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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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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융합한 자본주의에 맞선 

여성해방의 열쇠 찾기


선지현┃충북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계급문제도 말하고 여성문제도 말하자는 것’이라고 해석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 페미니즘(여성해방론)을 견지한 이들에게는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고, 급진 페미니즘 세력에게는 ‘진부함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을 고민해왔던 여성들은 그런 단순한 결론을 내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계급문제나 가부장제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견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양상을 복합적으로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고민이 단순할 수 없었던 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등장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1970년대 등장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사상과 실천은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급진주의적 실천의 토대 위에서 등장했다. 혁명에 성공한 국가에서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유지되는 것을 보면서 ‘계급해방으로 여성억압이 종식되진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여성들에게 ‘여성문제는 결국 계급문제’라는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의 주장은 답이 될 수 없었다. 계급문제로만 해석할 수 없는 여성억압과 폭력이 그녀들의 주변에 늘 존재했다. 그녀들에게 계급문제로 여성억압을 환원하는 주장은 여성문제를 계급운동의 주변으로 놓아두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었다.


동시에, 계급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여성억압의 원인을 가부장제에서 찾는 급진 여성해방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억압의 문제를 온전히 해석할 수도 없었고, 여성억압을 끝장낼 수도 없는 불완전한 전망이었다. 그렇기에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해방 없는 계급해방 없고, 계급해방 없는 여성해방 없다’로 표현됐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해방을 위한 실천의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여성 노동을 가정 안팎에서 남성 노동에 종속된 노동으로 전락시키면서 체제를 유지하는지를 폭로해나갔다. 또한 여성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함으로써 더욱 공고해졌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융합(결합)이 낳은

여성억압과 착취(수탈)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기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일군 여성운동가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여성착취와 억압의 원인으로 작동한다’고 보거나, 또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면서 여성을 착취‧억압한다’고 제기했다. 양자 모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여성착취‧억압의 요인으로 본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그 상호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줄리엣 미첼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여성억압에 거의 동일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본격화했다. ‘소외’ 개념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억압이 작동하는 원인을 살폈던 앨리슨 재거는 ‘계급철폐는 생산노동 영역에서 여성의 착취를 종식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 소외(자신의 몸에서 소외, 남성에 의해서 여성의 몸이 소외, 출산에 대한 통제를 당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 박탈, 육아에서의 사회적 기준으로 인한 소외 등)는 종식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각각이 여성억압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두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상호작용(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가부장적 자본주의)으로 여성착취와 억압의 원인을 살폈던 여성운동가들은 ‘성별관계와 계급관계의 융합 또는 결탁’을 살폈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여성들이 주변화되고 그로 인해 제2의 노동력으로 기능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적이고 근본적 특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이드 하트만은 “여성의 진정한 적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또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단일체계”라고 보면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공생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회주의 운동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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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복수의 ‘착취와 억압’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일을 살펴보자. 경제위기가 도래하면 여성은 해고 1순위다. 시장주의적 방식으로 사회화된 돌봄 노동의 95%는 여성의 몫이며, 저임금 노동이다. 오늘날에도 ‘여성의 일자리’로 지목되는 분야가 명백하게 존재하며, 사회는 이를 당연시한다. 이 노동 역시 대부분이 저임금‧불안정노동이다. 이는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과 저임금노동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이름으로 무급 가사노동과 저임금 생산노동을 동시에 하고 있다. 여기에다 여성보다 높은 남성의 임금을 정당화하고 여성을 무급 가사노동에 종속시킨 ‘가족임금제도’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결과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차별, 여성의 저임금‧불안정노동은 단단하게 구조화되고 이성애 중심의 가족구조 아래서 성 역할은 더 단단해진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규제하더니 이제는 낙태를 범죄시하며 처벌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재생산노동을 총자본으로서 국가가 재구획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어머니’, ‘아내’, ‘노동자’라는 각각의 위상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그 ‘때’는 자본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성폭력은 어떤가? 이는 사회에서 구조화된 성차별과 이중적 성규범에서 비롯된다. 성차별은 성별분업과 맞물려 돌아간다. 이중적 성규범은 이성애 가족 중심 가족제도 하의 성 역할과 맞물린 강력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결과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요한 힘이다. 이렇듯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가 변화하는 생산양식과 융합해 유지되는 지점을, 자본주의가 가부장제를 활용해 체제를 단단하게 유지하는 지점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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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방을 실현하는 사회주의의 길 찾기


최근 한국사회에서 몇 년에 걸친 페미니즘의 대중화는 큰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표방한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낙태죄 폐지 투쟁, 여성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 미투운동 등에 결합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독자적인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페미니즘 대중화라는 역동적인 정세 변화 속에서 아직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설 자리는 좁다. 이제 사회주의 운동이 여성 의제 및 투쟁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대중 앞에서 나서야 할 때다.


다수의 사회주의 운동세력은 ‘자본주의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페미니즘적 관점을 배제하고서는 그 본질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운동이 단순히 페미니즘과 결합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이 여성(과 환경)해방적 관점에서 재구성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운동은 여성문제에 대한 독자적 실천을 도모해야 한다.


가장 먼저, 성별화된 노동의 위계를 깨뜨리는 실천에 나서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생산 노동이 아닌 노동은 ‘가치’가 없다는 이론적 태도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생산-재생산 노동 전체를 남성 노동의 보조적 지위로 전락시키고, 저임금‧불안정노동을 정당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면 재생산 노동이 여성만의 영역으로 한정되지 않도록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하고 평등한 분담체제를 이뤄내는 것과 동시에, 재생산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이 투쟁은 여성의 저임금‧불안정노동 문제, 가사‧돌봄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문제를 포괄한다. 동시에 여성의 무급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가치인정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논쟁적 제기가 나올 수도 있다. 아니 사회주의 운동이 먼저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실천 무대에 나설 수 있다.


둘째, 공기처럼 일상화된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가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맞닿아있음을 끊임없이 규명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분노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다양한 모임을 만들고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지난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분노는 분리주의적 경향의 확대 흐름 속에서, 가부장제와 융합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접근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운동에 책임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기초로 우리는 더 많은 발언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모임을 만들어 분노한 대중과 만나자. 여성들이 분노하는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들려야 한다. 더 이상 늦추지 말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정정하고 발전시키며, 여성해방의 열쇠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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