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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자동차, 노동자의 미래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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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자동차 소리를 상징하던 이 말은 어쩌면 (한 세대쯤 뒤에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엔진과 내연기관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작동음도 소멸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소리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동차를 만들던 노동자들까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지난 연말 GM은 북미지역 5개 공장을 포함해 전 세계 사업장 가운데 7곳을 폐쇄하고 1만 4천여 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력 축소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닛산(1천 명), 폭스바겐(7천 명), 심지어 전기차 최선봉에 서 있다는 테슬라(3천 명)까지.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미래차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문제는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기술이 왜 꼭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고 자본의 이윤에 복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가령 GM은 최대 흑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도, 주주들에게는 고액 배당금을 퍼주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GM 경영진은 구조조정으로 절감하겠다는 비용의 2배인 106억 달러(약 11조 원 이상)를 주가 부양에 쏟아부어 주주들과 나눠 가졌다. 현대차 역시 ‘주주환원 확대’를 내세워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더 많이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현대차 발표를 보면, 2013년 약 5천억 원이었던 주주환원 금액은 2018년 2조 원으로 5년간 4배나 늘었다).


당장 현대차는 중국 공장 폐쇄와 국내 공장 구조조정을 압박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싸움은 닥쳐오고, 노동자들에겐 대안이 필요하다. 자본의 협박과 운동진영 일각의 ‘선제적 양보론’에 맞서 싸울 전망과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지난 3월 5일, 변혁당 울산시당()과 노동해방투쟁연대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미래차가 다가온 현장과 정세에서: 노동자 투쟁의 길 찾기” 토론회를 열었다. 미래차의 전망, 자본의 구조조정 전략, 노동자의 대안 형성을 위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현대차 울산공장 노동자 최병승 동지(현대차 공동행동 정책1부장), 부품사인 갑을오토텍 지회 한정우 동지(변혁당), 노동자 운동 연구공동체 “뿌리”에서 활동하는 오민규 동지가 발제자로 나섰다.



미래차, 어디까지 왔나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20XX년에 전기차 XX만 대를 생산하겠다’고 천명한 지금, 미래차는 어느 수준에 와 있고 전망은 어떨까? 아직 미지의 영역이기에, 자본 측 연구소들의 예측이 천차만별인 만큼이나 발제자들의 판단도 조금씩 달랐다.


먼저, 전기차에 대한 전망이 과도하게 부풀려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병승 동지는 전기차가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주요 광물(리튬, 코발트 등)이 희소한 데다, 최근 전기차 개발로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기차는 막대한 국가 보조금이 사라지면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즉, 비싼 가격 때문에 전기차 시장은 생각만큼 커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한정우 동지는 시간의 문제는 있겠으나 내연기관이 사라지는 추세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래차 최대 시장인 중국의 정책 방향에 주목해야 하는데, 중국 정부는 기존까지 배터리 전기차 확산에 집중하다가 2018년부터 수소차 보급과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즉, 수소차 확산 국면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배출가스 규모를 줄이고 전기차 비중을 확대하는 산업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오민규 동지는 4차 산업혁명에서 자본가들이 새로운 먹거리로 포착한 분야가 바로 “에너지‧인공지능‧플랫폼”이며, 이 세 가지를 모두 함축한 산업이 (그리고 현재 실현 가능한 부문이) 미래차라는 점에서(플랫폼: 카 쉐어링 /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 에너지: 전기‧수소차), 자본가들은 포화 상태에 빠진 자동차산업의 출구로 미래차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현대차가 문재인 정부와 함께 수소차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과 달리, 실제 현대차 생산 현황을 보면 2018년 기준 전기차 생산량 6만 5천 대 가운데 수소차는 약 1천 대(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현대차가 주력하는 부문은 현재 수소차가 아니라 일반 배터리 전기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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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은 이미 현실이다

