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2020년 경제정책방향

: 자본의 구원투수를 자처하는 국가


백종성┃조직‧투쟁연대위원장



“우리는 더 이상 소득주도성장론자가 아닙니다”


지난 2019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은 투자 활성화다. 정부가 내건 5개 과제는 △경제상황 돌파 △혁신동력 강화 △경제체질 개선 △포용기반 확충 △미래 선제대응이며, 그 면면을 보면 투자 활성화,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등 산업육성, 설비투자 촉진을 위한 정책금융 확대, 규제 샌드박스 확대, 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정부가 입증해야 하는 규제입증 책임제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 등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가 밝힌 투자계획을 보면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 광역철도‧광역도로망 구축사업 조기 추진 등 공공기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60조 원을 투입하고, 울산 석유화학 공장 건립 등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 발굴을 통한 민간 투자가 25조 원 정도이며, 민자 투자 15조 원 등이 포함된다. 즉, 1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직접 수행하거나 민간으로부터 유도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이 2020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행보가 새롭지는 않다. ‘서비스‧의료산업 등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 투자 유도’, ‘대규모 SOC 투자와 공공시설 민간자본 투자 전면개방’ 등이 정부가 1년 전 내걸었던 경제정책이었다. 2020년 정부 경제정책은 1년 전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내용이 더 강화된 형태로 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차이는 있다. 1년 전 립 서비스 수준에서라도 ‘소득주도성장’을 명시했다면, 이제는 ‘언제 그런 것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 <2020년 경제정책방향> 어디에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정부는 기업 이윤 축적을 위해 더욱 발 벗고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주도성장은 2018년에는 경제정책방향의 전면에 있었고, 2019년에는 주변에 있었으며, 2020년에는 없다. 결국 이윤율을 높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요지다.


99_33_1_수정.jpg

△ <2020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2019년 12월 19일 대통령 주재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 [사진: 청와대]



99_33_2.jpg

△ 대통령 주재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과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청와대]



자본을 위한 계획경제

: 이윤축적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주도 산업생태계 구축


문재인 정부가 내건 ‘100조 원 투자’는 일견 거대해 보인다. 그러나 공공부문 재정 투입을 제외하면 민간-민자 투자는 ‘연내 투자처 추가 발굴’ 등 추상적인 수준의 목표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즉, 정부 주도로 민간 투자를 이끌어내고, 그 결과로 성장률을 제고하는 한편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은 그저 불확실한 목표에 불과할 뿐이다. 설비가동률이 지속적으로 하강하는 공급과잉 상황에서, 자본이 공격적 투자에 나설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 협상 타결로 미-중 무역전쟁 완화가 전망된다고 하나, 세계 경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2% 중반 성장률 목표조차 다수에게 ‘의지의 표현’으로 비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1년 전 정부가 제출한 목표치는 2.7%였지만, 실제로 달성한 경제성장률이 2%였음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자본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 주도 산업생태계 구축과 세제 혜택이라는 특혜를 들이밀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앞서 말한 규제완화 외에도 투자세액공제 확대와 가속상각 특례 확대 등은 물론, 정부 주도 산업기반 구축이라는 의도를 2019년에 이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위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산업, 포스트 반도체 산업육성책 등, 정부 투자로 기업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한편, 그렇게 형성된 시장을 자본에게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대다수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단기 부양책’이라며 짐짓 표정 관리를 하면서도 정부 방안을 환영하는 이유다.


2019년, 일개 자동차 회사의 산업 전략을 ‘수소경제’라는 국가 시책으로 끌어올린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연구개발비부터 세제 혜택까지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밝혔다. 바이오, 미래차, 시스템 반도체 등, 거대 자본의 이윤축적 활동을 발 벗고 돕는 것이 정부가 밝힌 2020년 경제정책이다. 불확실성으로 신산업 육성에 적극적이지 않은 자본을 대신해 정부가 나서는 상황, 이것이 ‘자본가를 위한 계획경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노동에 대한 공격은 더 강화된다


자본축적의 위기상황에서 자본이 이윤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동에 대한 공격이다. 당연히 투자유도를 위한 자본 특혜 외에, 정부가 ‘노동혁신’이라고 부르는 노동개악 역시 빠지지 않는다.


정부는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 즉 직무급제 도입확대와 연공급 축소를 추진한다. 박근혜 정권 당시 성과연봉제를 공공부문에서 먼저 도입하고 민간으로 확대한다는 계획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역시 공공기관에서 직무급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민간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 어쨌든 고용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그 고용은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협하지 않는 ‘유연한’ 일자리, 곧 직무급-표준임금제에 근거한 저임금 일자리여야 하는 것이다. 그간 드러났듯, 이를 조직 노동운동의 동의하에 추진하기 위한 기제가 사회적 대화다. 정부는 2020년에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바, 노동개악 추진 과정에서의 노동운동 포섭-분할 시도에 맞선 연대투쟁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아울러 노동시간 문제도 있다. 정부는 이미 2019년 12월 11일 발표한 바 있는 50~299인 사업장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을 1년 연장했고, 나아가 ‘특별연장근로 사유 확대’를 통해 기존에는 ‘천재지변’에 한정되던 특별연장근로 인정 사유에다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적 증가’나 ‘연구개발’ 등 경영상 사유를 포함시킴으로써, 사실상 사업주 마음대로 무제한적 노동을 가능케 했다. 국회 상황상 처리하지 못한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이 계속 추진될 것임은 물론이다.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으로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누어 고용을 창출하겠다’라고 공약한 정부의 책임을 공세적으로 물어야 한다. 고령층 단기 일자리 외에 고용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금, 고용에 대한 국가의 근본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99_34.jpg

△ 1월 9일 포항 규제자유특구 GS건설 투자협약식. 지역별로 규제를 풀어헤치고 대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을 그대로 이어가는 문재인 정부. [사진: 청와대]



자본주의 너머를 향해, 보다 급진적 요구를 들 때다


소득주도성장의 파탄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대안 제시 없는 수요 진작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윤축적의 위기 속에 한편으로는 산업 구조조정이,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개악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 자본주의라는 이윤축적체제 그 자체에 맞서지 못하는 한 우리의 싸움은 한발 나아갈 수 없다. 작금의 위기에 대해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대중적 정치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위기는 현실이다. 대안 또한 현실이어야 한다. 2020년,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 전개와 함께, ‘이윤을 위한 경제’를 ‘필요를 위한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요구를 제시하고 그 요구를 실천적 투쟁으로 대중에게 알리고자 한다. 노동자민중이 주도하는 생산 통제를 위한 대중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변혁당은 다음 투쟁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째, 재벌이라는 거대 생산수단에 대한 대중적 통제 운동을 확대하고자 한다. 둘째, 최저임금이라는 대중의 기본적(최소한의) 필요는 국가와 자본의 책임으로 충족되어야 함을 대중적으로 주장하고자 한다. 셋째, 이와 연동해 사회주의의 필요와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보다 확대하고, 이를 사회주의 세력의 확대로 연계하고자 한다.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