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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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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0.16 11:59

이해남과 이현중, 두 번째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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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이현중과 세원테크의 노동자들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키보다 높은 철제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회사 정문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싸움을 매일 했고, 이해남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도피 생활을 했다.


그날, 철제 바리케이드를 두고 구사대와 싸우던 조합원들이 바리케이드 위에 쇠갈고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려고 했다. 사측은 용접기로 쇠갈고리를 절단한다. 끊어진 쇠갈고리가 튕겨 나간다. 이 쇠갈고리가 이현중의 두개골을 가격했다. 이현중의 머리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면서 투쟁 현장은 순식간에 공포에 빠졌다. 다행히도 이현중은 2차례의 수술 끝에 목숨을 구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세원테크 투쟁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연대투쟁이 확대되고, 이에 힘입어 세원테크 노조는 조합원 총단식 투쟁을 결의했다. 그리고 그 직전에 회사와 협상이 타결됐다. 154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며 이현중은 현장에 복귀했고, 이해남은 자진 출두 후 집행유예로 다음 해인 2003년에 석방된다.


2003년, 긴 파업도 끝나고 이현중도 일터로 복귀했고, 이해남도 조합원들과 함께했다. 세원테크에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측은 여전히 똑같았다. 노조와 합의한 것들을 지키지 않았다. 철제 바리케이드도 철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중의 몸은 달랐다. 사고 이후, 2번의 대수술 이후, 머리를 벽에 찧을 정도로 심한 두통에 시달려 일터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일 년여 간을 이런 고통에 시달리던 이현중이 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선고받은 지 두 달이 되기 전에 이현중은 떠난다(2003년 8월 26일).


2003년, 그 해는 뭔가 달랐다. 이미 새해 벽두부터 손배가압류 철회를 외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이현중의 장례 투쟁은 전국적인 노동자 연대투쟁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했다. 장례 투쟁이 2달을 넘어가는데도 회사는 꿈쩍도 안 했다. 노조를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


이 장례 투쟁으로 이해남은 또 수배된다. 이현중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수배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이해남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고, 회사에 대한 분노는 갈수록 깊어져 어둡고 슬픈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배 생활 한 달이 조금 지난 때에, 한진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주익이 죽은 바로 그날에, 이해남은 컴퓨터로 글을 올렸다. ‘현중이와 함께 노동해방 세상으로 가겠습니다. 현중이의 한을 풀 때까지 저희 시신을 거두지 마세요.’


며칠 후, 세원테크 본사인 세원정공 앞마당에서 이해남은 분신한다(2003년 10월 23일). 3일 뒤, 비정규직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이 분신한다(2003년 10월 26일). 4일 뒤에, 한진중공업 곽재규가 투신자살한다. 20일 뒤, 이해남은 투병 끝에 부인과 두 아들, 그리고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조합원들을 두고 끝내 숨을 거둔다(2003년 11월 17일). 한 달 뒤, 이현중과 이해남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 함께 묻힌다(12월 12일, 천안 풍산공원묘원). 너무나 비극적이고 치열했던 열사 정국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다음 해 봄에 세원테크 노조에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 세력은 회사에 9표 차로 진다. 바로 이어서 세원테크 노조는 금속노조에서 탈퇴한다.


세원테크에서 3년간 수차례의 파업과 수많은 연대파업과 2명의 죽음이 있었던, 그 치열했던 민주노조의 시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1997년 노동자 총파업을 정점으로 이어진 IMF 위기 이후 계속 자본의 공격에 밀리고 밀리는 노동계급의 슬픈 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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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남과 이현중을 그렇게 보내고, 오랫동안 둘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에 시달리던 동료들은 이 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든다(<당신은 나의 영혼>, 윤동수 저).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둘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데 우리는 이 책에 신세를 많이 졌다. 작품의 제목도 작가의 손끝에서 나왔다. ‘밤이 깊어 누구도 꿈꾸지 못한 사랑이 하늘 끝자락 별로 떠서 빛날 때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밤길을 걸을 것이다.’


‘별이 되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일.’ 나의 이 글쓰기도, 이제, 그런 일이 됐다. 3년이 넘은 우리에 대한 글쓰기는 사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시작한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3년간, 나는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던 많은 상처가 치유되는 쫄깃한 기쁨을 느꼈다. 글쓰기가 주는 위로의 힘이지 않을까 한다. 그동안 나의 자랑질에 동조해주고, 두서없는 글들을 격려해주고, 매번 너무 늦은 원고를 싫은 기색 한번 없이 받아준, 그런, 모든 마음들에 고맙다.


* <하늘 끝자락 별이 빛날 때> 35분/2013년/ 제작 이해남 이현중 추모사업회, 노동자뉴스제작단


* 이번 호를 끝으로 "노뉴단이야기" 연재는 종료됩니다. 그동안 연재에 힘써주신 토닥이 동지와 노동자뉴스제작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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