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파업권 파괴가 부른

백 투 더 퓨처


정은희┃민중언론 참세상·워커스



200년 전인 1819년, 유럽에선 비엔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 나폴레옹에 맞선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연합국이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연 회의다. 영국은 이때부터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초강대국인 영국의 힘으로 유지하는 질서)’라는 미명하에 세계 최강국으로 악명을 떨쳤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근 2년 동안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영국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이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하나 있다. 바로 노동자 임금상승률이다.


이 내용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작년 말 영국의 파업일 수와 임금상승률을 대비해 보도한 것이다. 지난해 영국 노동자 파업은 1893년 이래 최저로 곤두박질쳤는데, 노동자 임금상승률도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전 후 최악이라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잉글랜드은행(영국의 중앙은행) 수석 경제분석가 앤디 할데네는 “임금 성장 수준이 노조가 없던 산업혁명 이전으로 ‘백 투 더 퓨처’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많은 경제학자들이 노조 약화로 낮은 임금성장률이 악화했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이들은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임에도 노동자가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요구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영국에서 파업일 수는 쭉쭉 떨어져 왔다. 영국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33,000명이 파업에 참여했는데, 파업 참가자 수를 처음 기록한 1893년 이래 가장 적었다. 1893년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탄광 파업이 일어나는 등 모두 634,000명이 파업한 때였다. 마찬가지로 임금상승률도 떨어지고 있다. <가디언>은 영국 실질임금 성장률이 1970~80년대 2.9%에서 1990년대 1.5%, 2000대 1.2%, 2010년 1/4분기 이후에는–2.2% 등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82_특집_국제 파업권 제약1.jpg




200년 전으로 노동자의 임금상승률을 끄집어 내린 사람은 누구보다 마가렛 대처 보수당 전 총리다. 대처 집권 전인 1970년대만 해도 영국 노동조합은 왕성했고 조직률도 50%가 넘었다.


그러나 대처 정부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10년 만에 파업일 수는 1/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조합원 수는 두 동강 났다. 1970년대 영국에서 연간 파업일은 평균 1,000만 일을 초과했고 1979년 파업일 수는 2,900만 일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 대처가 물러난 뒤 파업일 수는 100만 일도 넘지 못했으며, 2017년에는 30만 일 수준으로 추락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파업권 파괴부터

이 같은 파업의 후퇴는 대처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하기 위해 택한 제1 병법, 노조 때리기에 근거한다. 대처는 1979년 총선을 앞두고 ‘노조의 권리와 의무 사이에 공정한 균형’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노조의 권한을 약화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대처는 2차례 연임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였고, 특히 파업을 못 하도록 노조의 손발을 묶었다.


대처는 우선 1980년 “고용법”을 제정하고 이후 다섯 번에 걸쳐 계속 파업권을 약화시켰다. 처음에는 합법적인 파업의 범위를 좁혔다. 파업을 노동자 작업장에 한정시켰고, 연대파업을 불법화했다. 연대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에 대한 면책 조항도 삭제했다. 1982년에는 고용법을 개정해 노사분규 대상을 명기하고, 노조 간부 면책특권을 제한했다. 3차 개정 때는 노조의 면책특권을 약화하고 사용자 명령권을 강화했다. 4차 개정에서는 파업 시 파업 여부에 관한 사전투표를 의무화했고, 마지막으로는 노조의 면책특권을 완전히 박탈했다.


이로써 사용자뿐 아니라 노동쟁의로 손해를 입은 자는 누구나 노조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또 불법 파업에 대해선 사용자가 임의로 선별해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파업 노동자에게 지원하던 생활보호 지원금도 폐지했다. 결과적으로 파업 노조나 조합원들은 구속을 감수해야 했고, 각종 소송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압류에 시달렸다. 김대중 정부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하며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 조치를 들여온 것과 비슷하다.


