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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국유화, 왜 안돼?


경제위기 속 각국 국유화 사례…

자본 아닌 노동자의 사회화여야

“국유화는 ‘애플파이’만큼 미국적인 조치였다”


정은희┃서울



국유화는 경제위기에 각국이 택했던 보편적 처방이다. 심지어 국유화는 ‘애플파이’ 만큼이나 미국적이라는 평도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은 앞다퉈 국유화 계획을 발표했으며, IMF조차 국유화를 주요 대안으로 말하는 데 서슴없다. 우익은 색안경을 끼고 국유화에 빨간딱지를 붙이지만, 그동안 경제위기에 봉착했던 각국 정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유화를 택했다. 그만큼 국유화란 선택지 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그들이 지휘한 국유화가 ‘자본을 위한 국유화’였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이 역설은 물론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국유화일까? 우리는 ‘자본주의 철폐’라는 전망하에 ‘노동자민중을 위한 사회화’를 요구한다.



코로나 사태에서 국유화에 주목하는 세계


그러면 지금 누가 국유화를 말하고 있을까? 우선 IMF는 지난 4월 1일 “코로나19 전쟁을 위한 경제정책”을 발표하고,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며 국유화를 주요 처방으로 제안했다. IMF는 “코로나19 방역 관련 필수부문이 유지될 수 있도록 공공 계약을 우선해야 하며, 산업 전환이나 선별적인 국유화도 포함될 수 있다”고 꼽았다. IMF는 또 대공황 당시 미국과 유럽처럼 부실 민간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대형 국영 지주회사의 설립이나 확장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대기업 소유권 이전이나 보조금이 주어질 경우, 일자리를 보전하고 CEO 보상‧배당‧주식 환매를 제한하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각국 정부도 위기에 빠진 산업을 빠르게 국유화하거나 국유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스페인 정부는 3월 15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든 민간병원과 의료 서비스 제공업을 국유화하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3월 17일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유화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각국 정부는 특히 코로나 사태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항공산업을 신속하게 국유화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 25일 자국 항공사 “루프트한자”에 90억 유로(약 12조 1,409억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회사 지분 20%를 취득해, 2023년까지 일시 국유화하기로 했다. 독일 저가 항공사 “콘도르”에 대해서도 국유화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4월 말 “알리탈리아 항공”을 6월까지 완전 국유화하겠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정부도 4월 20일 “TAP 포르투갈 항공을 국유화할 수 있다”고 밝히고 대출 옵션과 저울질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 역시 프랑스항공을 “필요하다면 국유화한다”는 입장이다.



국유화는 얼마나 흔했을까?


역사적으로도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주요 해법은 국유화였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1917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국유화의 역사’를 분석한 토마스 한나Thomas M. Hanna에 따르면, 경제위기에서 미국 정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민간기업 국유화에 나섰다.


우선 민주당 우드로 윌슨 정부가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12월 육군세출법을 이용해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로 200만 명을 고용했던 철도를 국유화했다. 이때 국유화는 거대한 철도산업을 둘러싸고 각축하던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불붙은 노동쟁의를 억누르는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윌슨 정부는 전신, 전화, 라디오, 광산 등 다수의 산업도 국유화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지자, 공화당 허버트 후버 정부는 “재건 금융 공사(RFC: 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와 “연방 모기지 공사(FNMA: 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 등 공기업을 만들어 은행‧철도‧건설 등 민간산업을 지원했지만, “테네시전력TEPCO” 등에 대해선 국유화 조치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정부는 1934년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화관리제를 시행하고, 금 보유와 관리를 국유화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에는 무제한적 국가비상사태령을 선포하고, 전시법 아래 수많은 제조업과 광산‧선박‧항공‧정유‧철도 등을 국유화했다. 이는 전쟁물자를 조달하는 한편, 불붙던 노동쟁의를 억압하는 구실로도 사용됐다. 이때 미국 정부는 보쉬를 비롯한 외국자본 소유의 다수 산업도 마찬가지로 국유화했다. 1944년에는 흑인노동자에 대한 백인노동자의 인종주의 폭력이 산업활동에 차질을 빚자, 민영 필라델피아운송사를 국유화한 사례도 있다.


비교적 최근인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정부도 1970년대 모든 여객철도서비스와 화물철도를 국유화했으며,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현재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전신인 “콘티넨탈 일리노이 뱅크”를, 마찬가지로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정부 역시 항공 보안 기업과 주요 금융기관을 국유화했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경제위기가 폭발하자 시티은행과 보험사 AIG 등 금융자본을 비롯해 크라이슬러와 제너럴 모터스GM 같은 자동차 제조사까지 국유화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는 전쟁이나 경제위기 혹은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확대되던 시기에 주요 민간산업을 국유화하며 자본의 이해를 관철했고, 이후엔 다시 되돌려줬다. 그런 면에서 미국 정부의 국유화는 자본의 위기를 사회화하고 노동자민중에게 그 비용을 전가한 전형적인 ‘자본을 위한 국유화’였다. 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8년 GM 국유화 사례를 보면, 신자유주의 금융화 속에서 국유화는 더욱 노골적으로 금융자본의 편에서 수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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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미국 GM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한 5만 노동자 중 일부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Democracy Now!]



