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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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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1.16 19:33

배달의 민족, 

‘게르만 민족’ 되기 전엔 좋았나?


한상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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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이더유니온 페이스북]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사용한 사람은 없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너무 오랜 시간 일하느라 여유가 없어서, 혹은 반대로 식사를 준비할 시간을 줄여 여유를 갖고 싶어서 이용하는 ‘배달 앱’에 대한 얘기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과 수많은 음식점의 정보, 이용자의 평가까지 한눈에 확인하면서 배달음식을 주문해 무 앞에서 받을 수 있다는 엄청난 편리함.


그 편리한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와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 음식을 배달하는 노동자 사이를 중개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수수료와 회비 등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그 ‘누군가’는 스스로가 이러한 편리함을 가능하게 만든 ‘플랫폼’을 구축한 ‘혁신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민족 기업의 상실?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


그런데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그 플랫폼들을 단 하나의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많은 이에게 익숙한 한국의 대표적인 배달 앱은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이다. 이 3개 앱이 국내 음식배달 앱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요기요”와 “배달통”을 소유하고 있던 독일계 자본 “딜리버리 히어로(이하 ‘DH’)”가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을 소유한 국내 자본 “우아한 형제들(이하 '형제들')”을 합병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을 위한 심사를 신청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론이 주목한 것은 우선 ‘국내 음식배달 시장을 독일 자본이 장악했다’는 데 대한 불만 내지 우려다. 약 20조 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배달음식 시장 규모를 이제 “DH”가 사실상 장악하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형제들”의 기업가치가 4조 8천억 원으로 평가됐다고 알려지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카피를 내걸어왔던 “배민”이 외국계 자본에 팔려 넘어갔다는 식의 배신감 내지 푸념도 적지 않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형제들”의 이번 케이스가 신규 시장을 개척한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엑시트(출구) 사례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독일계 자본이 한국 자본을 인수해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보다, 하나의 자본이 특정한 시장을 독점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에 여론이 곧이어 주목한 것은 이러한 독점에 따른 배달료와 수수료 등의 인상 우려였다. “형제들” 측은 “DH”와 계약할 때 수수료 등을 인상하지 않기로 구두 협의했다고 했지만,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것을 반드시 지킨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많은 언론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음식 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우려에 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일부 언론이 그나마 음식 배달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 조건이 더 열악해질 수 있음에 주목했다. 이 노동자들은 노동자성 인정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고, 다수가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도 못한 상황이며,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합병으로 대규모 자본을 투여한 “DH”가 빠른 시일 내에 투자금 회수를 시도한다면, 노동자들의 여건은 더욱 나빠질 수 있다.



독점에 대한 상이한 관점


최근의 ‘배민 사태’에서 관찰할 수 있는 독점에 대한 지배적인 우려는 이른바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여러 개의 배달‧주문 중개 플랫폼 업체가 서로 경쟁하면서 존속해야 소비자와 자영업자들이 수수료와 배달료 등에서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주류경제학의 교과서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독점화 경향에 대한 무지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플랫폼 자본은 더욱 시장 독점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띤다. 플랫폼 자본은 쉽게 표현하자면 해당 비즈니스에 적합한 고유의 알고리즘을 내장한 프로그램(앱 등)을 통해서 중개업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와 이용자(소비자와 노동자)에 대한 독점이다. 다수의 플랫폼 자본이 정보와 이용자를 독점하지 못하고 서로 출혈경쟁을 지속하게 된다면 자신의 수입원인 수수료가 근본적으로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인 플랫폼 자본의 이러한 특징은 한편으로는 배달 노동자에게 지급할 몫을 최대한 줄이려는 시도를 동반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 업체와 소비자로부터 각종 수수료 등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경쟁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음식 업체와 소비자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하기에, 주로 배달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노조 조직화를 막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경쟁의 결과 독점이 강화될수록, 이들 플랫폼 자본은 노동자와 소비자‧자영업자 모두에게 더 많은 몫을 떼어먹기 위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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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이더유니온 페이스북]



‘배달의 민족’이든, ‘게르만 민족’이든


무엇보다 자본주의에서 플랫폼 기업은 ‘자본’이다. 주요 수입원이 ‘수수료’라는 형태를 취하지만, 이 역시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배달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착취가 핵심으로, 이 노동자들 없이는 배달 플랫폼 자본의 생존도 축적도 불가능하다. 플랫폼 자본은 현대 자본주의가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노동에 관한 각종 권리와 보호로부터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배민”의 경우도 다를 게 전혀 없다. 2019년 11월에 서울시가 배달 노동자 노동조합인 “라이더 유니온” 설립을 허가한 데 이어 노동부가 “요기요” 배달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자, 사측은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자사 “배민 라이더스” 소속 라이더(배달 노동자)들과의 계약을 1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대응했다. 아울러 노동자들이 받는 기본 수수료 외에 추가 수수료 금액을 주문 수, 라이더 수, 기상 상황 등을 근거로 매일 다르게 변경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 불안정을 가중시켰다. 법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달 노동자들은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내몰렸고, 플랫폼 자본은 노동자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통제를 강화했다.


한편, 최근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확보하고 이들이 겪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플랫폼 노동자 협동조합’ 설립 지원을 꺼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획재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제3차 협동조합 기본계획”에 담길 예정인데,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정부 대책의 핵심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다. 오히려 플랫폼 자본의 안정적인 비즈니스 지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조합이 아닌 ‘협동조합’으로 조직된 플랫폼 노동자들과 플랫폼 기업 혹은 음식 업체 사이의 관계는 기존과 동일하게 ‘사업자 간’ 관계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스스로의 힘을 조직할 기회를 어떻게든 차단하려는 정부와 플랫폼 자본의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다.


배달 노동자들에게 ‘배달의 민족’이냐 ‘게르만 민족’이냐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별반 차이도 없다. 이 노동자들 앞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오직 초과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는 ‘첨단’ 착취자가 있을 뿐이다.



플랫폼의 사회적 소유와 통제가 필요한 이유


플랫폼 기업이 독점적으로 소유한 정보는 이들이 개발한 알고리즘 프로그램이 독자적으로 생산한 게 아니다. 바로 소비자와 음식 업체, 그리고 배달 노동자들이 함께 생산한 것이다. 플랫폼 기업은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 - 음식 업체 - 배달 노동자 사이의 거래를 중개하면서 정보를 독점적으로 축적하고 가공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 즉, 배달 노동자의 노동뿐만 아니라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의 지속적인 거래 참여 없이는 플랫폼 자본의 생존과 축적이 불가능하다.


이로부터 플랫폼 자본의 사회적 소유와 통제의 필요성은 충분히 확인된다. 자칭 혹은 타칭 ‘혁신가’라는 플랫폼 자본의 대표들은 사업을 함께 기획한 노동자들, 사업에 적합한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리하는 노동자들, 음식을 만드는 노동자들, 모든 위험과 비용을 혼자 떠안고 배달을 해온 노동자들, 그리고 이 거래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함께 생산한 정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들에겐 자본의 논리와 플랫폼 기업의 속성에서 비롯한 독점화 경향을 막을 의지도 없고, 그로부터 파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플랫폼 자본을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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