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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1.16 19:29

한진 총수일가 경영권 분쟁, 

도긴개긴이다

 

 

바람┃서울

 

 

 

총수일가 누구 하나 자격이 없다

 

지난 연말, 한진그룹 총수일가인 이명희 고문과 조원태-조현아-조현민 3남매의 경영권 분쟁이 가족 간 폭력사태로까지 번지며 많은 이들의 눈살을 다시금 찌푸리게 했다. 이들이 경영권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진그룹 총수일가는 최근 수년간 ‘땅콩 회항’ 사건과 ‘물컵 갑질’을 비롯해 폭언‧폭행‧밀수‧탈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범죄 혐의로 대중적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총수일가가 잃은 것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땅콩 회항’의 장본인 조현아는 슬그머니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고, ‘물컵 갑질’ 범죄를 저지른 조현민도 퇴직금 명목으로 무려 17억 원을 챙겨갔다. 이렇듯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해주는 경영권을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범죄자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손에 쥐고 부를 쌓는 동안,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졌다. 예컨대 대한항공 청소 노동자들은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각종 폭언에다 직장 내 괴롭힘까지 당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투쟁에 돌입하자, 회사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가압류를 진행했고 어용노조를 결성해 민주노조를 탄압했다. 2018년에는 청소 노동자가 기내 식탁을 닦을 때 사용하던 약품에서 1급 발암물질이 발견되는 사태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탈과 착취에 관해 총수일가는 처벌받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주주는 총수보다 진보적인가

 

한진그룹 총수일가 사이에 ‘막장’스러운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자, “강성부 펀드”라고도 불리는 사모펀드 KCGI가 다시 주목받았다. 그간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던 KCGI는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약 17%를 보유하고 있는데, 조씨 삼남매 지분이 각각 6.5% 정도씩에 불과해 만약 총수일가 내분이 벌어지면 사모펀드인 KCGI가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가치 제고’를 외치는 이 사모펀드가 주주들을 대변하며 총수일가를 대신해 기업을 운영한다면(전문 경영인 등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따로 총수일가 없이 이른바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그룹인 KT와 포스코에서도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과 노조파괴가 버젓이 벌어진다. 단적으로 말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면 주주의 이익은 침해된다.

 

이른바 ‘주주가치 제고’는 기업의 이윤을 주주들에게 더 많이 배분한다는 뜻이다. 총수일가를 위해서든 주주들을 위해서든, 이윤 극대화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심화시킨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주주나 전문 경영인이 총수일가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업 통제 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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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

 

 

 

 

 

공공 비행기, 헛된 꿈이 아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더불어 한국 항공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한진그룹 총수일가는 대한항공을 사유화해서 온갖 범죄행위를 벌였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국내 양대 항공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총수일가가 온전히 스스로 이뤄낸 것은 없다. 대한항공의 시작은 국영 항공사 인수였다. 대한항공 전신인 한진상사는 낮은 금액으로 국영 항공사를 인수하는 특혜를 받았고, 이후에는 정부가 나서서 항공기 도입에 유리하게 법률을 개정하는가 하면 외국자본 도입을 통해 자금 문제도 해결해주며 성장을 뒷받침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5~17년 사이에는 연평균 500억 원에 가까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또한 공무원 해외 출장 시 국적 항공기를 이용한다는 규정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티켓을 구매한 덕분에 2010~14년까지 5년간 1,797억 원의 판매실적도 올렸다. 결국 지금의 대한항공을 만든 것은 총수일가가 아니라 정부의 특혜와 세금이었다.

 

항공기는 이제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 기준 고속철도 이용객이 1억 4천여 명인데 항공교통 이용객은 1억 1천여 명으로,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사유화한 채 그들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제 총수일가의 범죄행위를 엄히 처벌하고, 불법 행위로 수탈한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동시에 그들의 경영권도 박탈해야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 총수일가 경영권을 박탈한다고 해도 전문 경영인이나 주주 중심의 기업 운영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륙부터 착륙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항공사 노동자들과 함께, 이용자인 사회가 항공산업을 운영하고 통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때, 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위험한 데다 (종종) 모욕적인 지금의 노동환경을 스스로 바꿔나가며 안전한 항공교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지금까지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항공사 역시, 총수일가의 쌈짓돈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공공교통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총수일가의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비행, 공적 책임으로 운영되는 항공사는 그저 헛된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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