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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뉴딜? 기본소득? 그들의 대책이 가리는 것들


코로나19 이후 기본소득 논의와 그 한계


김병인┃성공회대



코로나19를 계기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제도정치권에서 불붙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애당초 기본소득을 주장하던 정치인뿐만 아니라, 보수야당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개적인 언급이 나오며 여야 가릴 것 없이 유력 대권 후보들이 다들 한마디씩 말을 보탠다. 서로 사용하는 명칭도 조금씩 다르고 내포한 의미와 개념(구체적으로는 기본소득의 액수와 재원 마련 대책까지)도 상이하지만, 이들이 ‘일시적 재난대책(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경제정책’의 위상을 기본소득에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런데, 정말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사회‧경제적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구조적 불황 이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그간 저임금‧불안정 고용을 확대하고 자영업 창업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실업 및 재정위기를 봉합하려 했다. 하지만 감염의 위험에 따라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되면서 이 같은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이 높은 전문직 종사자와 달리, 이런 조건이 불가능한 간호‧택배‧돌봄 노동자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들은 실직 위험과 노동소득 감소 등 경제적 타격을 크게 받으면서 노동시장 유연화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위기에 대응한 정책 의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이나 코로나19 이후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플랫폼 노동이 발달하면서 현재의 사회보장체계로는 실업과 노동소득 감소에 대처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퍼졌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이른바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가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에서도 현행 실업보호체계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 직불카드 방식의 ‘청년 기본소득’이나 ‘재난 기본소득’ 같은 모조품이 아닌 기본소득의 오리지널 버전, 즉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전 국민에게 주자는 아이디어가 한국에서도 핵심 정책 의제로 부상한 듯하다.



기본소득론의 근본적 한계


흔히 기본소득은 ‘우파 버전’과 ‘좌파 버전’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우파 기본소득론을 살펴보면, 그 의도가 너무 뻔해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사회보장을 축소하고 공공서비스를 대체해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결국 복지제도의 민영화 방안이다. 언뜻 보면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에겐 유리할 것 같지만, 이 방안은 기초생활보장제도 폐지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도리어 이들에게 타격을 준다. 그렇기에 우파 기본소득론자들은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일정 수준 이하 저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지 않고 보조금을 주는 시스템)’를 통해 사회보장제도나 누진세를 폐지하자고 제안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표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진정한 후예들이다.


좌파 기본소득론은 어느 정도 진보적 색채를 띠어 지식인이나 중간계급 일부의 지지를 받는 듯하다. 이들의 문건과 주장을 살펴보면 ‘사회보장체계가 한계에 처했다’고 지적하는데, 그 근거로는 ‘정규직 고용에 바탕을 둔 사회보험의 한계’와 ‘자산조사를 통한 낙인효과’, 그리고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공공부조의 문제점’ 등을 주로 꼽는다. 기본소득은 사회보험처럼 보험료 납부경력을 요구하지 않으며, 공공부조와 달리 ‘개인’ 단위로 지급하기 때문에 ‘일자리 축소와 불안정 고용이 필연적인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이유는 현존하는 사회보장체계를 인정하고 공공서비스 확충의 필요성을 시인하며, 재원 마련에서 공유부(共有富: 토지‧천연자원 등 모두가 공유해야 할 자연물과 더불어, 지식‧빅데이터 등 특정인의 소유로 귀속시킬 수 없는 자산을 활용한 수익 등을 가리킴) 과세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공유부 재산에 대한 과세는 인류가 축적한 유‧무형의 자산에 세금을 매겨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지금처럼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 아무런 노동도 없이 소수의 자산가나 자본가가 이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공유부 과세가 그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대중에게 호소력이 크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과세로 마련한 재원을 인간의 필요(needs)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분배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그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들 중 일부는 (비록 추상적이지만) 낮은 수준에서 월 30만 원을 전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주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왜 실업자나 빈곤층이 아닌 부자에게까지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는 못한다. 빈곤층과 부유층 간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또한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낮은 수준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더라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돼 사회보장과 공공서비스 분야의 희생이 불가피한데, 그들은 그저 침묵할 따름이다. 교육‧의료‧주거 등 현물(또는 서비스) 공급을 공적으로 책임지는 것보다 왜 현금형 기본소득이 우선해야 하는지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강제적인 노동의무에 대한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방하지만, 이들의 주장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고용보호 등 노동의 권리를 고심하거나 모색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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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표자 밀턴 프리드먼은 기본소득과 유사한 '보조금 지급'을 제안하며 사회보장제도와 누진세 폐지를 주장했다. 사진 왼쪽이 밀턴 프리드먼, 오른쪽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사진: wikipedia]



현실 세계의 기본소득 실험들,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의 ‘활성화’?


추상적 수준이 아닌 현실 버전으로 등장한 기본소득 모델은 공공부조 개편 차원에서 실시하는 실험들이다.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핀란드 중앙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목적은 ‘경제적 자활’을 명분으로 내세워 공공부조 수급자를 저임금‧불안정 노동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복지 및 조세체계를 노동 유인형으로 개편하는 것이었다.