GM 구조조정, 월스트리트를 위한 국유화…

이제 노동자민중을 위한 사회화로 나가야


2009년 미국 경제위기 여파 속에서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GM과 크라이슬러를 국유화한다. TF 실무팀의 경우 ‘사모투자 전문회사처럼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유로 헤지펀드 출신이 팀장을 맡았으며, 노조뿐 아니라 자동차산업계도 배제하고, 금융 및 법률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2009년 3월 미국 재무부는 GM에 5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대가로 GM 시가총액의 60.8%인 5억 주를 받아 구조조정을 시작한 뒤 3개월 만에 이를 마무리했다. 구조조정의 결과, 모두 47개 공장 중 13개가 폐쇄되고 8개 브랜드가 절반으로 줄었으며 판매점도 40% 축소했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자에겐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강요하면서도, 금융자본에겐 국가 예산으로 경제위기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면서 수익성 좋은 새 GM까지 선물했다. 2008년 9만 1천 명 수준이던 GM의 노동자들은 3개월 동안 약 2만 명이 해고됐으며, 2010년까지 모두 4만 명 이상이 쫓겨났다. 노동비용은 2005년 160억 달러에서 2010년 50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또 2007년 미국 자동차 3사와 전미자동차노조연합UAW이 새 협약에서 도입한 ‘신규입사자 이중임금제(즉 신규 노동자 임금을 낮게 책정해 차별 대우)’를 더욱 후퇴시켜 임금을 떨어트렸다. 사측이 부담하는 건강보험기금도 삭감했으며, ‘파업을 자제하겠다’는 서약도 받아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GM 경영진과 월스트리트에겐 △최고경영자 사임 △경영진 보수 동결 △기업용 제트기 사용 금지(미국 정부가 GM에서 손을 떼자 경영진이 첫 번째로 한 일은 임원의 개인 제트기 사용 금지 해제였다) 정도만을 요구했다. 또 미국 정부는 2013년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매번 저평가된 싼값에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GM에 지원했던 510억 달러의 “부실 자산 구제프로그램” 지원금에서 113억 달러(약 13조 9,600억 원)의 손실을 냈다. 그만큼 자본의 손실을 메워준 것이다. 이는 미국 의회 감독위가 2011년 1월 제출한 보고서에서 ‘크라이슬러와 GM 양사의 금융 제공 회사에 대한 구제조치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할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 이후 GM은 수익성은 기록적으로 올라갔다. 2010~16년에만 약 500억 달러 순수익을 냈다. 게다가 파산 비용 등을 탕감받으며 지난 10년 중 3년만 소득세를 납부했고, 추가로 수년간 세금 공제도 받았다. 그리고 그 수익은 월스트리트에 배당됐다. 최근 <CNN 비즈니스>에 따르면, GM의 지분율 상위 10대 주주는 “더 캐피탈 그룹(7.01%)”, “뱅가드 그룹(6.86%)”, “버크셔 해서웨이(5.21%)”, “블랙록 펀드 어드바이저스(4.29%)” 등 모두 금융자본이다. 그러나 GM은 지난해 다시 자동차산업 위기를 이유로 수만 명 노동자의 반발에도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는 ‘자본을 위한 국유화’만 있었던 게 아니다. 1981년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주의적 대안을 원한 민중의 의지로 1958년 이래 프랑스 제5공화국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된 사회당 미테랑은 좌파가 다수를 점한 의회와 함께 2개 철강기업과 5대 제조업그룹, 36개 은행, 2개 금융회사를 완전히 국유화했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맞서 봉기한 민중의 힘으로 1999년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이 민영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그 수익을 민중을 위해 집행했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경제위기 지속과 우파‧중도좌파의 공격으로 국유화 조치는 몇 년 만에 좌초했으며, 베네수엘라에서도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결국 노동자민중을 위한 국유화는 계급투쟁의 힘으로만 쟁취하고 지속할 수 있으며, 그 성격도 노동자민중을 위한 사회화여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 시대,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그들에 맞서 민중을 위한 대안을 쟁취하는 계급투쟁에 나설 때다.



* “Nationalization Is as American as Apple Pie(국유화는 애플파이만큼이나 미국적인 것)”, <Jacobin> 2019년 4월 11일 자. 


[참고 자료]


- 김승민, 「1980년대 프랑스 국유화 및 민영화」, 『계명대 국제학논총』 제1집, 1996.


- 유진근, 「미국 자동차산업의 구제조치 과정(2008~2009년)과 시사점 - 제도와 의사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산업경제』, 2017.


- Thomas M. Hanna, 「A HISTORY OF NATION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 1917–2009」, The Democracy Collaborative.


- Chris Kutalik, “Make GM Government Motors Again”, <Jacobin>,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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