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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국유화, 왜 안돼?


아시아나항공, 쌍용자동차, 두산중공업…

자본가들의 무능함이 극에 달한 지금,

국유화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주용┃기관지위원장



돈은 퍼줘도, 국유화는 못 한다?


“정부가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해서 국유화나 경영간섭 하는 것은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4월 29일)


“(기간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 관련) 국유화는 없을 것이며,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4월 24일)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최고 책임자들이 잇따라 ‘국유화와 거리두기’ 발언에 나섰다. 발단은 정부가 코로나 경제위기에 대응해 지난 4월 22일 발표한 40조 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이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기금을 설치하고 국가 보증 채권을 발행해 자원을 조달하며, 이 돈으로 위기에 빠진 주요 기간산업(항공‧해운‧조선‧자동차‧일반기계‧전력‧통신 등)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이 지원책은 기업에 대출해주는 조치를 넘어, 아예 해당 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방안까지 포함한다. 이제 정부는 일시적 유동성 공급에 그치지 않고, 나랏돈으로 개별 기업 지분도 인수한다.


그러자 발표 당일부터 ‘국유화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과 제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국유화와 전혀 관계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오히려 어떻게든 국유화로 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 주식 매입처럼 출자에 들어가는 비중을 전체 지원액의 15~20%로 제한하고, 주식을 사더라도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매수하는 등 기업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한다. 다만 지원 조건으로 내건 것은 △고용인원의 90%를 (겨우!) 6개월간 유지(이조차 “관계부처 의견수렴 등을 거쳐” 더 낮게 조정 가능)하고 △자금 지원 기간 중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금지하며, 2억 원 이상 고액 연봉자 보수를 동결하는 정도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는 자본에 돈을 퍼주면서도 한사코 국유화는 거부한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공적 자금 투입은 필요한 일이지만, 국가의 지원 없이는 사업을 유지할 최소한의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자본가들의 소유와 경영권을 대체 왜 보장해줘야 하는가? 실물경제위기가 장기화할 만큼, 진정 고용을 안정적으로 지켜내려면 공적 자금 투입 기간산업을 국유화해야 한다. 특히 당장 존립 여부가 경각에 달린 아시아나항공과 쌍용자동차, 두산중공업 같은 기업에서는 더더욱 국유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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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국영 공공 항공사로!


현재 항공산업은 국유화가 아니고서는 고용을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 2월부터 항공기를 이용한 여객과 화물 운송 모두 급감해, 4월 2주 차에 이르러 전년 대비 국제선 여객 수가 무려 98.1% 감소했고(국내선 여객 역시 61.3% 감소), 화물 운송도 국제와 국내 각각 35.2%, 54.7%씩 줄어들었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지난 5월 초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전망을 인용하며 ‘여행 수요 붕괴로 2020년 세계 항공산업 이익이 전년 대비 55%(3,140억 달러: 약 390조 원) 하락할 것’이라 밝혔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가 한풀 꺾여도 한동안 해외 이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어, 항공 수요가 되살아나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만 탓할 문제도 아니다. 한국 항공산업은 코로나 이전부터 자본가들의 경영실패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삼구는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막대한 차입금을 끌어다 썼는데, 그룹 대표 계열사 아시아나항공 역시 4천억 원가량을 부담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이 대규모 빚은 이자비용과 함께 불어났다. 뿐만 아니라 그룹 경영권 관련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아시아나항공 자금 790억 원으로 금호산업 회사채를 매입했는데, 이 역시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졌다. 총수일가 자금줄로 쓰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폭증했고, 2015년에는 무려 990%에 이르렀다. 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지난해 HDC현대산업개발에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항공산업 업황이 더욱 악화하자 현대산업개발 측은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결국 지금처럼 정부가 돈‘만’ 댄다고 한들, 그다음은 깜깜이 절벽이다. 정부(산업은행‧수출입은행)는 아시아나항공에 지난해 1조 6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한 데 이어 올 4월에도 추가로 1조 7천억 원을 대출하기로 했고, 여기에 “기간산업안정기금”도 부채가 많은 대형 항공사에 먼저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은 전 직원 무기한 무급휴직을 강요받고 있으며 특히 화물 하역과 기내 청소 등 지상 조업을 담당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다. 당장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업황 개선이 요원한 상황에서, 민간 자본의 손에 항공사 경영을 맡겨서는 원‧하청 어느 곳도 고용을 지켜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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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 공공운수노조]



