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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선거법 개정에 감춰진 것들

비례제가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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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법 개정에서 비례대표제 확대를 강력히 요구했던 세력은 비례대표제가 대단히 진보적이며 이를 통해 획기적으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결과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은 계속된 타협 속에 원안보다도 상당히 후퇴했지만). 그런데 과연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 자체가 그렇게 진보적일까? 가령, 1930년대 초 이미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던 독일에서 나치는 선거를 통해 원내 제1당에 올라섰다. 근래 유럽 극우의 부활을 상징하던 프랑스의 “국민전선” 역시 잠시나마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1986년 총선에서 35석을 획득해 가시적인 세력화를 드러내며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심지어 당시 프랑스가 도입한 비례대표제는 제한적이었는데, 온전한 비례대표제를 적용할 경우 국민전선은 50석 이상을 점할 수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 자체보다, 선거에서 지지세가 확인될 정도로 대중의 열망을 해당 정치세력의 노선과 연결해 대중적인 운동과 투쟁을 펼쳐내고 세력화했느냐의 문제다. 물론 사회주의 세력을 비롯해 좌파 세력의 폭넓은 정치활동을 방해하는 제도적인 제약에 대해서는 철폐를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의회와 선거라는 제도적 공간을 정치활동의 연단 중 하나로 활용하는 것과, 이 제도적 공간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례대표제를 온전히 확대하면 다른 정치, 다른 세상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곧 의회와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현실과 역사는 이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자본가의 철혈 계급투쟁


자본주의에서 핵심 권력은 선출된 의회(혹은 대통령 같은 정부 수반)에 있는 게 아니다. 자본가들은 얼마든지 의회를 무력화할 힘을 갖고 있다. 로비 같은 것은 ‘애교’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적이라고 판단할 때 진보적 성향의 정권과 의회를 거세게 공격했다. 그들의 계급투쟁은 노골적이고, 선동적이며, 때때로 아주 폭력적이었다.


극적인 사례는 1973년 칠레의 군사 쿠데타였다. 1970년 대중적 저항을 등에 업고 집권한 좌파 출신 아옌데 정부가 구리광산과 주요 은행에 대한 국유화 등의 조처를 단행하자, 자본가들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른바 ‘자본가 파업’을 벌이고 반정부 시위를 조직했다. 하지만 1973년 총선에서 좌파 정당들이 대통령 탄핵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자, 자본가들과 보수정치세력은 육군참모총장 피노체트를 앞세운 유혈낭자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전복하고 아옌데를 비롯해 수많은 사회주의자와 좌파 활동가들을 살해했다.


덜 극단적인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44년을 장기집권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경우를 보자(스웨덴 역시 20세기 초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 이것이 사민당 집권의 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웨덴 사민당은 계급협조노선에 따라 대자본에 유리한 정책을 펴고 거대한 이윤을 축적하게 하는 대신, 전반적인 세금을 높게 매겨 보편적 복지체계를 구축해왔다. 그만큼 대자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75년, 사민당과 밀접한 연계를 가진 노동조합 총연맹인 LO가 “임금노동자 기금”이라는 제안을 들고나오자 상황이 바뀐다. 임금노동자 기금안은 기업으로부터 매년 이윤의 일부를 신규발행 주식 형태로 징수해 축적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기업의 소유지분을 임금노동자 집단에 이전한다는 구상이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자본가들의 협조를 구하고자 이 구상의 수위를 계속 온건하게 후퇴시켰다. 하지만 상층에서 타협과 거래로 절충점을 찾으려던 사민당과 달리, 소유권을 침해당할 상황에 직면한 자본가들은 거듭된 사민당의 후퇴에 대해서도 일말의 타협조차 거부하며 오히려 적극적인 선동과 대중 시위를 조직했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의 장기집권은 막을 내렸고, 본래의 임금노동자 기금안은 무력화되었으며, 이후 재집권한 사민당은 80년대 본격화한 경제위기에 대응해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포함한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인다.**



힘과 힘의 대결, 우리의 진지는?


의회와 선거는 대중투쟁과 정치세력화의 수준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조직된 대중운동 없는 의회 의석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린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필수적인 소유권과 이윤에 대한 공격은 필연적으로 계급 간 힘의 대결을 불러온다. 사활을 걸고 싸우려 덤비는 적 앞에서 테이블에 앉아 아무리 정교하게 짜놓은 구상을 제시한들, 설득이 될 수는 없다.


의회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던 진보정당들은 거꾸로 스스로가 바뀌어버린다는 사실을 몸소 입증했다. 의석은 눈에 보이지만 계급투쟁은 항상 가시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기에, 많은 의회주의 정당들이 의석 확보를 위해 계급정당을 포기하고 이른바 ‘국민정당’을 표방했다. 계급적 당파성을 버리고,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민주적 통제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을 때, 사회주의는 알맹이를 잃은 채 ‘그저 뭔가 진보적인 어떤 것’ 혹은 장식용 문구로 전락한다. ‘비례대표제를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당장의 의석으로 연결될 수 없더라도, 사회주의적 계획과 구상을 문서가 아닌 실제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대중운동과 노동자계급 권력기관의 맹아를 어떻게 만들고 조직할 것인지의 문제다.



* 이안 버첼(배일룡‧서창현 옮김), <서유럽 사회주의의 역사>, 갈무리, 1995, pp.251, 339.

** 신정완, <임노동자기금 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여강, 20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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