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9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0.16 11:49

연재를 마치며



오늘도 모기와 사투를 벌였다. 빨간집모기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낮게 날아 슬며시 다가와 다리에 앉았다.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 모기는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휙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작은 벌레는 정말 놀랍다. 아주 작은 변화조차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마술처럼 재빠르다. 때론 조심스럽고 때론 과감하다. 약고 끈질기다. 숨바꼭질 끝에 결국 손바닥에 납작해진 모기를 보는데 후련한 마음 뒤에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모기나 바퀴처럼 사람살이에 잘 적응한 곤충들은 어쩔 수 없이 같은 생태계에 얽혀 살게 됐지만, 나타나면 여전히 놀라게 되고 귀찮아하고 병에 걸릴까봐 두려워한다. 곤충에 대한 혐오는 당연하고 아주 오래된 것으로 여긴다. 벌레이야기를 시작할 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이런 혐오를 조금 누르고 보면 다르게 보이는 곤충의 모습이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곤충에 대한 혐오는 없었고 그런 혐오가 오히려 곤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손바닥에 납작해진 모기를 편견 없이 보고 있으면 모기 날개와 주둥이, 모기의 작은 몸이 다 경이롭게 보인다. 곤충은 왜 몸집이 작아졌을까? 곤충은 어떻게 날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작은 벌레는 진화가 빚어낸 걸작품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300년 전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짐승의 피를 빨던 빨간집모기가 오늘 여기 내 방에까지 퍼져 살게 됐다는 것, 6~70년대만 해도 바퀴는 부잣집에만 살아서 집안에 돈이 들어오게 하는 돈벌레라 불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떠올리게 된다.


또 벌레이야기는 곤충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려고 했다. 곤충에 대한 혐오는 대개 곤충에 대한 오해에서 생겨났으니까 말이다. 벌레이야기는 왜 곤충을 해충과 익충으로 나누는 게 의미가 없는지 들려주고 싶었다. 그물처럼 짜인 안정된 생태계에서 씨를 말려야 할 해충은 없다. 생태계 교란으로 갑자기 불어난 벌레가 있다면, 씨를 말리는 게 아니라 원인을 찾아 그 수를 조절해서 생태계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함을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곤충이 왜 대안인지도 얘기하고 싶었다. 전체 동물의 절반을 훌쩍 넘기며 지구상에 번성한 곤충이 간직한 힘은 무궁무진하다. 환경문제와 식량문제 해결은 곤충에게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곤충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가짜뉴스는 늘어만 가고 곤충에 대한 혐오는 점점 커진다. 잘못된 정보에 몇몇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얹히면 곤충은 단순하게 해충과 익충으로 나뉘어 해충으로 낙인찍힌 곤충의 씨를 말리는 학살로 이어진다. 이런 식의 방제는 예산만 축낼 뿐 곤충을 방제하지도 못하고 생태계를 더욱 크게 교란할 뿐이다.


마지막 벌레이야기는 얼마 전 대학기숙사에 나타난 무시무시한 벌레이야기다. 닿기만 해도 피부가 짓물러서 화상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청딱지개미반날개가 대학기숙사에서 발견됐다는 기사를 봤다. 청딱지개미반날개는 동남아시아에서 침입한 외래해충이라면서 벌레에 소극적인 학교와 지자체를 꾸짖기도 했다. 그런데 청딱지개미반날개는 갑자기 나타난 외래해충이 아니다. 25년 전 펴낸 한국곤충명집에도 그 이름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있었고 가끔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벌레가 문제가 된 걸까? 벌레 수가 늘고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아졌나? 그렇다면 왜 벌레가 늘어났고 피해가 커졌는지 먼저 살펴야 하는데 무작정 방제부터 하라고 한다.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포식자 청딱지개미반날개는 그 효과가 크지 않겠지만 잘 따져보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벌레를 잡아먹어서 농사를 돕는 곤충이기도 하다. 서툰 기사는 청딱지개미반날개가 왜 지금 문제가 됐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곤충에 대한 혐오만 부추겼다.


벌레이야기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더 이상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엔 힘에 부쳐 이제 연재를 마치려 한다. 집에서 길에서 어디에서나 벌레를 만난다면, 힘에 부쳐 못다 한 벌레이야기를 찾길 바라며 연재를 마친다.


img289.jpg



글·그림 강우근


* 이번 호를 끝으로 "벌레이야기" 연재는 종료됩니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강우근 동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