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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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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괴물, 

공공성으로 때려잡기


사회주의가 

당신의 집을 드립니다


고근형┃서울



이제 개수를 세는 것도 포기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 얘기다. 자고 나면 또 대책이 나오니, 어느 순간부턴 별 감흥도 없다. 사실 꼭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통한 서민 주거 안정을 달성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부동산의 ‘시장’을 인정하고 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근의 전세난이 ‘임대차 3법 때문’이라는 보수 야당의 주장도 번지수가 틀렸다. 전세난 역시 주택을 시장에 맡긴 결과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세난 아니 주거난 해결을 위해서는 토지와 주택의 국유화, 공공성의 강화가 답이다.



이번 판은 투기판


자칫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맑스의 이야기부터 소개할까 한다. 벌써 150년도 더 전에 그가 부동산 시장은 투기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렇다. 맑스에 따르면, 서로 다른 상품이 등가교환될 수 있는 것은 같은 양의 사회적 노동이 응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품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의 양, 이게 맑스 경제학에서의 ‘가치’이고, 그 가치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가 바로 ‘가격’이다. 즉,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하긴 하지만, 그 진동의 평균점은 상품의 가치가 된다.


이 상품교환법칙의 대표적인 이단아가 바로 ‘토지’다. 간척사업같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이 토지를 생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토지 위에 올라간 건축물의 가치는 있을지언정, 토지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여기에서의 ‘가치’는 앞서 지적했듯 정치경제학적 의미에서의 ‘가치’이며, 도덕적 혹은 사회적 의미의 ‘가치’가 아니다). 상품의 가격은 가치를 중심으로 진동한다고 했는데, 그 중심점이 없는 셈이다. 즉, 토지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상당한 폭으로 변동할 수 있다. 그런데 지구상에 토지의 면적은 제한되어 있다. 그 토지 가운데 ‘목 좋은 자리’는 더욱 제한적이다. 이러니 좋은 터를 잡아 임대사업이라도 하면 그 자체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비극적이게도 누구나 돈 되는 땅을 갖고 싶어 하고, 이는 수요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 결과 토지의 가격은 더 오르고, 조금이라도 빨리 땅을 사려는 투기판이 벌어진다.


『자본론』 제3권에서 맑스는 한 건축업자의 입을 빌려 이런 상황을 블랙코미디처럼 묘사한다. 지금으로부터 163년 전인 1857년에 건축업자 ‘캡스 씨’는 이렇게 말했다.


“출세하려는 사람은 투기적 건축을 행해야 하며 그것도 대규모로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건축업자는 건물 그것에서는 거의 이윤을 얻지 못하며 이윤의 주요 부분을 지대의 상승에서 얻기 때문이다.”

- 『자본론』 제3권 제6편 제46장 “건축지 지대. 광산 지대. 토지 가격” 中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조차 부동산 시장이 투기판임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기실 숨길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 이 판이 투기판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이 투기판에서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대다수는 자기 몸 누일 땅 하나 갖지 못하게 되었다. 주거 빈곤은 토지의 사적 소유와 함께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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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은 

백전백패


물론 간혹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는 시기도 존재한다. 부동산 시장보다 다른 영역에서 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또는 부동산보다 현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 부동산 시장이 잠시 안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기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예 부동산학 교과서에조차 ‘부동산 경기에는 순환이 있고, 그 주기는 매우 불규칙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를테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문제를 논할 때 항상 언급하는 것이 ‘거시경제 여건’이다. 가령 금리가 변동해서 집값이 오르고 전세난이 깊어진다는 등의 이야기다. 그 외에도 재건축‧재개발 이슈나 전철역‧학교‧병원 신설1 등으로 인한 입지 개선 등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무수히 많다. 이러한 거시적‧국지적 변수 모두를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다. 예컨대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저금리’가 지목된다고 해서, 무턱대고 금리를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빚을 짊어진 이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가계부채 1,700조 원 시대에 정부가 경제를 급격히 위축시킬 공산이 큰 금리 인상을 단행하긴 쉽지 않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과연 이 정부가 ‘집값을 낮추는 것’을 정말 목표로 하고 있는지부터 되물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의 비율은 대략 6:4 정도인데2, 주택 소유자 가운데 상당수는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당장 집값의 하락은 자산의 증발을 의미하며, 그만큼 부채 상환 능력의 감소로 이어진다. 부채가 없더라도, 본인 소유의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걸 환영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지 ‘가격 하락’이 아니다.