미래차 전망의 구체적인 상에서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였지만, 발제자들은 모두 지금부터 구조조정 대응 투쟁을 준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병승 동지는 ‘미래차 전환에 따른 인력감축을 당연시’하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문제라며, 자본이 미래차 전망을 과도하게 부풀려 선제 구조조정 압력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차 사측은 신년부터 ‘현재 인원 대비 30% 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정년퇴직으로 줄어드는 인원을 충원하지 않고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최근에는 모든 부서에서 자동화‧외주화와 인원‧비용절감, 노동강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조합마저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면서, 이른바 ‘연착륙’을 위해 인력감축과 비용 절감에 협조하자고 설파한다는 것이다.


부품사의 경우 내연기관 등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부문 먼저 외주화를 필두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한정우 동지는 재벌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부품사들이 대부분 한계 상황에 봉착했으며, 여기에 원청인 현대차가 직접 노사관계를 통제하면서 노동조합의 저항을 무력화하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점에서, 최근 경사노위가 경총의 요구에 따라 ‘파업 시 대체 인력 투입’이나 ‘쟁의권 박탈’을 밀어붙이는 것은 선제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손발을 묶으려는 조치로서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민규 동지는 2021~22년 시점에 “한국 자동차산업의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차의 경우 이때 광주형 일자리 공장과 인도네시아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는데, 두 곳 모두 전기차 생산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즉, 전기차 물량 배정을 두고 공장간 경쟁을 조장해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차뿐 아니라 한국지엠도 2022년부터 부평 2공장 생산 물량이 없어 공장폐쇄 위협이 현실화한다. 특히 미래차 전환과 관계없이 현재 자동차산업이 포화상태에 달해 자본가들이 이윤율 하락에 직면했기 때문에, 산업 부진이든 미래차 전환이든 어떤 명분을 대서라도 구조조정은 들이닥칠 국면이라는 분석이다.



불안을 용기로 바꾸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자동차산업 재편이 개별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는 만큼, 발제자들은 공통으로 ‘지역과 산업, 완성차-부품사-비정규직을 포괄하는’ 공동의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사업장의 단기적 이익만 관철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현 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활동가들만의 논의를 벗어나, 현장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대안을 고민할 수 있도록, 이 문제에 대한 일상적인 교육과 소통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나아가 최병승 동지는 4차 산업혁명을 인력감축과 등치시키는 이데올로기부터 떨쳐내기 위해 ‘기술발전의 성과를 자본이 독점할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하자’는 급진적 대안을 구체화하자고 제안했다. 가령 생활임금 보장하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 기술발전으로 취득한 이윤의 사회화와 이를 활용한 보편적 복지 확대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정우 동지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현재 들이닥친 노동개악에 적극 대항해 ‘정리해고 금지, 외주생산 제한, 노동시간 단축과 안정적 임금체계 확보, 쟁의권 보장’ 등 제도적 과제를 공세적으로 내세워 지금부터 투쟁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오민규 동지는 “공장과 사업장을 뛰어넘는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의 요구를 만들어내는 게 급선무이며, 노동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요구할지” 열린 토론을 시작할 때 투쟁의 전망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은 아직 혼란스럽다. 미래차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다소 양보하더라도 회사와 ‘상생’해야 한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그러나 구조조정 칼끝을 들이민 자본은 그다지 ‘상생’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불투명한 미래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완성차든 부품사든 노동자들의 불안은 고조될 것이다. 각자 사업장에 갇힌다면, 길은 없다. 불안은 양보로, 희생으로, 결국 ‘나 혼자라도 살자’는 분열로 이어진다. 어떻게 이 ‘불안’을 ‘용기’로 바꿀 것인가? 우리는 ‘자본을 위한 기술발전’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기술발전’을 요구하는 급진적 대안을 만들 수 있고, 함께 미래를 고민할 수십만 명의 자동차산업 노동자들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잠재된 힘을 실물로 만드는 일이다. 사업장 벽을 넘는 고민의 시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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