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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핑계로 쫓겨난 지 넉 달

저 현대중공업 정문을 

박차고 들어가고 싶다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

서진이엔지 해고자 

이병락 동지 인터뷰


#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건설기계”는 본래 현대중공업의 건설장비 사업부로, 2017년에 별도 회사로 분리됐다. 그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업체인 “서진이엔지”는 굴삭기의 팔 부분에 해당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지난해 이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불과 1년 만인 올 7월, 회사는 코로나를 핑계로 폐업과 전원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업체 이름과 사장이 바뀌어도 십 수년간 같은 곳에서 일했던 이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쫓겨날 수 없다며 저항했지만, 지난 9월 현대중공업 사측 경비대에 집단 폭행당하며 끌려 나오는 등 이제는 현대중공업 정문을 바라보며 공장 밖에서 100일이 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서진이엔지 해고자이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대의원 이병락 동지를 <변혁정치>가 만났다.



Q.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지난해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했다고 들었다.


사실 정규직과 하청 사이의 임금 차이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 그런데 서진이엔지 사장은 거기서 더 나아가 ‘코로나로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며 우리를 압박했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올라서 부담이 된다며 임금체계를 강제로 바꿨다. 이렇게 되니,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팀장과 작업자의 임금 차이가 1달에 150만 원 정도 벌어졌다. 거기서 분노가 컸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무엇보다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가 위험한 작업환경이었다. 매번 작업현장이 위험하다고 얘기해도 관리자들은 듣고 넘길 뿐, 실제 개선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정규직은 오늘 얘기하면 내일 바로 조사하고 바꿔주는데, 우리가 얘기하면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안 바꿔준다. 결국 누가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발목 인대가 끊어지거나 하는 사고가 나야 그제서 바꾸는 거다.


다른 곳으로 이직해도 하청노동자의 삶은 똑같다. 그러니 ‘평생 다닐 직장을 우리 스스로 바꿔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서진이엔지 노동자 대다수가 그렇게 의지를 모아 노조에 가입했다. 그 후 많은 걸 바꿨다. 특히 하청노동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무급휴업인데, 앞서 2~3년간 무급휴업 진행했던 증거를 다 찾아서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그간 받지 못한 임금도 받아냈다. 그리고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회사가 바쁠 땐 많게는 주야 맞교대로 월 500시간을 일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 몸이 아파도 회사는 병원에 못 가게 했는데, 우리가 노조에 가입하고 싸우면서 사측이 이런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됐다. 뭔가 바뀌는 게 생기니, 이전까지 노조에 관심 없던 노동자들도 하나둘씩 모였다.



Q: 서진이엔지 사측이 올 7월 돌연 ‘폐업’과 전원 해고를 통보하면서, 그에 맞선 투쟁을 벌인 지 100일이 지났다. 사측은 ‘코로나로 인한 물량감소’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국 노조를 만든 게 싫었던 거다. 저희가 노조에 가입한 게 작년 8월이었다. 한동안은 별문제 없이 흘러왔다. 그러다 사측과 교섭이 결렬되고 지노위에서도 조정중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파업 찬반 투표가 가결됐다. 당초 저희 요구는 임금체계 개악한 걸 복구하라는 것, 그리고 다른 업체도 허용하고 있는 반차를 쓰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상여금과 여성 노동자 생리 휴가 지원도 요구안에 포함돼 있었지만, 사측은 ‘다 안 된다’고만 하니 저희는 파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저희 물량을 원청 쪽으로 계속 뺐다. 때문에 원청 노동자들은 주야간 돌아갈 정도로 바빠졌다. 반면, 우리는 주간도 못 채울 만큼 물량이 떨어졌다. 원청뿐 아니라 사외 외주업체에도 물량을 빼돌렸다. 그렇게 계획적으로 물량을 계속 줄였다.


사측은 코로나 핑계를 댔지만, 정작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저희가 긴급 노사협의회를 열어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달라고 했는데도 거부했다.


심지어 폐업을 통보한 날도 휴가를 코앞에 둔 금요일이었다. 저희는 사측이 현대중공업 원청과 긴밀히 논의해서 폐업을 준비했다고 본다. 가령, 현대중공업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1년에 2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다. 그러려면 6월 30일 전에 올 전반기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는데,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받지 못했다. 이 검진을 하지 않으면 회사가 벌금을 물게 되는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노동자들 건강검진조차 받지 않게 한 건 8월에 폐업할 거라는 계획을 원청과 사전에 소통했기 때문 아니겠나. 저희가 올 2월 쟁의권을 얻었을 때부터 사측은 원청과 논의해서 폐업을 준비해왔고, 그 발표 시점을 휴가 직전 금요일로 잡은 거다.



Q: 결국 지난 8월 24일부로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해고당한 채 싸우고 있는데. 현재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원래 저희가 8월 말에 공장 안에 천막을 치려고 했는데, 사측 경비대에 의해 천막이 다 찢겼다. 그래서 결국 노숙농성에 돌입한 와중에 비까지 왔다. 간신히 위에 덮을 것만 씌워놓고 있었는데, 한 동지가 이렇게 얘기하더라. 이때까지 13년 정도 여기서 하청노동자로 일했는데, 지금껏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렇게 싸우니까 살맛난다고. 공장 안에서 저희가 6일 정도 철야농성했는데, 다른 한 동지는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 갔던 것처럼 이렇게 단체로 모여 있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십 수년 동안 옆에서 일했지만 서로 속 깊은 얘기도 안 해보고 그냥 일만 했던 노동자들이 이렇게 하나로 모여서 싸우게 된 거다. 밤이 되면 이런저런 토론도 하고, 다음날 투쟁 방향도 같이 얘기했다.


