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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전북지부 현대자동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쓰레기 마스크’ 알린 

한 장의 사진,

그 뒤에 쌓여 있던 

차별과 수모…


이제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화답해야 한다


정상철┃전북(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동자)



지난달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한 장의 사진이 전국에 퍼지며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바로 얼굴 전체에 새까만 분진을 뒤집어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회사가 지급한 마스크는 쓸모없는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마스크를 써도) 5분 만에 입에서 쇠 맛이 나고 쇠 냄새가 난다.” 그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을 자랑하며 요새 날마다 ‘친환경차’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여러 언론을 통해 이 충격적인 사진이 퍼지면서, 사진 속 노동자들이 일하는 분진 가득한 작업장도 주목받았다.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시커먼 먼지가 휘날리는 가운데 작업 중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 노동자를 떠올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공장에서도 엔진 소재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분진이 발생하는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이걸 처리하는 업무를 맡은 게 “마스터시스템”이라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바로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가뜩이나 공정 자체가 쇳가루와 유리가루 등 먼지로 가득해 숨조차 쉬기 힘든데, 올해 코로나가 터진 뒤 업체 측은 기존 마스크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노동자들에게 ‘방진 마스크’라고 제공했다(그조차 하루에 고작 1개였다). 원청이자 실제 사용자인 현대차는 이 사태가 알려진 뒤에도 ‘하청업체 사안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식의 변명으로 책임을 미뤘다. 이 노동자들은 얼굴과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물론이고 온갖 금속 가루를 들이마시면서 일하게 되는데, 비정규직은 폐병이 들어도 ‘쓰다 버리면 그뿐’이라는 건가? 이러니 숨 막히는 봉제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전태일 열사 시대의 처참한 노동환경에서 대체 변한 게 뭐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입증 대신 ‘방문증’,

비정규직 자리 없는 통근버스


이번 ‘쓰레기 마스크’ 건이 큰 이슈가 됐지만, 그간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은 차별과 수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소속 마스터시스템 동지들은 지난 11월 초부터 2주 가까이 매일 전면파업에 가까운 7시간 50분 파업투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 달에 28일 가까이 일하고도 200만 원 남짓한 월급만 받았으며, 그나마 예전에는 지급했던 상여금과 성과금 등 아무 추가 임금도 받지 못했다. 작업자 1인당 책정된 기성금이 560만 원인데, 결국 그 차액은 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이 가져가는 셈이다.


문제는 중간착취와 임금차별뿐만 아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 노동자들에겐 공장 출입증조차 나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일하러 오는 이 동지들은 공장에 들어오려면 매번 정문에서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받아서 출근해야 했다. 심지어 이들은 통근버스조차 탈 수 없었다. 물론, 마스크 문제 역시 이 총체적 난국처럼 얽힌 온갖 차별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우리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하청업체는 ‘우리에겐 권한이 없으니 현대차에 가서 얘기하라’고 말을 돌리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개선 요구는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참다못한 마스터시스템 동지들이 파업투쟁을 벌이게 된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하고 분하다. 조합원들 가슴의 응어리는 더 커졌다. 문제의 진짜 원인은 원청에 있다는 사실이 우리들 뼈에 새겨졌다.” 전주공장 비정규직 동지들의 노조 소식지에 적힌 문구다.



비정규직 동지들의 파업에 

화답하자


필자 역시 같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로서, 여태껏 벌어진 상황 앞에 울분을 떠나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대한민국 최대 노동조합’이라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현장에서, 그것도 바로 이곳 전주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이 일하면서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이 와중에도 현대차는 남의 일 보듯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2006년부터 불법파견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하자 면피를 위해 ‘독립적인 하청업체의 경영’을 주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사용자성을 은폐하기 위해 업체 바지사장을 두는 등 갖은 꼼수를 부렸다. ‘특별채용’ 합의로 마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완성한 것처럼 외피를 두르고,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을 탄압하고 있다. 현재 마스터시스템 동지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그 탄압의 절정이다.


올해 우리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았다. 50년 전 청년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불길에 뛰어든 이래 그 정신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면면이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마스터시스템 동지들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 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있다! 자본은 노동자를 둘, 셋으로 갈라놓지만, 우리는 이 동지들의 투쟁에 함께함으로써 노동자가 하나임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전태일 정신의 계승일 것이다. 바로 여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비정규직 동지들의 파업에 화답하는 투쟁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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