대처는 노조의 기반도 무너뜨렸다. 클로즈드숍(closed shop: 노동조합원만 고용하는 사업장)을 불법화했고, 강제 교섭권 인정 절차를 폐지하는 등 사용자 권한을 확대했다. 또 조합원이 조합에 이의가 있으면 정부기관이 나서 적극 지원했다. 국가권력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노조를 와해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파업권 파괴가 대처와 자본만의 책임은 아니다. 영국의 파업 파괴 중단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는 알란 쏘넷에 따르면, 노동당과 노조 지도부의 책임도 크다. 쏘넷은 1974년부터 1984년까지 옥스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1970년대 활발했던 풀뿌리 노조 운동이 영국 노동당과 공모한 노조의 관료주의에 훼손됐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노조 관료주의가 노동자 운동을 무장해제했고, 몇 년 뒤 대처의 공격에 무력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사실 1983년 영국에서는 광부들의 처절한 파업이 있었지만, 이후 노조 상층부는 계속되는 노조파괴에 격렬히 저항하기보다는 그저 노동당에 의지했다.


결국 대처는 노조를 무력화하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그리고 대처가 집권한 지 딱 40년이 지난 현재, 영국은 노동시간을 특정하지 않고 고용주가 원하는 시간에만 일하는 이른바 ‘0시간 근로계약’이 성행할 만큼 노동권이 바닥인 나라가 됐다.



파업 파괴, 노동자의 생존을 무너뜨리다

물론 파업권 파괴는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 대처가 신자유주의 선구자로 이름을 날렸다면, 미국에는 대통령 레이건이 있었다. 레이건 역시 1981년 집권 후 파업을 진압하며 노조부터 때려잡았다. 레이건은 파업 노동자를 직접 공격하는 한편,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 기관에 반()노조 인물을 심어 거꾸로 노조를 공격하게 했다.


당시 레이건(공화당)은 노조를 두려워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민주당과 노조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여론의 50%가 노조에 반대했고, 조합원 절반도 1980년과 1984년 대선에서 연속으로 레이건을 지지했다. 심지어 레이건이 시범케이스로 공격한 항공관제사 노조도 레이건을 지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건은 파업에 나선 항공관제사 1만여 명을 해고한다. 업무 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은 90%의 조합원이(11,345명)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레이건은 이들이 어떤 공직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고 노조도 해산시켰다. 미리 수많은 대체 용역, 즉 파업파괴자들을 준비해 놓고 단행한 조치였다.


정부 기관에 반노조 인사를 심은 대표 사례는 “국가 노동관계 위원회(NLRB)”다. 노사분규의 대법원 격인 이 위원회는 애초 노사 협상 등을 감독하는 기관인데, 위원 5명 중 3명을 반노조 인사로 세웠다. 결국 이후 NLRB가 간여한 사측의 불법 사건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82_특집_국제 파업권 제약2.jpg




레이건 정부를 거치며 미국의 파업 규모는 크게 추락한다. 1947~56년까지 미국 평균 파업 참가자 수는 340만 명이었으나, 1957~66년 사이 250만 명으로 떨어졌다가 1967~76년 330만 명으로 다시 오른 바 있다. 그러나 1977~86년 150만 명으로 다시 줄어들어 2007~16년 결국 20만 명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도 1930년대 13%에서 1980년대 32%까지 올랐으나, 역시 이때부터 급격히 하락해 현재는 10.5%(2018년)로 주저앉았다. 미국 임금상승률 또한 1980년대 12%까지 올라갔으나, 이를 정점으로 추락을 거듭해 2016년에는 5% 수준으로 바닥을 치고 있다.


파업권 후퇴는 영국이나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해 각국 정부는 노조의 파업권부터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국에서 정부와 자본은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앞세워 파업권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18년 10.7%로, 영국(23.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 우리에겐 ‘백 투 더 퓨처’할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닐까.



* <가디언>, “영국 파업일 수 합계, 1893년 이후 최저치로 추락” (인터넷 기사 검색: www.theguardian.com/uk-news/2018/may/30/strikes-in-uk-fall-to-lowest-level-since-records-began-in-1893)

** <green left>, “대처는 어떻게 노동조합을 분쇄했는가” (인터넷 기사 검색: www.greenleft.org.au/content/how-thatcher-smashed-unions)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