이렇듯 목표가 애매하니 정책이 먹힐 리가 없다. 종합부동산세 대폭 인상은 야권에서도 거론했었지만,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에서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오히려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은 강남지역 유세에서 1주택자의 종부세를 낮추겠다고도 했다. 설사 종부세를 높인다 해도 다른 변수에 의한 집값 상승의 여지는 남는데, 정부는 이조차 손대지 않으려는 것이다. 정권 초반 종부세 인상을 발표할 때는 일시적으로나마 집값 상승이 진정되는 시기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정책 발표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 정부의 의지를 시장 참여자들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주거권은 언제 어디서나 보장받아야 한다. 경제 여건이 나빠진다고 해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환자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다고 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생겨선 안 된다. 시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누구나 인간다운 주거를 누릴 수 있으려면 답은 하나, 곧 주택을 시장이 아닌 공공이 통제해야 한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비롯한 주거 공공성의 강화와 더불어 그 물질적 토대인 토지와 주택의 국‧공유화가 필요하다.



사라진 공공성을 

찾습니다


하지만 현재 공공주택 역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부족하다. 2019년 기준 무주택 가구가 약 900만 가구인데(통계청), 공공주택은 겨우 150만 호(국토교통부) 수준에 그친다3. 무주택자의 절대다수가 민간임대주택 또는 비()주택을 거처로 삼는다는 뜻이다. 한편, 그 이름이 무색하게 공공주택의 공공성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공공임대주택의 취지는 주거 빈곤층에 양질의 저렴한 주택을 공공이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저렴한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줄이면서 값비싼 ‘행복주택’이나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이 ‘공공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세 대비 10~20%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주거 빈곤층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며, 사업의 구조 자체가 민간임대업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장기임대도 아니고 5년 안팎의 단기 임대가 공급되면서, 세입자들이 주기적으로 공공주택에서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2005~15년 사이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자가 7배 가까이 증가했다.4 그 대상자가 주거 빈곤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값 상승의 효과라기보다는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감소의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공공주택의 공공성은 계속 훼손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서울시가 내놓은 ‘역세권 청년주택’이다. 역세권에 시세보다 저렴한 원룸을 내놓겠다는 취지였는데, 1년도 되지 않아 거주자의 90%가 퇴거했다. 이 역세권 청년주택의 90%는 민간사업자가 공급하는 주택이었고, 임대료 역시 시세와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할 뿐이었다. 월 10만 원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를 받는 공공임대는 전체 물량의 10%에 그쳤다. 현 정부 주거정책의 가이드라인인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도 공공주택 100만 호 중 공공성 있는 장기 공공임대는 28만 호에 그치고, 나머지 대다수는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분양전환 주택 등이다. 물량과 공공성 모두 갖추지 못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 하니, 무주택자가 체감하는 주거복지 수준이 나아질 수가 없다.


이제 또 겨울이다. 난방도 안 되고 외풍이 들어오는 거처에 사는 무주택자의 삶을 위해서라도, 공공성 있는 진정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 모든 무주택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으로의 확대가 필요하다. 종부세 등 토지 불로소득 역시 정부가 공공임대 공급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으로 환수해야 한다. 안정적인 집 하나 마련하려고 ‘영끌’하는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주거 공공성 강화와 주택의 국‧공유화가 필요하다. 지금당장.



1 예를 들자면, 필자는 2016~17년에 서울대 시흥캠퍼스 건립 반대 투쟁에 함께 했는데, 시흥캠퍼스 사업의 핵심은 시흥 배곧신도시에 서울대 캠퍼스를 지어서 주변 아파트 분양가를 높이는 것이었다. 실제로 신도시 광고 문구는 ‘서울대가 바로 앞! 투자수익도 맨 앞!’이었다. 구성원들의 투쟁으로 시흥캠퍼스 착공이 지연되자 시흥시의회는 2017년 5월 결의문을 채택했는데, 그 항목 중 하나가 500병상 규모의 ‘시흥 배곧 서울대학교병원’을 즉각 설립하라는 것이었다.


2 통계청이 11월 17일 발표한 <2019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작년 기준 가구의 주택 소유율은 56.3%로 전년 대비 0.1%p 상승했다.


3 국토교통부, <2019 국토교통통계연보>, 2020년 2월.


4 2005년도와 2015년도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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