가령 핀란드의 실험은 ‘활성화 모델(activation model)’**에 따라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복지급여를 삭감하는 공공부조 수급자 집단과 △무조건부 기본소득 수급자 집단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집단에서 저임금 노동시장으로의 공급이 더 높은지’ 검증하는 것이었다. 우파 정부가 주도한 이 실험은 결국 노동 공급 확대라는 가시적 성과를 입증하지 못했으며, 엄벌적인 활성화 모델보다 비용-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조기 종료됐다. 결국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우파 정부에게 ‘노동시장 유연화와 고용촉진을 추구하는 데 활성화 모델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확신시킨 계기가 됐다.


좌파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런 실험에 대해 양면적 태도를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런 실험이 기본소득 모델과 어긋난다고 지적하지만, 일말의 기대감도 은연중 내비친다.*** 그 까닭은 이들이 ‘노동 유인 개선’을 ‘공공부조와 구별되는 기본소득의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공공부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 곧 ‘노동소득이 증가하면 복지급여가 감소하기 때문에 수급자들이 저임금노동보다 복지를 선택하게 만든다’는 사고가 깔려있다. 반면 저임금 소득과 충분히 양립 가능한 기본소득은 ‘노동 공급 및 노동시간 증대’를 장려할 수 있기에, 이들의 인식에서 ‘불안정 고용이 필연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최상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착취적인 노동시장보다 개인의 행동 변화에 주목하는 이런 주장은 최저생계비에 근거한 공공부조의 특성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최저생계비 개념은 노동경력이나 노동소득 없이도 모든 시민이 최저생활은 영위해야 한다는 철학에 바탕을 둔다.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노동 유인 개선’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인간다운 생활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낮은 최저생계비’와 ‘제도적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것이다. 빈곤 위험에 처한 청년, 불안정 노동자, 돌봄제공자를 비롯한 비고용인구 등 모든 이들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의 개선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좌파 기본소득론자들은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오직 기본소득만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비전형적인 노동시장과 적합하다고 호소하면서, ‘노동 유인’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하는 건 아니지 의문이다.


이런 접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근로장려세제(EITC)처럼) 취약계층에게 열악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긍정한다는 점이다. 저임금노동시장으로 유도하고자 재정적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정책은 그만큼 대체 가능한 노동력을 많이 공급함으로써 자본가에게 노동자를 착취할 여지를 넓혀준다. 캐나다의 반빈곤 활동가인 존 클라크(John Clarke)는 이런 기본소득론의 주장에 대해 ‘노동계급이 납부한 세금으로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를 채용하려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좌파 기본소득론이 복지 후퇴를 동반하고 생활임금 운동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염려했다.



대안 모색


기본소득은 필요-호혜성-사회적 연대의 원칙이 부족하다. 동일한 금액의 현금을 어떠한 필요나 형평성도 고려하지 않고 주자는 아이디어는 개인주의적‧시장주의적 지향을 강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원의 재분배와 함께, 이를 구현하고자 강제적인 노동의무에 반대하고 노동의 권리를 새롭게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노동자민중 간 호혜성과 사회적 연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임금 상실에 대한 보상과 최저생활 보장, 공공주택‧무상의료‧무상교육 등과 같이,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필요가 무엇이며 이를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복원할지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체제 변혁 수준에서의 포괄적이며 총체적인 접근은 그래서 더욱 요청되는 과제다.



* “기본소득 ‘원조’ 정당들 “여야정 협의체 만들자””, <매일경제> 2020년 6월 7일 자.


** ‘활성화(activation)’는 사회정책 문헌에서 복지수급자나 비경제활동인구의 고용촉진 및 탈수급을 추구하는 정책적 지향 또는 패러다임으로 논의되고 있다. 보통 ‘일을 통한 빈곤 탈출’ 또는 ‘일을 통한 복지’를 표방하면서 구직 및 자활의무 강화와 급여삭감 같은 엄벌적 수단과 함께, 복지수급자에게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보육서비스, 근로장려세제 등 고용가능성 향상을 위한 기회 제공에 역점을 둔다. 주로 엄벌적 수단에 초점을 맞추는 ‘조건 부과 정책(welfare conditionality)’이나 강제노동을 부과하는 ‘워크페어(workfare)’와 달리, ‘활성화’는 좀 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된다. 다만, 여기서 인용한 핀란드의 활성화 모델은 ‘조건 부과 정책’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 Van Parijs, P.(필리프 판 파레이스), “Basic Income: Finland’s Final Verdict(기본소득: 핀란드의 최종 판결)”, <Social Europe> 홈페이지, 2020년 5월 7일.


**** 유종성,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적이 아니라 구원투수”, <프레시안> 2020년 6월 24일.


***** “기본소득 반대의 기본적 이유들”, <레디앙> 2020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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