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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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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근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장



민간 버스회사는 없는 게 낫다,

노동자와 시민 모두를 위한 

버스 완전공영제로!



#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버스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세우고 투쟁한 지 10년, 그 가운데 7년을 해고자로 보냈다. 회사는 법무법인 김앤장까지 동원하며 끝내 대법원에서 ‘정당한 해고’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그 긴 세월을 싸웠다. 때로는 고공에 올랐고, 때로는 농성장을 차려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이제 버스 민주노조의 단결을 위해 재건된 민주버스본부의 첫 본부장으로 새로운 싸움을 이끌게 됐다.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장 정홍근 동지를 <변혁정치>가 만났다.



Q: 많이 늦었지만, 본부장 당선을 축하드린다. 먼저 간략한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저는 버스 노동자이자 해고자 정홍근이다. 버스에서 일한 지는 옛날 시골버스에서 근무한 것까지 합하면 20년 정도 됐다. 그러다 전북 소재 고속버스 회사인 전북고속에서 일하던 중, 2010년 6월에 민주노조(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지회)가 출범하면서 민주노조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겨울에 전북지역 버스 파업이 크게 벌어졌는데, 당시 전북고속지회 쟁의부장을 맡아 전면에서 싸우게 됐다. 결국 2013년에 해고당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 이후로도 계속 투쟁하면서 업무방해 등등으로 지금까지 전과 25범이 됐다(웃음).



Q: 2010년 전북지역 버스 파업 이후 오랫동안 해고자로 싸워오셨다. 이 파업은 전북지역 최장기 파업으로도 알려졌는데, 당시 파업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나?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버스 노조 대다수는 한국노총이었다. 투쟁 계기는 2010년 치러진 한국노총 자노련(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한국노총 소속 버스 노조다) 소속 지부장 선거였다. 이 지부장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회사보다 더 강경하게 조합원 징계를 주장하는 등의 일을 벌이고 다녔다. 그 소식을 듣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조합원들을 조직해 마침내 2010년 6월 전북고속지회가 설립됐다.


우리가 내건 요구 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민주노조를 인정하라는 거였다. 민주노조를 세우자 곧바로 사측의 탄압이 들어왔다. 버스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차량 배정권을 갖고 있어 탄압하기가 더 쉽다. 편한 노선에서 힘든 노선으로 보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본래 민주노조 만들고 바로 파업에 돌입하려고 했지만,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주 시내버스 노동자들까지 조직해서 공동파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렇게 2010년 12월 전북지역(전주) 버스 공동파업에 돌입했는데, 시내버스 쪽은 노사 합의에 도달했지만 전북고속은 끝까지 사측이 타결을 거부하면서 지금까지 싸움을 계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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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와 장시간 노동이 판치는 버스 현장


Q: 이번 민주버스본부 본부장 선거 공약으로 ‘버스 완전공영제 쟁취’를 제시하셨다. 버스업체들은 지금도 지역 토호세력이 장악한 채 상당 부분 세금을 타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버스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책을 시작한 게 김대중 정권이었다. 그리고 그 정책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제가 해고된 전북고속의 황의종 사장이었다.


이 보조금이라는 게 한참 잘못된 정책이다. 국민 혈세를 버스업체에 퍼주는데, 대부분 회사가 자체적으로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한다. 결국 실제로 임금을 얼마나 지급하고 있는지 등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사측 말만 믿고 세금을 퍼준다.


민간 버스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투명할뿐더러, 노동자와 시민 모두 피해를 보는데 오직 사측만 세금으로 이득을 누린다. 가령 버스회사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제출하는 자료 가운데 임금비용 항목을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마치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처럼 꾸며 임금액을 산정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실제로 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정규직 수준의 임금도, 상여금이나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는다. 그 차액은 전부 회사가 챙기고 오히려 노동자 임금을 체불하거나 퇴직금조차 적립하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심지어 업체가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면 그 손실분을 지자체가 보전해준다. 문제는 여기에서도 회사가 제출하는 자료에 근거해 보조금을 준다는 것이다. 회사가 손실액을 부풀려도 지자체는 그대로 보조금을 지급해 민간 버스업체 배를 불린다.


이렇게 버스 자본의 뒷주머니로 줄줄 새는 세금만 제대로 쓴다면, 충분히 공영제가 가능하다. 완전공영제는 국가와 공동체가 버스라는 대중교통을 직접 책임지는 것으로, 지금도 실제 가능한데 그걸 안 하는 게 문제다. 완전공영제가 되면 온전히 시민의 필요에 따라 노선을 짤 수 있지만, 지금은 버스업체의 이윤을 기준으로 노선을 짠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건 차원에서 봐도 그렇지만, 진정 버스가 시민의 발이 되려면 완전공영제로 가야 한다.