국유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5천억 원을 출자전환하는 것만으로 국책은행은 곧바로 30%의 지분을 쥐게 된다. 경영실패 책임을 물어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등 총수일가가 누리던 이윤을 모조리 환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시아나항공을 국영 항공사로 전환하고, 막대한 공적 자금이 국가 책임하에 원‧하청 총고용 보장에 쓰일 수 있도록 통제하며,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항공사가 재벌의 자금줄이 아닌 명실상부 공공 대중교통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완전히 국유화해야 한다.



쌍용차: 손 털려는 마힌드라, 책임 묻고 국유화해야


지금의 경제위기 속에서 국유화 외에 고용 보장 대책이 달리 없는 것은 제조업 부문 주요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3일, 쌍용자동차 모기업인 인도 마힌드라가 당초 약속했던 쌍용차 신규 투자 계획을 전격 취소하고 단기 운영자금 400억 원만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쌍용차가 새로운 투자자를 찾도록 지원하겠다”고 명시하면서, 사실상 손을 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쌍용차 올 1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단기 자금 400억 원조차 연 3%씩 이자를 내야 하는 ‘차입금’ 형태로 빌려주는 것이다.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쌍용차의 이 분기실적보고서는 회계감사법인에 의해 ‘계속 기업 존속능력이 의문’이라며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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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정리해고 분쇄 파업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 [사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차 역시 위기의 책임은 최대주주 마힌드라와 경영진에 있다. 쌍용차 2019년 연간 사업보고서를 보면, 전년도까지 6백억 원 수준이던 영업손실이 1년 만에 2천억 원 이상 급증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쌍용차 노동자들의 연간급여 총액은 오히려 2백억 원 줄어들었는데, 이는 ‘뭔가 다른 곳’에서 손실이 발생했음을 뜻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오민규 동지의 분석을 보면, 2011년 마힌드라가 인수한 이후 쌍용차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당시 1천 2백억 원 수준에서 2018년 2천억 원 이상으로 증가했는데, 정작 쌍용차 신차 개발은 연달아 연기됐다. 그렇다면 그 막대한 연구개발비는 어디로 간 것인가? 게다가 마힌드라는 쌍용차에서 개발한 티볼리 플랫폼을 헐값에 활용해 인도 시장에서 같은 차량을 생산‧판매하며 큰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들이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리라 기대할 순 없다. 무엇보다 마힌드라 자체도 위기를 맞은 상태다. 마힌드라는 거의 전적으로 인도 내수시장에 의존하는데, 인도 경제가 2018년부터 침체하는 데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올 4월에는 인도 전체 자동차 내수 판매가 ‘제로’를 기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더군다나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쳐 ‘미래차 전환’이라는 미명하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 마힌드라가 아닌 그 어떤 자본가에게도 ‘쌍용차를 대신 회생시켜주길’ 바라는 건 무망한 일이다.


결국 국유화가 쌍용차와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낼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오는 7월, 산업은행이 쌍용차에 제공한 단기차입금(총 9백억 원) 만기가 도래하는데, 이때 만기 연장 등의 조건으로 노동자들에게 추가적인 희생을 요구할 공산도 크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쌍용차에 빌려준 장기차입금까지 합하면, 거의 2천억 원 가까운 공적 자금이 쌍용차에 들어가 있다. 현재 쌍용차 시가총액이 약 2,400억 원 정도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다. 그렇다면 정부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임금삭감 등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자들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떠넘기며 마힌드라를 위해 돈을 넣을 게 아니라, 오히려 대주주 책임을 물어 지분을 소각하고 국유화하도록 요구하는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개별 기업인 현대차의 산업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며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민간 자본의 이윤을 위해 나랏돈을 쏟아붓지 말고, 쌍용차를 국영 자동차기업으로 만들어 탈탄소 미래차를 공적으로 개발‧생산하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두산중공업: 자본가의 경영실패, 국유화로 답하자


