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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선거법 개정에 감춰진 것들



※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 청소년의 선거 참여가 가능해졌다. 청소년 운동을 경험한 당사자와 교사 각각의 눈으로 이번 선거 연령 하향 문제를 바라본다.




청소년의 정치

: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있을 수 없던’


상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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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목성돼지]



지난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또다시 청소년 참정권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이 주목한 쟁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였지만, 이번 선거법 개정엔 선거 참여 연령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내용도 포함됐다.


청소년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에 언제나 등장했다. 1987년 12월 19일, 서울지역 고등학교 연합회 소속 고등학생 60여 명이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교육 쟁취’를 내걸고 명동성당 농성에 돌입했다. 학생들이 ‘정치의 영역’에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중학생 두 명이 희생됐을 때 청소년들은 대책위를 꾸려 투쟁했으며, 2015년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 할 때도 청소년들은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다”며 먼저 거리에 섰다.


하지만 청소년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선거에선 배제됐다. 헌법재판소가 2012헌마287 결정문에서 밝혔듯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청소년은 ‘정치의 영역’에서 쫓겨나 ‘나라의 미래’에나 있는 신기루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결국 청소년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기만적인 시혜적 언사들 속에서만 존재했다.


청소년에게 ‘미성숙’이라는 낙인을 찍지만, ‘미성숙’을 벗어나 ‘성숙’하기 위해선 주체로 성장할 정치적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그 경험은 어디서 나오는가. 대표적인 정치‧사회적 참여수단으로 선거와 정당 활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번 선거법 개정엔 선거연령 하향만 이뤄졌을 뿐, 18세 미만 청소년은 정당 가입과 활동, 피선거권, 헌법소원 등의 영역에서 여전히 배제된다. ‘성숙’을 위해, 삶의 주체로 서기 위해 이번 선거연령 하향은 청소년의 완전한 참정권 쟁취의 발판이 돼야 한다. 동등한 변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최대한의 경험들을 쟁취해가자.



* 이 시기엔 청소년들이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릴레이를 통해 선거연령 하향을 주장했다. <변혁정치> 69호에 실린 필자의 기사 “청소년을 구경꾼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범법자로?” 참고.




학교를 제대로 된 정치판으로!


김진┃경기(전교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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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주인!” 

2019년 학생의 날, 전교조 어느 지회에서 기념품으로 제작한 버튼에 새겨진 문구다. 정치란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청소년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청소년들은 자기 몸의 주인조차 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연령 하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선거권을 이미 보유한 다수의 노동자 역시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회의감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흑인, 노예, 여성이 어떻게 참정권을 획득했는지 그 과정을 떠올린다면, 선거 연령 하향 운동은 투표권 획득이 목적이라기보다, 청소년도 ‘사람’임을 인정하라는 운동이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20대 국회에서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후 환영과 우려의 반응이 교차하고 있다. 이 중 ‘학교가 정치판’이 될 것이라는 공격은, 정치에서 청소년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에 목적이 있으므로 우려라기보다 청소년 혐오 표현에 가깝다. 그런데, 정말 학교는 정치판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이에 대해 “촛불청소년인권법 제정연대”는 “학교는 지금보다 더 정치적인 공간이 돼야 하며 가장 삶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선거권 확대 관련 대책으로 고등학생 대상 정치교육(선거교육)을 확대한다고 한다. 경기도 교육청은 2019년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 함께 선거 체험활동과 미래 유권자 연수프로그램 등을 추진했다. 서울시는 모의 선거교육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16개 시‧도에 제안할 예정이다. 한편, 정치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서약하고 그 원칙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일회성 프로그램 또는 교사의 ‘중립’ 선언이 학교를 더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여전히 학생은 주체이기보다는 객체다. 평가로 등급이 매겨질 뿐 아니라, 어떤 등급이 매겨지는지가 최우선 관심사인 곳이 바로 지금의 학교다. 그런 곳에서 일회성 교육이나 교사의 ‘중립’ 서약이 진정한 정치교육, 내 몸과 생활의 권력을 온전히 내게로 이동시키는 교육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여전히 ‘나중을 위한’ 교육, 유예된 정치교육은 영원히 청소년들을 주체로 세우지 못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학교를 더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청소년이 학교 운영과 수업의 주체가 되는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교육으로 학교를 변화시켜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를 청소년과 함께 이끌면서, 사회 현실을 제대로 말하고 학생들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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