘을 빼버렸다. 그 뒤를 이은 이른바 ‘사회적 반납’(성과급 반납분을 모아 ‘사회적 기금’을 조성한다는 것)은 성과급의 본질적 문제를 건드릴 수 없었다. 이후 ‘현장 무력화’ 전술로 제시된 ‘성과급 균등분배’(지급된 성과급을 학교별로 모아 균등하게 재분배함으로써 차등성과급을 현장에서 무력화한다는 계획)가 지금까지 이어온 유일한 대응이다.

 

2017년부터 문재인 정부가 ‘공직사회 성과급제 폐지’를 약속했지만, 여러 공약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배신으로 끝났다. 정권의 조치만 기다리다 결정적인 투쟁 시기를 놓쳐버린 지금, 오히려 성과급 균등분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서울과 전북에서 교사가 징계를 받는 사태까지 터졌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지만, 이 와중에도 전교조는 ‘조용한’ 성과급 균등분배를 ‘계획’으로 내놓았다. 현장은 혼란스러운데, 노동조합은 그냥 계속 균등분배만 하라고 한다. 단, 주변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조용히!!’

 

 

125_36.jpg

[출처: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전면적인 성과급 투쟁,

다시 시작하자!

 

전교조의 투쟁이 징계의 칼날을 맞은 게 어디 한두 번이랴. 1989년 노조 결성 때부터 이미 1,500여 명이 해직을 감수하며 싸웠고, 이를 바탕으로 전교조는 성장했다. 일제고사 반대 투쟁도 수많은 해고와 징계를 불러왔지만, 끊임없는 투쟁으로 해고자는 복직되고 일제고사 역시 폐지됐다. 시국선언 등으로 해고당하거나 처벌받은 조합원들이 있지만, 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쟁도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법외노조 통보에 맞선 투쟁은 여러 해고자를 낳았지만, 끈질긴 싸움 끝에 복직을 쟁취하고 노조도 다시 합법화됐다. 저들이 ‘멈추라’ 해도 멈추지 않았고, ‘가만히 있으라’ 한다고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게 전교조 투쟁의 역사다.

 

지난 2001년 성과급 반납 투쟁을 다시 돌아보자. 정부가 차등성과급 입금을 강행하자 전교조는 지부별 조퇴투쟁‧대대적 반납투쟁‧연가투쟁 등 총력투쟁을 전개했고, 8만 4천여 명의 교사가 약 350억 원을 반납하기에 이르렀다. 전교조 역사상 처음으로 1박 2일 연가투쟁 벌였고, 연인원 1만 5천여 명이 참여해 성과급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표출했다. 강력한 투쟁으로 전교조는 교육부와 마주 앉은 교섭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당시 학교 현장의 투쟁 결의가 전체 투쟁의 흐름을 바꾸면서 쟁취한 승리였다. 또한, 성과급 문제가 별도의 분절된 사안이 아니라 전면적 교원 노동유연화 정책의 맥락 속에 있음을 조합원들과 공유하며 투쟁을 조직했다. 그 속에서 끌어낸 교육노동자들의 분노는 노동조합 가입과 투쟁으로 다시 연결됐다. 진정 노동조합의 힘과 투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이번 4월 전교조 중앙집행위원회를 앞두고 500여 명의 조합원이 제대로 된 성과급 대응 투쟁을 촉구하는 연명서를 제출했다. 교원 노동유연화 정책의 포문을 연 성과급을 끝장낼 투쟁에 조합원들의 결의와 현장의 힘으로 전교조가 다시 나설 것인지, 이제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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