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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철회 투쟁,

제주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정치투쟁의 시작!

 

 

박성인┃제주

 

 

 

곳곳에서 공항 건설판이 벌어지고 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이 혼연일체가 되어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제주 제2공항도 다시 강행하려는 흐름이 나타난다. 토건‧투기자본의 난개발과 정부의 군사기지화(제주 제2공항은 공군기지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에 맞서 제주도민들의 반대 투쟁이 수년간 계속됐지만(<변혁정치> 95호(2019년 11월 1일 자) 기사 “제주도 제2공항(공군기지) 저지 투쟁” 참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본의 개발 논리를 앞세워 제주의 미래를 황폐화하려는 자들의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주 제2공항을 가장 앞장서 부르짖는 건 현 제주도지사 원희룡을 위시한 보수 야당이지만, 문재인 정부도 결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절차적 투명성과 주민과의 상생 방안 마련을 전제로 제2공항 조기 개항을 지원한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절차적 투명성’만을 거론했을 뿐, 제2공항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제주 제2공항 건설 여부를 최종 결정할 권한은 문재인 정부 국토부로 넘어간 상태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미 지난 2월 여론조사 결과, 제주도민들은 제2공항 건설 반대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제3기관을 통해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하고 공문으로 결과를 통보하면 정책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애초의 약속대로, 국토부가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수용해 ‘제2공항 건설 기본계획 고시’를 철회하면 된다. 2019년 2월 정부여당이 당‧정 협의에서 “제주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한다”고 했던 말을 이행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절차적 투명성과 민주성을 보장하는 길’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제2공항 건설은 행정 절차만으로도 간단히 막을 수 있다. 가령, 제2공항 건설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전략 환경 영향 평가” 과정은 현재 환경부와 국토부 사이의 협의 단계에서 중단된 상태인데, 제2공항 사업 주체인 국토부가 사업 중단을 결정하면 전략 환경 영향 평가 역시 자동으로 종료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책임을 제주도 측에 미루기만 할 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않고 있다.

 

만약 국토부가 제주도민의 뜻을 거슬러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려 한다면, 또다시 찬반을 둘러싼 제주도민의 소모적 갈등이 더욱 격화하는 형태로 되풀이될 것이다. 더 이상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립 강행 같은 만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5년에 걸친 논란과 갈등은 이제 분명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그게 제주도민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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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제공]

 

 

 

도민의 결정, ‘제2공항 반대’

 

앞서 언급했듯 제주도민은 ‘제2공항 건설 반대’를 택했다. 지난 2월 18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갤럽(반대 47.0%, 찬성 44.1%)과 엠브레인(반대 51.1%, 찬성 43.8%) 두 기관의 조사 모두에서 “공항 건설 반대”가 높게 나왔다. 이 조사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합의를 거쳐 실시한 것으로, 국토부가 요청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도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여론조사 전문가 견해에 따르면, “‘오차범위 내’에서 반대 우세 결정이 내려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역시 주민투표법 기준을 준용하면 과반 도민의 반대 의견으로 판단해도 무방”하다. 일각에서는 제2공항 건설 부지로 선정된 성산읍에서 찬성(한국갤럽 64.9%, 엠브레인 65.6%)이 반대(한국갤럽 31.4%, 엠브레인 33.0%)보다 우세한 결과가 나온 점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성산읍 14개 마을 가운데 제2공항 직접 피해지역인 4개 마을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마을은 일종의 ‘수혜 지역’이기 때문에, 찬성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은 예상된 결과였다. 진정 ‘주민 수용성’을 거론하려면 직접 피해지역인 4개 마을의 결과를 얘기해야 한다.

 

이번 여론조사는 제주도민의 의식 변화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과거 제2공항을 추진하던 초기만 하더라도 찬성 의견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 결과가 뒤집혔다. ‘제2공항 반대’는 단순히 공항 하나 더 짓는 걸 반대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발 일로를 달려온 제주도에 방향 전환을 알리는 경종”이자, “양적 팽창보다 질적 관리, 개발보다 보전에 방점을 찍은 도민의 선택”이다.