Q: 버스는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업종으로 꼽힌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52시간제를 실시하게 됐지만, 적용이 유예된 것으로 안다. 이번 본부장 선거에서도 ‘탄력근로제 분쇄와 1일 2교대제 쟁취’를 공약으로 제시하셨다. 현재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어떤지 전해주신다면?


그간 버스업종에서는 노사 합의만 있으면 주 52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다. 재작년 근기법 개정안 통과로 이제 버스에서도 주 52시간을 지켜야 하지만, 법을 지키지 않아도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유예해주면서 꼼수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버스 노동자가 격일제(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것)로 하루에 17.3시간 일했고, 이 가운데 8시간이 소정근로시간, 나머지 9.3시간은 연장근로시간이었던 경우를 보자.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연장근로가 1주에 12시간을 넘을 수 없으니, 기존 방식으로는 이틀만 일해도 연장근로시간(9.3시간 × 2 = 18.6시간)이 법정 제한을 위반하게 된다. 그런데 처벌을 유예하면서 한국노총 자노련 쪽이 사업주와 합의한 게 뭐냐면, 전체적인 노동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안에서 ‘소정근로시간’으로 규정된 시간을 늘리고 ‘연장근로시간’은 줄이는 것이다. 가령 똑같은 17.3시간을 일해도 ‘소정근로시간’을 13.3시간으로, ‘연장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조절하는 거다.


무엇보다 주 52시간제를 제대로 적용하려면 1일 2교대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인력을 늘리면 사업주들은 임금비용이 늘어나니 어떻게든 기존 인원으로 꼼수를 부려 운영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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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갈 때


Q: 정홍근 동지는 지난 6~7년을 해고자로 살면서 싸워오셨다. 전북고속 사측은 김앤장까지 끌어들여 끝내 대법원판결로 해고를 관철했다. 4명의 자녀까지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자본주의에서는 결국 돈이 최고인 것 같다. 어찌 됐든 법적으로는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 났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건 그 과정에서 한때 ‘동지’나 ‘형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회사에서 차량 배정권을 얻기 위해 사측 증인으로 나서던 거였다.


또 하나 가슴 아팠던 건, 6~7년간 해고자 투쟁을 길게 이어오면서 노조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쟁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었다. 선봉에 선 간부들이 해고됐을 때 책임지는 노조가 돼야 누군가든 조직사업에 열의를 다하고 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다. 이번에 민주버스본부 체계가 좀 잡히면 해고자 실태부터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해고자들이 노조 내에서 역할을 맡으면서 함께할 수 있을지 계획을 잡아보고 싶다.


해고가 확정됐지만, 지난 세월을 후회한 적은 없다.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했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고.


가정에서는 사실 빵점이다. 저를 이해해준 부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도 가족들은 제 활동이 좋은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주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웃음).



Q: 이제 새해부터 민주버스본부 본부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주요하게 염두에 둔 목표가 있다면?


전국적으로 버스 노동자가 10만 명이다. 노동조합으로 보면 민주노조, 한국노총 소속 자노련, 그리고 기업노조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저희가 민주노조만 잘 먹고 잘살자고 싸우는 게 아니다. 민주노조가 있는 곳에서만 시민들에게 안전한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렇기에 적어도 민주노조가 전반적인 버스 정책에 관련된 사안, 시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버스 운영체계를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완전공영제 쟁취를 전면에 내세워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요구하는 완전공영제는 세금으로 민간업체만 배불리는 지금의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국가와 공동체가 시민의 이동권을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버스 노동자가 10만 명에 달하는 만큼, 사업장별로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극소수지만 완전공영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고,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도 있다. 세세한 업종으로 따져보면 고속버스, 직행버스, 마을버스, 셔틀버스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현장과 지역과 상황이 모두 다르지만, 시민의 이동을 돕는다는 점에서는 다 같다.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권리를 박탈당하는 지금의 구조 역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지자체와 국가가 책임지고 노동자와 시민 모두 안전하고 만족할 수 있는 완전공영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변혁정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민주노조 운동을 시작한 지 10년 남짓, 그사이에 해고된 노동자로 어려움도 겪었고 그로 인해 가족들도 힘들었지만, 제가 온 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버스 민주노조가 본부 체계든 협의회 체계든 투쟁이 벌어졌을 때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았던 것도 마음에 담고 있다. 이후에도 더 큰 투쟁, 더 많은 정책을 만들고 실현하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저는 또 많은 분께 도움을 요청하고 의견과 조언을 구할 것이다.


아무래도 버스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싸움이 우선 필요하겠지만, 더 나아가서 시민의 안전한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투쟁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싸움에 많은 동지들이 도와주시고 지지해주신 만큼, 민주버스본부 체계로 전환해서 새롭고 전국적인 정책들을 만들어 투쟁에 나설 때 많은 연대와 도움을 부탁드린다.


■ 인터뷰이주용 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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