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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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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7.01 19:40

‘풀빵정신’, 

‘모범업체정신’이라는 

바이러스


김태연┃대표



“이제 ‘풀빵정신’도 모자라서 ‘모범업체정신’이라니?” 변혁당 당원인 어떤 동지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이 동지는 ‘전태일의 아름다운 풀빵정신과 모범업체정신을 사회에 불러내려 한다’는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의 출범선언문을 통탄해 마지않았다. 또 어떤 동지는 6월 20일 청계천 전태일거리 집회에서 ‘풀빵정신과 모범업체정신은 노동자의 계급성과 투쟁성을 버거워하고 벗어버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전태일정신이 풀빵정신이라고?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이건 술자리에서 터져 나온 어떤 동지의 격한 발언이다. 전태일열사정신에서 계급성과 투쟁성을 제거하고 시혜와 동정의 정신으로 변질시켜버리는 작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어찌 이 동지들뿐이겠는가?


더 큰 문제는 이런 황당한 내용이 전태일열사 정신에 대한 문구상 규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가 촉발한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노동자계급의 투항과 계급협조의 실행을 노골적으로 선동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국민이 함께 손잡고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연대기금 조성 운동을 노동자‧시민 속으로 넓고 깊게 펼치려 한다.” 바로 이 부분이 5월 7일 자로 발표된 앞의 출범선언문에 담긴 행동지침이다.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가 코로나 사태에서 임금동결을 노골적으로 선동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연대기금안을 발표하며 노사정 합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임금인상분을 걷어서 기금을 조성하자’는 정도의 내용은 조직 내 대중적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대의원대회 결정을 거쳐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무시되고 있다. 심지어 지난 6월 26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는 집행부의 양보론에 반대하는 1천여 명의 현장조합원과 단체들이 연명한 공동입장서를 중집위원들에게 배포하려 했으나,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전에 허락되지 않은 선전물’이라는 이유로 수거해 버렸다고 한다. 민주노총 창립 이후 각급 회의에 배포하는 선전물을 집행부가 강제수거해 언로를 막아버린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비정규노조의 대표자가 회의를 참관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거부당했다. 민주노총의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며, 비공개해야 할 때에는 절차에 따른 결정이 있어야 한다.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는 참가한 170여 개 단체의 이름과 전태일열사정신의 권위를 빌어 사회연대기금 추진을 선동하고, 민주노총 집행부는 매우 거친 방법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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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이미 10년 간격으로 두 번의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경제위기의 고통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매번 경제살리기론, 고통분담론, 금모으기운동, 사회적 합의론 등 고통전가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노동자들의 투쟁기운을 제거하고 투항분위기 확산하는 감염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시 10여 년 만에 도래하는 경제위기는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핵폭탄급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역대급 위기상황에서 또다시 투항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풀빵정신이 아니라 제 몸에 불을 붙여 역사로 직진한 불꽃 열사 정신이 전태일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전태일을 시혜와 동정의 정신으로 묶고 노사상생의 정신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을 우리는 단호하게 ‘계급적 입장의 차이’라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월 20일 비정규직 긴급행동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문재훈 동지의 발언에 격하게 공감한다. ‘사회연대전략’이나 ‘사회연대임금’ 등 그럴듯한 수사를 붙이고 있지만, 이것들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이 아니다. 또다시 노동자계급을 투항으로 몰아넣는 사회연대임금론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다. 자본가집단 경총의 임금동결론과 일맥상통한다.


이미 두 번이나 같은 병에 감염됐다면, 이젠 항체를 보유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제 노동대중은 자본과 정권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들이미는 고통분담론 바이러스에 내성을 갖게 됐다. 자본이 약삭빠르게 주장하고 있는 임금동결‧임금삭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연대임금이라는 말장난으로 포장된 투항론이 자본의 바이러스라는 점을 대중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내에서 생긴 변종 바이러스가 노동계급의 투쟁전선을 흩트리고 있다. 민주노총이 7월 10만 전국노동자대회를 제기하고 있으나, 사회연대임금이라는 투항론이 투쟁의 조직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우려해 지난 6월 26일 양보론 반대 공동입장서에 연명한 노동자들은 주로 비정규직 철폐, 노조파괴 분쇄, 정리해고 저지 등 투쟁의 전면에 섰던 사람들이다. 아래로부터의 이런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만이 올바른 처방전이다.


“전국노동자대회 명칭에 ‘전태일열사정신 계승’이라는 문구를 넣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던가. 또 그 전국노동자대회를 사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지를 잃었던가. 그렇게 전국노동자대회를 사수해내고 노동자들은 기세 높여 투쟁의 최전선으로 성큼 다가서곤 했다.” 이황미 동지의 페이스북 글이다.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170여 개 단체 중 전태일정신을 짓밟아 온 곳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단체는 전태일정신을 함께 만들어 왔을 것이다. 이들 단체가 본의 아니게 열사가 산화한 지 반세기 만에 열사정신을 ‘풀빵정신’, ‘모범업체정신’으로 왜곡하는 데 이름을 함께 걸고 있음을 진지하게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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