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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세상에 나중은 없다


조혜연┃인천



국가인권위원장의 입에서조차 “총선 때까지 차별금지법을 거론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체 차별금지법이 무엇이길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뤄야만 하는 일일까? 혹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 차별이 없어지긴 하는 걸까?


이미 제정되어 있던 인권조례가 폐지되는 막장 사태가 충청남도에서 발생했다. 기본적인 인권과 평등을 보장하는 법을 폐지하다니 어느 시절 이야기인가 싶지만, 지난해인 2018년 2월의 일이다. 인천에서는 보수기독교 세력이 총출동하여 인천 퀴어퍼레이드를 폭력적으로 무산시킨 사건도 있었다. 폭력이 난무한 범죄행위였지만, 바로 옆에 있던 경찰들은 수수방관했다. 제주에서는 급증한 예멘 난민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한국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논리가 먹혀 반대 집회가 극성스러웠다.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은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다. 김포의 한 건설 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이었던 미얀마 노동자가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에 쫓겨 점심밥을 한술 뜨려다 도망치던 와중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단속반원들은 추락사실을 알고도 곧바로 구조하지 않고 단속을 이어간 정황이 드러났지만, 그 후로도 법무부는 이주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의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핑계로 단속을 오히려 강화하여 지금도 계속된 사망사고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 2018년의 일이다.



혐오를 통해 강고해지는 보수우익과 차별의 확대


2006년 인권위에서 정부에 권고해 만들어진 차별금지법안은 성별·장애·병력·나이·언어·출신 국가·출신 민족·인종·피부색·출신 지역·용모 등 신체조건은 물론이고 임신·가족 형태·종교·사상·정치적 의견·성 정체성·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법안이다. 그러나 2007년 10월 입법 예고 당시 △성적지향 △학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병력 △출신 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의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된 채 누더기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위 7개의 사유로는 ‘차별해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수 기독교 단체 등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이들의 핵심 쟁점은 “동성애 반대”다. 이 법안은 비록 통과되진 못했지만, 꾸준히 발의돼 오다가 문재인 정권하의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정작 2017년 대선 공약에서는 빠졌다. 오히려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로 치부했다.


그렇다면 성 소수자 문제만 ‘내어주면’ 해결되는 걸까?

표면적으로 ‘차별은 나쁘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차별을 당연시한다. 구조화된 차별은 다시 혐오의 근거가 되어 폭력조차 용인한다. 이렇듯 혐오로서 차별을 강화하는 행위들은 왜 날로 더 심각해지는 것일까? 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힘 때문이다.


이들이 동성애 문제에 집요하게 착목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이나 아이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 아니라, 종교의 힘을 빌려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것이 가능한 쉬운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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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왜 ‘지금’ 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1998년 7월 1일 파견법이 시행되었다. 그 후로 20년 동안 한국은 비정규직 백화점이 되었고, 노동 현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파견업체를 통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일자리의 대부분은 불법파견이지만, 너무나 횡행해서 이제는 불법이라고 부르기조차 어색할 정도다. 그렇게 간접고용이 일반화되면서, 투쟁을 통해 어렵게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결국은 무기계약직 등 새로운 비정규직이 될 뿐이었고, 최근의 유행(?)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다녀간 인천공항이나 숱한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자회사’로의 전환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일자리가 ‘당연’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변해가던 사이,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게 바뀌었다. 저 옛날, ‘노비와는 한 밥상에 앉을 수 없다’는 양반들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마치 다른 신분의 사람이 된 것 같다. 논란이 됐던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문제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몇몇 정규직 노조나 조합원들의 태도에서 드러나듯,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납득하지 못하는 그러한 시대가 되었다. 국가와 자본이 노동자를 가르고 차별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차별을 당연시하고 강화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입지가 확고해진다고 여긴다.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는 것이 단순히 안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자는 의미가 아닌 것처럼, 차별금지법의 의미도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수준의 의미가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통한 보수 세력의 결집을 넘어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평등한 세상으로 향하는 것은, 우리 안의 차별의 장벽을 걷어내고 민주적인 건강함의 초석을 쌓아나가는 것이리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올해에도 평등 행진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년 입법 활동으로 이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평등한 세상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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