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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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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청년 담론, 

새판 짜기


선별적 공정성에서 

모두를 위한 공공성으로


지완┃학생위원회



올해 여름, <대학 민주화를 위한 연석회의>(교육 공공성과 대학 민주화를 위해 각 캠퍼스에서 투쟁한 학생 단체들의 연합체. 이하 ‘연석회의’)의 제안으로 네 개의 청년‧학생 단위가 모였다. 청년 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공정성’ 담론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각자 주력하는 운동은 달랐지만, 청년 사회에서 부상하는 공정성 담론에 대항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공정성 담론을 넘는 공공성이 필요하다’는 제기였다. 각 단체는 인터뷰를 시작으로 ‘포럼 기획단’을 꾸려 두 달을 달려왔다. 그리고 지난 11월 21일, “기획포럼: 청년학생운동 새판 짜기”가 열렸다. 11개 단체에서 온 약 35명의 활동가가 경향신문사 건물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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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정성 담론에 

대응해야 할까?


여는 발제를 맡은 <연석회의>는 ‘학생 사회의 탈정치화가 끝나간다’고 진단했다. 공정성 담론을 앞서서 주창하는 보수적 청년들은 겨냥하는 바가 명확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반대(뚜렷한 정치적 목표), 자본주의 시장질서 옹호(체제 이데올로기 재생산), 그리고 ‘청년 세대’라는 주체의 결집과 세대를 통한 조직화 경로. 더군다나 공정성 담론은 쉽사리 혐오와 결합하면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투쟁을 저지하고 연대의 확장을 막아섰으며, ‘능력주의’ 신화를 확대재생산했다.


다른 단위의 상황 역시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자-학생 연대와 의제운동,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기’라는 주제로 발제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은 지난 2년 동안의 투쟁기를 회고했다. <비서공>은 청년에게도 끊임없이 강요되는 무한경쟁과 차별, 소외의 시대에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운동을 해나갔다. 시혜적 봉사활동이 아니라, 같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투쟁에 임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문제의식은 캠퍼스 울타리 밖을 넘진 못했다. 학내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말하다가도,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나 ‘의사 파업 지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선언했다. 여전히 ‘절차적 적법성‧공정성’을 ‘차별당해도 되는 이유’로 꼽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공정성’을 주제로 발표한 인천대학교 페미니즘 모임 <젠장>은 학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백래쉬(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동)의 일환으로 ‘여성에게 공정성을 요구했던 순간들’을 복기했다. ‘여자도 군대 가라’, ‘경력 단절은 능력 부족 때문’,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 향상(으로 충분하다)’ 같은 논리 속에서 <젠장>은 ‘절차적 정당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여성 차별과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의 모순을 짚었다. 여성의 현실은 애당초 공정하지 못하며, 오히려 필요한 흐름은 그간 여성의 ‘사적 영역’이라고 여겼던 것들(가령 가사노동 같은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 곧 공공성 확대임을 주장했다. 또한,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의 자유주의적 흐름을 비판하며 “지금은 공정한 자격에 갇히지 않는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청년 주거권 운동에 주력하는 <옥바라지 선교센터>는 공공 영역의 전면적 사유화가 문제임을 제기했다. 노동소득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이 시대에 청년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으며 주식과 투자를 반복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투자의 주목적 가운데 압도적인 것은 단연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이었다. <옥바라지 선교센터>는 민간 영역에 맡겨진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권리로서의 주거권을 강조했다. 스스로의 주거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청년에게도 토지 공개념이나 도시 공공성 등 공공 영역을 고민하는 흐름이 필요하며, 이런 맥락에서 각 대학의 학생운동과 철거 투쟁 현장이 만나 함께 공공 영역을 확장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전선을 형성하고 

위기를 선언하자


이날 포럼에서는 온라인만으론 확인할 수 없었던 솔직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이견도 확인했지만, 의제도 확장했다. 가장 많이 나왔던 의견은 ‘공통의 정치 전선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공정성 담론에 대적하는 대항마는 아직 대중적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연석회의>는 오늘날 학생회를 ‘정치의 황무지’라 표현했다. 정치적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 대중투쟁은 한계적이었다. 우리의 대중적 구호와 의제를 어떻게 정치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공공성이 그 대안 세력을 결집하는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했다.


무엇보다 각 청년조직의 재생산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운동 단위 감소와 진보적 학생운동의 고립, 활동 공간 축소의 틈새로 공정성 담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보수야당은 청년 세대의 정치적 보수화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청년 세대 위기를 소비하고, 시장주의적 대안을 제출했다.


현재 보수양당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 담론은 여전히 대중적으로 부재한 상황이었다. 포럼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정치 전선을 확장해 나가는 데 동의했다. 보수화된 청년 담론과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밀려 운동은 어느새 수세적으로 몰렸고, 이런 수세적인 행보들에 진보적 학생들의 정치 공론장은 유실됐다. 포럼에 모인 청년들은 이 시대의 선언적 규명부터 명확히 제시하자고 입을 모았다. 전선을 형성하고 위기를 선언하자.


여전히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투표권이 아닌 사회적 통제권이, 소수가 아닌 다수의 실질적 권력이 절실하다. 위기지만 위기가 아닌 셈이었다. 위기를 규명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출할 청년‧학생들은 아직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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