 

제주 제2공항 총사업비는 약 5조 2천억 원으로, 제주도 1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그런데 이번 여론조사 결과, 다른 누구도 아닌 제주도민 스스로 이를 거부했다. 단순한 반대를 넘어 제주의 다른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지하수 고갈, 쓰레기 대란과 교통 문제, 난개발 등 “과연 제주도가 지금까지와 같이 더 많은 관광객, 더 많은 개발을 수용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제주도민은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철새 도래지, 법정 보호종, 동굴‧숨골‧오름 등 자연환경에 대한 훼손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으며, 제주의 진정한 미래는 난개발과 과잉관광이 아니라 잘 보전된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결정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막대한 탄소 배출을 야기하는 대표 산업 중 하나인 항공산업을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제2의 ‘4대강 사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렇듯 제주도민은 제2공항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거부함으로써 과거 30년과는 다른,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제주의 다른 미래를 위한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고, 이번에 확인된 도민의 자기결정권 행사야말로 “제주의 진정한 발전 동력”이 될 것이다.

 

 

 

도민 결정 뒤집으려는

원희룡

 

그런데 이렇듯 여론조사로 결판이 난 뒤인 3월 10일, 제주도지사 원희룡은 조사 결과를 왜곡하며 “국토부는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국책사업을 당초 계획대로 정상 추진”하라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만 통과시키나? 제주에도 제2공항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며 정치 쟁점화에 나섰다.

 

제주도는 다시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망 앞에서 헌법 정신도, 민주주의 원칙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제주도지사에 대해 “원희룡! 당신의 시간은 끝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제주 제2공항 강행 저지 비상도민회의>는 “도민의 민의를 배반하고, 비열하고 비굴하게 토건투기세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행태”라며 원희룡 지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지난 2018년 원희룡이 공론화 결과를 뒤집으면서까지 영리병원을 승인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제주도민들은 “제2공항 철회! 도민 결정 사수!”를 내걸고 다시 주말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최근 LH(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제주 제2공항도 계획이 발표되기 전에 사업 예정지 토지거래량이 급증하는 등 사전 정보유출로 투기가 이뤄진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KBS제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민 뜻에 따라 철회”해야 한다는 쪽이 64.5%로 절반을 훌쩍 넘었고, “성산 주민 뜻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28.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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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제공]

 

 

 

애매모호한 덫에 걸린

문재인 정부

 

이제 제2공항은 제주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개발’과 ‘민주주의(도민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각 세력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도 드러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공항에 대한 찬반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채 책임회피에 골몰하며, ‘갈등 관리’와 국토부의 조속한 정책 결정을 촉구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 일부 도의원이 “원희룡 지사는 국토부에 제출한 제2공항 추진 필요성을 밝힌 공문을 당장 철회하고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 소속 3인의 국회의원은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을 우려할 뿐 아직까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월 28일 제주를 방문한 민주당 대표 이낙연(현재는 대선 출마를 위해 대표직 사임)은 “여론조사 결과가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나왔다. 어찌 됐건 결과는 존중해야 한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제주도의회는 3월 25일 ‘제2공항 갈등 종식을 위한 조속 결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이 역시 도민들이 내놓은 명백한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빨리 결정해 달라’는 모호한 말로 점철됐다(이 결의안에 국민의힘 소속 도의원 5명은 참여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제2공항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고,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승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2공항은 제주의 미래성장 동력이며, 국책사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가덕도 신공항과 연계시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부산에서는 표를 의식해 신공항을 강행하면서도, 제주에서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식의 정치 쟁점화를 노리고 있다.

 

“제주도민의 결정은 끝났다. 이제는 문재인 정부와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철회를 선언해야 한다.” 물론, 현 제도정치 지형에서 이 ‘선언’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민 여론조사 결과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역시 제2공항 건설과 연계된 토건‧투기자본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무엇보다 현 정부여당은 당장 얼마 전 대표적 토건사업인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인 장본인이기에, ‘부산에는 신공항을 지으면서 왜 제주에는 지어주지 않느냐’는 보수야당의 공세 앞에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를 통한 제주도민의 결정은 끝났지만, 제2공항 철회 투쟁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로 지금, 제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정치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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