자금난에 빠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두산중공업도 더 이상 민간 자본의 손에 맡겨둘 수 없다. 보수언론과 핵 산업계는 ‘탈핵 정책 때문에 원전 사업을 벌이던 두산중공업이 무너지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올 1월 “에너지전환포럼”이 지난 2014~18년까지 5년간 두산중공업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원전 관련 수주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신고리 5‧6호기 주기기 계약을 체결한 2014년을 제외하곤) 4.3~10.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80% 이상을 점하는 것은 석탄화력발전 부문이었다.**** 세계적으로 석탄화력 비중을 줄이려는 지금, 두산중공업 실적 악화는 예견된 일이었다. 결국 지금의 위기는 기업주와 경영진이 에너지 전환 대응에 철저히 실패한 결과다.


게다가 현 두산그룹 회장 박정원이 지배하던 계열사 두산건설의 대규모 부실을 메우기 위해 두산중공업 자금을 쏟아부은 것도 위기를 가속한 원인이었다. 두산건설이 2009년 경기 고양시에 조성한 아파트 단지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두산중공업은 2011년부터 유상증자와 현물출자 등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약 2조 원을 투입하고서는 결국 지분 100%를 인수해 완전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어느 모로 보나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자본가의 경영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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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두산중공업 노동자들. [사진: 금속노조 경남지부]



이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두산중공업에 올해만 2조 4천억 원의 공적 자금을 대출로 제공했다. 여기에다 구조조정 비용 및 운영자금으로 1조 2천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를 합하면 현재 두산중공업 자본 총액(3조 4천억 원)을 넘어선다. 그 대가로 계열사 매각과 총수일가 사재 출연 등의 자구안이 곧 발표될 예정이지만, 당장 노동자들은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 명퇴 실시로 전 직원의 10%가량이 회사를 떠났으며, 추가 인력 구조조정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나랏돈을 투입해 노동자는 내쫓으면서 무능한 총수와 자본가의 지배를 존속시킬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총수일가 사재 출연’이 아니라, 경영을 망쳐놓고도 알뜰히 챙겨간 이윤을 일체 환수하고 국유화하는 것이다. 진정 친환경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려면, 지금처럼 정부가 재생에너지 산업조차 시장화해서 민간기업들에 맡길 게 아니라, 두산중공업을 국유화해서 공공적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도록 하면 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기업 위기가 급부상했지만, 앞서 살폈듯 이들은 모두 코로나 이전부터 자본가의 경영 실패로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국가가 공적 자금을 끌어와 기업을 회생시켜야 할 정도로 자본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제 사업을 유지할 능력조차 없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는 언제든 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국유화를 단행하면서도, 고강도 구조조정을 거쳐 재매각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자본가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 쓰이도록 하려면, 국유화는 해당 산업‧기업에 대한 공공적 통제와 결합해야 한다. 어떻게 국유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실물적인 힘으로 뒷받침할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지금부터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 할 이유다.



* 관계부처 합동, <코로나19 대응 주요 주력산업 최근 동향 및 대응방안[Ⅰ]>, 2020년 4월 23일.


** “아시아나항공, 국영 공공 항공사로!”, <변혁정치> 85호(2019년 5월 1일 자) 기사 참고.


*** 오민규, “도대체 왜 쌍용차가 위기라는 건가요?(2020년 1월 17일)”, “추락하는 쌍용차엔 날개도 없나(2020년 2월 13일)”, “쌍용차 없었다면 마힌드라는?(2020년 3월 20일)”, <프레시안> 기사 참고.


**** 에너지전환포럼, “두산중공업 경영악화가 현 정부 에너지정책 때문?”, 2020년 1월 13일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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