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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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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2.03 17:32

기관사 여러분,

‘할로윈’의 표기법 

알고 계셨나요?


강후┃서울



한 달 전쯤, 철도공사 하반기 공채 시험을 치르고 온 친구를 만났다. 기관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친구였는데, 시험을 치르고 녹초가 되다시피 한 그는 나를 만나자 뜬금없이 웃었다. 좋아서 웃는 건 아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일단 고생했으니 격려 차원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조심스럽게 시험 얘기를 꺼냈다. 그 친구는 문득 ‘할로윈의 우리말 표기법이 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알 턱이 있나. 할로윈이 언제인지도 모르는데.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핼러윈’이라고 정답을 말해줬다. 다른 것도 있었다. 대개 ‘콜라보’라고 많이들 부르는 ‘콜라보레이션’의 ‘우리말 표기법’은 ‘컬래버레이션’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명박 어륀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며 넘겼겠지만, 이게 시험 문제로 나왔으니 ‘문제’였다. 대체 ‘할로윈’을 ‘핼러윈’이라고 국문으로 표기하는 게 기관사를 뽑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전국의 열차 노선도를 마음속에 품고 사는 이 친구에 비하면 나는 철도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 지난 10년간 철도노조가 인력충원을 요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기괴한 일이다. 한쪽에서는 과로를 호소하며 인원을 늘리라고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어떻게든 지원자를 떨어뜨리려는 데 골몰하고 있으니.


공기업 시험 경쟁률이 100:1을 넘나드는 게 예삿일이 된 요즘이다. 철도공사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이 시험에 응시하는 이들 모두가 정말 ‘철도인’으로서 자아실현을 원하는 걸까? 공기업 시험을 치르는 많은 이들이 여러 곳의 공사에 함께 지원한다. 응시자들을 도덕적으로 나무랄 게 아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의 씨가 마른 현실이 그들을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만약 어떤 직장이든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해도 생활을 유지하는 데 넉넉한 보수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각자 알아서 자격을 갖추고 시험을 치르라’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직접 양성 프로그램을 제공해 원하는 누구든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일정 기준을 충족한 이들을 업무에 투입하게 된다면 어떨까. 


사회주의가 된다고 해서 철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곧바로 기관사가 될 수도 없고, 기관사를 무작정 늘려 열차 한 편에 대여섯 명씩 투입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으로 필요 인원은 배가되고, 어떤 일을 하든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기에 ‘곧 죽어도 철도’가 아닌 이들이 굳이 아등바등 기관사가 되려고 몰릴 일도 없으며, 설령 지금 당장 현업 기관사가 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생계유지를 위해 하루에 4시간 정도 다른 일을 한 뒤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인력 양성 프로그램에 등록해 교육훈련을 받을 시간과 기회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이게 ‘할로윈’ ‘핼러윈’ 같은 시험 문제를 내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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