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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가사노동자 노동법 적용방안>

토론회 후기

 

 

나래┃여성사업팀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가사도우미’부터 ‘베이비시터’, ‘산후도우미’, 그리고 ‘이모님’까지…. 시대와 필요를 반영하는 가사노동자와 관련한 호칭들이다. 2020년 기준 4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노동자의 규모는 상당하다. 이렇듯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이들이 노동자로서 누리는 권리는 찾아볼 수 없다. 바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부터 ‘가사 사용인’을 적용 대상에서 빼버렸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역시 제11조 “적용범위”에서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사노동자들은 지난 70년 가까이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됐고, 정부가 보장해야 할 최소한도의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겐 최저임금이나 퇴직금, 연차수당 등 모든 게 그저 공문구에 불과하다. 소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그야말로 무법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가치 인정 문제,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

 

최근 정치권에서 잇따라 가사노동자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가사노동자 노동권 보장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이슈는 ‘가정 내 무급노동’으로 취급받던 가사노동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노동의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성별 역할로 ‘자연스럽게’ 또는 ‘당연하게’ 여성의 일로 치부하며 가사노동을 무급으로 전가하는 행태는 여성의 임금노동까지 가치 절하하는 영향을 끼친다. 그야말로 보상받지 못하는 필수노동이다.

 

특히 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어느 때보다 돌봄노동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금, 가사노동자 노동권 보장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가사노동의 가치는 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지 않고 모두를 위해 행해지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 노동을 제공하는 여성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지,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는 방향의 운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등 여러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 지난 3월 10일 저녁 변혁당 중앙당사에서 <가사노동자 노동법 적용방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됐다.

 

앞서 언급했지만, 가사노동자 노동권을 부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입법안이 지금까지 4개가 발의됐다(정부안, 정의당 강은미 의원안, 민주당 이수진 의원안,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안).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 제공기관이 노동자를 고용’하게 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여러 한계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정부안은 가사종사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인증을 받은 경우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모든 가사노동자를 포괄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갖추지 못한다. 하지만 재계와 보수야당은 이런 수준의 법안에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단체행동을 할 우려가 있고, 이용자 비용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가사노동자 노동권을 제한적으로 보장해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실상 다른 목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가사서비스 분야의 시장화를 더욱 촉진함으로써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자 취업은 과거엔 주로 개인 간 거래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각종 앱을 비롯한 플랫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플랫폼을 매개로 규모가 더욱 확대되면서, 가사서비스 시장 규모가 1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문제는 배달업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 여타 플랫폼 노동과 마찬가지로 이 가사노동자들 역시 기업의 사용자 책임 회피 등으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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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는 없다,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최근 정부는 노동 관련법을 개정할 때마다 기존 노동법의 문제를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예외적이고 제한적인 ‘특별법’이라는 우회로를 즐겨 쓰고 있다. 가령,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돼 산재를 겪고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던 특수고용노동자 중 화물차주, 가전제품 설치기사, 방문교사,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등 5개 직종을 작년 7월부터 산재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신규 지정했다. 그러나 이는 특수고용노동자 중 지극히 일부일 뿐, 여전히 사각지대는 크다. 노동자 생존과 직결하는 사항인 만큼 적용 제외가 없어야 함에도, 정부는 한사코 전면 적용을 회피하려 한다.

 

가사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영역의 대부분을 민간 시장에 맡겨둔 상황은 자본이 여성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면서 착취를 강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재계가 ‘가사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면 직‧간접적으로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며 반발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사노동자의 기본권은 별도의 제한적인 ‘특별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자체를 개정함으로써 보장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가사 사용인 적용 예외’ 조항을 삭제하고,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 한발 나아가 지금 같은 시장화 방식이 아닌 공공‧공영화 방식의 가사노동 공급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싸운다면,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가사노동 사회화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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