저도 그렇지만, 저희 가운데는 쌍둥이 아빠도 있고, 가정이 있는 분도 있고,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제 투쟁이 100일을 넘어가면서 지칠 만도 하지만, 서로를 믿는 것 같다. 그게 또 힘이 돼서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명도 이탈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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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태의 책임이 현대건설기계-현대중공업 원청에 있기에,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 아닐까 싶다.


사실 정규직 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이하 ‘지부’)에서 저희 천막부터 기름, 침낭까지 다 지원해준다. 공장 안에서 같이 투쟁도 했었다. 다만 정규직 또한 현안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인데, 아무래도 집행부는 정규직 조합원들을 의식하지 않겠나. 얘기를 들어보면, ‘현안 해결도 못 하면서 너무 서진이엔지 싸움에 몰두하는 거 아니냐’는 부정적인 견해들도 있는 것 같다. 집행부는 ‘(정규직과 사내하청 모두) 같은 지부 조합원’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상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을 ‘같은 조합원’이라고 생각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 아닐까 한다.


저희가 한번은 회의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 마침 지부가 정문에서 파업하는 날이었는데, 우리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지금 공장에서 쫓겨난 상태이니,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좀 열어달라는 거였다. 지부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저희가 투쟁 거점을 공장 안으로 다시 옮기고 싸움을 이어가려 했지만, 지부에서 거기까지 뒷받침하긴 어려워했다.


제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정규직 노조가 이렇게 도와주지 않느냐’는 얘기다. ‘도와준다’는 건 남에게 하는 것 아닌가. 같은 지부 조합원이라면,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싸우고 행동하자’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저는 현재 막혀 있는 정규직 현안(임금-단체협상) 또한 서진이엔지 투쟁으로 돌파구를 낼 때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 왜냐, 그간 정규직 현안 문제가 풀리지 않은 건 조합원들의 힘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번 사측에 지니까 조합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그 속에 울분이 없는 게 아니다. 서진이엔지 투쟁으로 싸움의 분위기와 활력을 만들어낸다면, 그게 조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그게 진정 ‘우리는 같은 조합원’이라는 정신을 고취하는 것 아닐까.


저는 정말 우리 서진이엔지 조합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싸움을 해보고 싶다. 진짜 사장 한번 만나보자는 거다.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싸우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희가 8월 말에 쫓기듯 공장을 나와서 이후에 진입을 시도했지만, 9월 11일에 사측 경비대에게 집단폭행당하는 등 원청은 저희가 아예 공장에 못 들어가게 봉쇄했다. 그러다 9월 30일에 저희가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정문에 모였는데, 때마침 지부 오토바이 대오가 1천 대 정도 몰려왔다. 사측 경비대도 결국 막지 못했다. 그렇게 지부 대오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때 우리 서진이엔지 조합원들도 사이사이 끼어서 들어갔다. 얻어터지고 쫓겨나왔던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갔으니, 조합원들이 얼마나 결의에 찼겠나.

우리 30여 명이 해고돼서 천막생활 한 지 100일이 넘어갔다. 정말 우리를 지부 조합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놔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보여줄 때 하청노동자 조직화도 더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얘기하지만, 조직된 하청노동자들이 쫓겨난 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누가 나설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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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이엔지 해고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대의원 이병락 동지.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서진이엔지 투쟁에 많이들 관심 갖고 연대해주신다. 저는 솔직히 ‘더 많이 연대해 달라’고 하기보다, 우리 서진이엔지 해고자들이 ‘어떤 투쟁으로 다른 동지들이 연대를 오게끔 만들지’ 고민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 싸움이 우리만의 투쟁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곳에도 뻗쳐서, 저희가 얘기하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첫걸음이 되지 않겠나. 우리가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더 많은 관심과 연대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처음에 사내하청지회에서 연대투쟁 계획을 잡을 때, 저희로선 투쟁도 처음이고 연대도 처음이니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고 일단 시작했다. 처음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그리고 나서는 현대글로비스 하청노동자들과 중앙병원 청소노동자 싸움에 연대했고, 정리해고 사업장인 대우버스, 울산 지자체 CCTV 관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함께 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연대투쟁을 가다 보니 비정규직은 투쟁하지 않고선 생존 방법이 없는 것 같더라. 저희가 연대하러 갔다고 이 동지들이 천군만마를 얻는 건 아니지만, 혼자 고립되지 않고 ‘우리 노동자는 하나’라는 걸 느끼는 것 같다. 우리 투쟁을 알리려고 가는 것도 있지만, 이 연대를 통해 우리 또한 힘을 얻고, 무엇보다 ‘우리도 남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존재구나, 하청이라고 마냥 힘없는 게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우리 문제만 갖고 싸우는 게 아니라, 함께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싸움을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현재 정부여당이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저희 서진이엔지 투쟁과 노동개악 저지 투쟁을 함께 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앞장서 노동개악을 알리며 싸우지 않는다면, 정부와 자본이 노리듯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법이나 노동운동에 관심 갖기 어려워질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노동법이 어떻게 바뀌고 개악되는지 알리고 싸워서, 노동자들이 자본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찾아 안전한 현장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 =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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